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씨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청진은 북한에서 대도시인데 구한말부터 발전하기 시작해 함경도 지방에서 함흥과 더불어 가장 번화한 도시이다. 북한 전체에서도 평양, 함흥 다음으로 세 번째 가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태어난 이후 청진에서 계속 산 것이 아니라 군관(장교)인 부친을 따라 어릴 때부터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다. 부친이 장교였음에도 이사를 너무 자주 다닌 관계로 세간살이도 별달리 없었다고 한다.
그는 1970년대 초반에 유치원을 다녔다. 당시 북한에서는 유치원 ‘높은 반’ 1년 과정이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과 함께 북한의 의무교육 과정이었다.
박 씨는 함경남도 요덕에서 인민학교(북한의 초등교육기관)를 다녔다. 부친의 전근이 잦아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위해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가 있던 요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인민학교 다닐 때 그는 제법 모범생이었다. 학교에서 석차를 매겨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과목별 점수를 공시했는데 항상 자신의 성적이 다른 친구들보다 앞섰다고 한다. 단, 도화공작(圖畫工作. 그림과 만들기. 미술 과목에 해당. 북한에선 인민학교에서는 도화공작, 고등중학교에서는 미술이라고 함) 과목은 그리 잘하진 못했다고 한다.
학업에서는 우등생이면서 한편으론 소년단에서 위원장을 맡았다. 북한에서는 연령, 직업 등에 따라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조직들이 구성돼 있는데 소년단은 인민학생부터 고등중학교 3학년들까지가 그 대상이다. 박 씨는 소년단 위원장으로서 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며 행사 등에선 연설을 하는 등 리더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년단은 ‘좋은 일 하기 운동’이라고 해서 북한 체제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펼쳤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파철 모으기 운동’인데, 이는 고철을 모아 무기를 만드는 재료를 마련해주는 활동이었다. ‘녹화근위대’로 나무 심기도 했고 ‘위생근위대’로 마을 청소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가창대’로서 선거 시 사람들이 투표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선전하는 활동도 했었는데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조하는 노래도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의 ‘민주주의’와 ‘자유’는 남쪽에서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는 상부에서 정한 사람을 투표 절차로 선출하는 것을 민주적인 것이라고 교육받았다고 한다. 남쪽의 선거에 대해서는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는 등 무질서하다며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교육을 받았다. 인민학교 시절 반장 선거도 교사가 미리 정한 후보에 대해 찬반투표를 했지, 여러 학생이 출마해서 그중에 선택하는 방식은 겪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 교육에서 자유에 대한 내용도 특이하다. 박 씨의 견해에 따르면 북한에서 강조되는 자유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에서 개인이 누리는 자유의 의미를 찾자’는 것이 자유에 대해 북한에서 배운 바이다. 이는 1970년대 유신독재정권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주창한 것처럼 괴이한 용어 사용이라 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우등생이자 소년단의 위원장으로서 그는 인민학교의 모범생이었지만 소년단 ‘생활총화’ 시간은 너무도 싫어했다고 한다. 생활총화는 매주 토요일 소년단 활동을 평가하는 시간인데 자기비판도 해야 했다. 그 시간에는 서로에 대한 비판도 이뤄졌는데 친구 간에 비판을 하다가 다투는 일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 대다수도 이를 싫어해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생활총화 시간이 너무 심각한 분위기라서 어린이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싫었던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씨는 어린 시절 북한의 체제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남조선’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으며 이런 불행한 ‘남조선’에서 고통 받는 어린이를 구제하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논리적인 사고로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체제가 심어준 가치관일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은 국제정치와 경제에 있어 한국보다 앞서나가고 있었기에 북한의 평범한 사람이 충분히 그렇게 믿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이 어린이는 수십 년 후 스스로의 결단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벗어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구술 박명호·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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