삶을 오래도록 고찰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해 식상하지 않은 표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인의 시는 쉽게 읽히기 힘들다. 김영준(63)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물고기 미라>(북인)에 실린 시가 이에 속한다.
이번 시집은 1부에서부터 무겁다. ‘얼음 시비’, ‘자진’, ‘물고기 미라’ 등 죽음을 나타내는 시어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막막한 울음’, ‘퇴색하는 흔적’, ‘차디찬 바람’, ‘막막한 배경’ 등 어두운 표현들도 이어진다. 2부에서도 ‘동반자살’, ‘투신’, ‘소멸’ 같은 표현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꽃씨’, ‘평화’를 언급하며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체 게바라’, ‘말콤 엑스’, ‘파블로 네루다’, ‘김산’, ‘루이즈 미셸’ 등 당대를 뜨겁게 살다가 이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비정규직’, ‘유괴’, ‘독거노인’ 등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요란하지 않게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3부와 4부에서는 ‘물안개’, ‘폭설’, ‘박새’, ‘산벚나무’ 등 자연의 대상을 포착해 관조한다.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자서(自序)’는 이 시집에 실린 시 전체를 한데 묶는 고리의 역할을 하며 각각의 시에 있어 하나의 원경(遠景)이 된다. ‘바람의 말을 듣고자 먼 길을 걸었다//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이젠, 그냥, 쓴다//다만, //그립다는 말이 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으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여기에서의 ‘그냥’은 ‘그럼에도’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생각 없이 그냥 쓴다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향한 노력을 계속해 가려고 다짐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시에는 ‘먼 길’을 걷는 동안 자신의 시야에 갇혀서 놓치거나 지나쳐 버렸던 사람과 상황 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이 시집의 표현 방식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문장 다음에 행이나 연 구분도 없이 문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표도 없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읽어 가다 보면 시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다시 읽게 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자신의 시를 꼼꼼히 읽어주길 바라는 시인의 의도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마침표가 없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들려주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전반적으로 의미를 충분히 되씹기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 물론 쉽게 읽히는 시도 있다. ‘12월, 두 개의 문’ ‘보노보Bonobo’ 같은 시는 읽히는 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들도 그 여운은 길다.
김 시인은 속초 출신으로 1984년 시 전문지 <심상>에 ‘겨울 금호동’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물고기 미라>는 <봄을 기다리며>, <나무 비린내>에 이어 낸 세 번째 시집이다. 교직생활을 하다 퇴직한 시인은 현재 양양에서 살며 빈터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김영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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