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막히고 도로는 쓰레기가 넘쳤지만 관객이나 참여자 모두 축제 특유의 일탈과 열기에 휩싸였다. 12시간 넘는 길 위의 퍼레이드는 전통의 스토리에 종교를 통한 공동체 정신이 국가주의 특유의 집단성과를 만들어내었다. 화려한 의상, 같은 듯 다른 퍼포먼스, 전통의 리듬과 변주된 현대성이 축제의 메시지였다.
One Beat, One Dance, One Vision
(사)속초축제위원회(이사장 백영철)는 지난 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세부의 ‘시눌룩 페스티벌(Sinulog Festival)’을 참관했다. 축제위원회 이사와 운영위원, 기획위원 등 26명이 참여한 이번 참관은 설악문화제 메인이벤트로 자리잡은 ‘거리페스티벌’의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시눌룩이라는 이름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우아한 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민간신앙의 산물이었던 춤이 스페인 식민지와 함께 온 아기 예수를 숭배하는 춤이 되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종교를 통한 식민성과 문화이식의 흐름이 면면히 이어지다 1980년에 들어 축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한국은 유신정권이 끝나고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국풍81’이라는 국가주의 문화이벤트를 강제로 만들던 시절이었다. 필리핀 역시 마르크스 독재정권의 끝이 보이던 시절이지 않았을까. 학생들이 북소리에 맞춰 바실리카 교회 주변을 돌며 시눌룩 춤을 추는 정도의 축제가 원주민의 춤솜씨를 겨루는 경연대회로 바뀌면서 세부의 공식 축제가 되었다. 다른 도시와의 차별을 위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했다. 시눌룩은 세부 섬 원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자신들이 숭배하는 우상을 향해 추던 전통춤인데, 스페인을 통해 기독교가 전파될 때 세례를 받은 원주민들이 아기 예수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며 이 춤을 춘 이후 아기예수를 찬양하는 의식 춤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축제 기간 중에는 필리핀 각 지역 주민들의 멋진 댄스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 두발, 뒤로 한발 움직이는 전통춤의 움직임이 춤의 백미이다.
그랜드 퍼레이드 등 다양한 경연
시눌룩 축제는 12시간 동안 펼쳐지는 그랜드 퍼레이드를 비롯해 사진대회, 철인3종 경기, 세부 시 미인대회, 불꽃놀이 경연대회, 시눌룩 아이돌 대회, 올해의 수레, 시눌룩 노래 및 춤 경연대회 등 각종 경연대회가 열흘 동안 펼쳐진다. 올해는 특히, 배를 타고 세부의 바다를 행진하는 시눌룩 강의 행진이라는 또 다른 이벤트도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필리핀 해군에 의해 계획되어 77척의 선박들이 행렬에 참가했다고 한다. 축제 스토리텔링에 의해 부가적인 이벤트를 매년 개최하면서 축제의 의미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다양한 축제가 개최되지만 축제를 이끄는 콘셉트는 하나이다. ‘One Beat, One Dance, One Vision’. 시눌룩 전통춤과 음악을 테마로 참가팀 각자의 콘셉트를 잡아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축제 참관단이 도착한 19일에는 축제의 여왕을 선발하는 시눌룩 퀸 콘테스트가 개최되었다. 숙소에서 주 행사장인 스포츠 콤플렉스까지는 속초에서 양양 정도의 거리였지만 약 2시간이 걸릴 정도로 교통이 혼잡했다. 어렵게 행사장에 도착한 참관단이 처음 들은 음악은 2018 시눌룩 축제의 테마음악이었다. 전통의 리듬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필리핀 유명 음악인들이 참가한 1분 30초 정도의 짧지만 강렬한 음악이었다. 귀에 감기는 테마음악을 고민했다. 미인 선발대회는 세부 각 지방의 미인과 개성적인 스토리텔링의 퍼포먼스가 어우러졌다. 음향이나 조명의 수준은 떨어졌지만 백댄서와 퍼포먼스, 무대장치의 역동성이 놀라웠다.
20일은 SM 시티몰에서 열린 불꽃놀이 대회를 참관했다. 총 6개팀이 참가했다. 숙박과 경비는 축제재단에서 준비하지만 장비와 디자인, 재료는 참가팀 부담이다. 심사는 품질, 디자인, 타이밍, 관객호응도로 나눈다. 올해는 바탕가스주 출신의 팀이 최종 우승을 했는데 상위 3팀 모두 올해 처음 참가하는 팀이라고 한다.
