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요덕에서 인민학교를 다닌 박명호 씨는 고등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강원도 평강군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요덕의 조부모 댁 인근에는 고등중학교가 없어 다시 부모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모범생이었던 인민학교 시절과는 달리 고등중학교 시절의 소년 박명호는 방황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요덕에서 인민학교를 다닌 그에게 평강군은 낯선 공간이었다. 또래의 아이들을 몰라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주변의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많이 싸우기도 하면서 소년 박명호의 삶은 불과 몇 년 만에 다르게 변했다.
산에서 토끼도 잡고 술도 구해 마셔
박명호 씨의 얘기에 따르면 북한에도 깡패가 있다. 깡패라고 해서 지하경제의 이권에 개입하는 갱단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박 씨가 말하는 깡패는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방황하는 청소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북한에서도 고등중학교를 다니거나 혹은 졸업한 청소년들이 한데 모여 다니며 불량한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제법 된다고 한다. 낮 시간 동안은 학교에 다니고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만 14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학생·군인·직장인 등 모든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조직. 이제는 명칭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바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생활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도 방과 후 모여서 거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좀도둑질도 하고 서로 패싸움도 벌인다. 박 씨의 설명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좀도둑질에 대해서 관대한 분위기가 있다. 개인의 소유물도 기본적으로는 공동체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박 씨는 당시 엇나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산 속에서 토끼도 잡고 닭도 튀겨 먹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금주가를 보급할 정도로 술을 금기시했지만, 이들은 술도 구해 마셨다. 박 씨는 또래 친구들과의 일탈행동에 상당히 재미를 들였다. 잠깐 부연하면 박 씨가 학창시절을 보내던 1970년대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완성을 위해 술은 금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박 씨는 자신의 부친이 술 마시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 때 부친이 술을 한 병씩 받아왔을 뿐이지 술을 구경한 적도 거의 없었다. 북한의 평범한 가정 대부분은 술을 빚거나 마시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을 지나면서 차츰 집에서 술을 만드는 가정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비폭력 무저항을 가르치는 겁니까”
고등중학교 시절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출석을 부르고 교실 밖으로 도망친 친구 하나가 밖에서 자신을 부르며 소란스럽게 하자 교사가 박 씨에게 다가와 교편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당시 북한에서는 주먹으로 때리는 교사들이 많았는데 그 교사도 평소에 잘 때리는 교사로 유명한 이였다. 한창 반항심이 강하던 소년 박명호는 맞고만 있지 않았다. 그 교사에게 대들었고 그 교사와 주먹으로 서로 치고받는 상황까지 갔다. 아이들은 구경하고 교사들은 몰려와 싸움을 말리는 등 일이 꽤나 소란스럽게 됐다. 그리고 소년 박명호는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일이 심각해서 교육부에서도 조사를 나왔다. 부친이 아주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나 부친은 그때 박 씨의 편을 들어 주었다. 군관인 부친은 때린 교사를 혼내주겠다며 며칠 동안 그 교사를 찾아다녀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자 교장이 나서서 화해를 권했다. 그러나 부친은 그 자리에서 교장과 교사에게 따져 물었다.
“지금 학생에게 비폭력 무저항을 가르치는 겁니까? 미제국주의와 싸워야 하는데 무저항주의를 가르칩니까?”
박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비폭력 무저항’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북한에서는 부당한 권력자와 지배질서에 대항하려면 무력투쟁이 필요하며 ‘비폭력 무저항’은 옳지 못한 방식이라고 교육받는다. ‘무저항적 순응’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친이 교사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교장도 교사도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고 한다.
부친은 박 씨에게 아예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박 씨는 한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고 교장과 담임교사가 찾아와서 학교에 나오라고 해서야 등교했다. 박 씨가 졸도할 때까지 때린 교사는 전출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됐다.
<다음에 계속>
구술 박명호·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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