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대도시 재개발 철거현장도 아니고, 사람이 살고 있는 골목길 주택가에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 불안한 느낌이 들어요.”
지난 7일 오후 동명동 속초감리교회 아래 주택가에서 만난 한 주민의 하소연이다.
한 민간업체가 이곳에 건축연면적 8만5,923㎡, 지하 5층, 지상 41~46층, 3개동 474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신축할 예정이다. 업체는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14일 사업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이날 수복탑 앞 회전교차로에서 영랑동 방면의 중앙로(옛 7번국도)를 따라 가다 ‘중앙로 241번길’이라고 표시돼 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철거’라고 적힌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슬레이트 가옥 외벽은 거의 철거된 상태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건물 내부는 폐가구와 깨진 유리조각, 각종 쓰레기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붉은 페인트로 ‘출입금지’, ‘위험’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안전통제선’이 설치돼 있었다.
여기서 골목 안 쪽으로 더 들어가자,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는 글씨와 함께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적힌 가옥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업체가 이주협의에 응한 가옥들에 ‘철거’ 글씨와 숫자를 표기한 것 같았다. 해당 부지는 한 문중 소유였으나 지난해말 업체가 아파트를 건립하기 위해 매입했다.
‘철거’와 ‘숫자’는 건물 외벽은 물론, 담벼락 및 대문 등에 도배를 하 듯이 적혀 있어 흉물스럽게 보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동네 전체가 어수선해 살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골목길에서 만난 한 남성 주민은 “얼마 전 우리 집에도 ‘철거’ 글씨를 쓰려고 해 못하게 했다”며 “좁은 골목길 여기저기에 붉은색의 ‘철거’ 글씨가 적혀 있다 보니 불안해서 대문 밖을 나서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진기 시의원은 “민간개발업체가 건물을 짓든 안 짓든 간에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골목길을 흉물스럽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아마도 이주보상협의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는 원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내쫓기 위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해당 부지에 살고 있는 가옥 대부분이 무허가여서 현재 이주보상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이주보상에 응한 지주들에 한해 동의를 얻어 건물 외벽에 ‘철거’ 등을 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벽이 철거된 가옥의 경우, 외벽 일부가 파손된 상태여서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이용될 우려가 있고 안전을 위해 부득이 나머지 외벽도 철거하게 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나머지 무허가 건물들에 대해서도 현재 이주보상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가옥주들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속초시는 “민간개발업체의 행위가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위압감과 불안감을 줄 수 있어, 도색하거나 철거할 수 있도록 협조공문을 발송하겠다”고 했다.
고명진 기자 mjgo9051@hanmail.net
동명동 속초감리교회 앞 고층 아파트 건축 사업부지 내 일부 가옥 외벽에 붉은 페인트의 ‘철거’글씨가 곳곳에 적혀 있어,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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