21일은 시눌룩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 퍼레이드를 참관했다. 그랜드 퍼레이드는 화려한 의상을 차려 입은 필리핀 각 지역 대표들이 약 12시간에 걸쳐 거리 공연을 펼친다. 다양한 콘셉트의 의상과 무대소품을 이용한 춤이 거리를 메우면서 축제장은 일상의 일탈과자발적 참여가 어우러지는 축제 고유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참여팀은 각 단체나 학교에서 1년간 준비한다고 한다. 퍼포먼스와 춤은 시눌룩 축제의 주제음악에 맞춰 준비한다. 콘셉트음악의 확장판으로 비보잉, 디제이, 테마음악까지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무용수들은 모두 두 발 앞으로 갔다가 한 발 뒤로 움직이는 전통 시눌룩 스텝에 맞춰 춤을 춘다. 이들 중 가장 훌륭한 안무팀이 거리 퍼포먼스 콘테스트 우승자로 선정된다. 참관단이 자리잡은 곳 맞은 편에는 심사위원과 진행자가 2층에 자리잡고 퍼레이드 전체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경연대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연대회 참가팀과 함께 기업의 홍보팀, ‘최고의 수레’ 경연대회 참가팀이 순차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최고의 수레’에는 필리핀의 유명 연예인이 동참하면서 관객의 흥을 돋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0여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퍼포먼스 수준은 아마추어를 뛰어넘었다. 유명 연예인과 기업의 홍보, 다양한 음악과 퍼포먼스가 세상에서 가장 긴 퍼레이드의 일원이 되어 거리의 흥분을 연출했다.
속초다운 퍼레이드를 위하여
화려한 볼거리와 참여시민들의 자발성, 타투나 페이스페인팅, 축제 기념품, 먹거리 등이 어우러진 축제 공간의 조성이 돋보였다. 도시 전체에 시눌록축제의 포스터와 관련 상품이 넘쳐났다. 가게가 축제의 홍보장이 되고, 거리는 축제장이 되며, 시민은 참여자이자 관람객이 되었다. 축제의 시작을 주목해야 한다. 소박한 전통이 퍼레이드라는 기획과 만나고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참여의 정신이 살아나면서 도시의 기획상품이 되었다. 퍼레이드라는 이벤트는 역사적 상상력과 종교를 통한 공동체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면서 콘텐츠가 되었다. 주제음악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변주의 퍼포먼스가 생기면서 부가 경연대회로 발전되었다. 축제가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고, 시민이 축제를 기다리게 되었다.
참관단의 다양한 제안으로 축제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자원봉사센터 고인선 사무국장은 참가팀 일원이 로프를 이용한 세이프라인을 끌며 퍼레이드 하는 시스템에 주목했다. 제대로 된 퍼포먼스와 경연대회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별도의 관람석도 제안했다. 속초예총 이정무 국장은 라푸라푸 추장 캐릭터 등 축제캐릭터 개발과 부가상품의 활용을 제안했다. 속초민예총 정은희 사무국장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주목했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주민자치센터 등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거리퍼레이드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의 모색을 제안했다. 속초축제위원회 김순희 이사는 만국기를 활용한 거리퍼레이드 구간의 공간 조성, 거리퍼레이드와 메인무대의 효과적인 연결 시스템에서 설악문화제 거리퍼레이드의 발전을 모색했다. 최효섭 이사는 단풍잎으로 축제장을 조성하고 속초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기업의 간접광고를 유치할 것을 제안했다. 속초사자놀음보존회 김성하 회장은 ‘퀸선발대회’처럼 젊은층이 참여할 수 있는 경연대회의 신설을 제안했다. 테마음악의 발굴, 스토리텔링, 퍼포먼스의 개발 등 퍼레이드 수준의 향상을 위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인력의 양성도 중요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외부전문가, 경력과 경륜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부전문가의 교류가 그렇다. 국제 관광도시에 걸맞은 경쟁력을 위해 국제교류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시눌룩 축제 댄스 경연대회 우승자는 원주 다이나믹 페스티벌에 초청된다. 도시간 협력의 일환이다.
축제를 옆에서 보는 것과 위에서 보는 것은 다를 것이다.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대체로 일치했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을 것, 지역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것, 축제다운 공간의 조성과 부가적인 재미를 추구할 것, 속초다운 축제를 위한 조건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축제의 열기는 관광객이 처음 만나는 ‘공항’에서 시작한다. 시눌룩 음악과 의상, 포토존이 축제의 기대를 끌어올렸다. 속초의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은 관광객에게 어떤 인상을 줄 수 있을까?
시눌룩 퀸 선발대회. 아기예수 찬양이라는 테마가 다양한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변용되어 화려한 경연이 펼쳐진다. 속초에는 속초시립풍물단과 런갯마당이 있다. 전통 타악의 리듬에서 속초축제 고유의 테마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랜드 퍼레이드는 전통의 시눌룩 춤과 대규모 퍼레이드단, 유명 연예인과 기업의 광고가 어우러져 12시간이라는 퍼레이드 시간을 만들어냈다. 설악문화제는 유아부터 노년층까지 생애주기별 퍼레이드 참여가 가능한 축제이다. 전통과 스토리, 테마의 개발이 지역민의 삶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지금의 주민참여형에서 관광형축제로의 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축제의 열기가 일상의 일탈을 보여주는 공간. 거리 축제 행사장 곳곳에서 타투와 페이스페인팅, 기념품을 파는 곳이 많다. 설악산과 도심에서 열리는 설악문화제는 내방객들에게 어떤 일탈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시눌룩축제 그랜드퍼레이드 참가단이 거리행진 도중 멈춰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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