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음식문화에서 다양성과 응용성이 가장 유용한 음식 한 가지가 있다면 국물음식일 것이다. 조리법도 간단하여 고추장, 된장, 소금, 간장류에 멸치, 다시마 등을 넣고 우려 낸 국물에 재료가 될 만한 건더기를 넣고 적당히 끓여 내기만 하면 된다. 이렇다 보니, 가짓수만 하더라도 몇 가지라고 딱히 정해진 것이 없으며, 넣은 재료에 따라 맛도 다르고, 이름도 달라진다. 더불어 적은 양의 건더기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 배불리 나눠 먹을 수도 있다. 대식구의 가난한 농경민족의 음식문화에서 먹을 수 있는 재료라면 무엇이든 넣고 끓여 내기만 하면 되는 음식으로 시작된 국물음식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밥도 되고 반찬도 되어주던 음식이다.
속초는 홍게칼국수가 물회처럼 대세
이 국물 음식 중에서 칼국수는 아마도 우리 입맛에 가장 걸 맞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입심으로 후루룩 빨아 당기는 면발은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듯하고, 잉여로 남는 국물은 근심을 털어 내듯이 훌쩍 들이켜야 제 성미의 맛이 난다. 유독 장국물의 식성을 좋아하는 속초 양양 고성 사람들이다 보니, 요즘 들어 별의별 재료를 넣고 한소끔 끓인 칼국수들이 별미이다. 장칼국수, 홍합칼국수, 째복칼국수, 명태칼국수, 대구칼국수, 도루묵칼국수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해산물을 이용한 칼국수를 맛 볼 수 있는데, 속초에서는 근래 들어 홍게칼국수가 물회처럼 대세이다. 홍게를 재료로 한 홍게물회, 홍게국수, 홍게비빔밥도 있지만, 장국물에 우려져 홍게 특유의 향과 구수한 뒷맛이 구수하게 붙는 홍게칼국수가 제일이다. 된장국물에 붉고 긴 다리를 가진 홍게 한 마리를 뚝뚝 끊어 넣고 끓여낸 홍게칼국수는 시원하게 구수한 국물만으로도 성찬이다. 결코 대게 다음으로 취급받는 만연 2인자의 억울한 맛이 아니다.
속초고등학교 입구 버스정류장 대로변에 위치한 생생칼국수(631-9965)집의 홍게칼국수가 꼭 이럴만한 맛을 낸다. 테이블 서 너 개의 작은 칼국수집이다. 바지락칼국수, 홍게라면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 집의 홍게칼국수를 찾아온다. 주인 최유현 사장이 혼자 주문 받고 끓여 내느라 손님이 서넛만 되도 때론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이름난 홍게칼국수도 아니지만, 이 집의 홍게칼국수 국물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깊고 구수한 국물 맛이 반전이다.
홍게 내장·다리살 넣고 짠하게 우려내
꼬박 3년을 묵힌 막장을 칼국수 장국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시판된장으로 끓이면 메주냄새가 나는 듯 하면서 얕은맛이 나지만, 막장으로 끓이면 홍게에서 우려 진 달짝지근한 국물과 섞이면서 구수한 맛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에 막장을 쓴다고 한다. 막장을 끓일 때도 홍게껍질, 양파, 대파 등을 넣고 서 너 시간 우려 낸 홍게 육수에 풀어서 끓여낸다. 홍게 육수에 막장을 풀어 끓여 낸 홍게칼국수는 무엇보다 국물 맛이 보배롭다. 막장 특유의 구수함과 홍게의 내장과 다리살에서 짠하게 우러난 국물은 밥도 되고, 해장되고, 별미도 되어 줄 만하게 감칠스럽게 구수하면서도 시원하고, 홍게의 단맛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칼국수 면발은 꾹꾹 눌러 가며 치댄 손반죽 면발은 아니지만, 능청스러울 만큼 국물에 더 없이 융통성 있게 감쪽같이 잘 어울린다. 오직 이 국물 때문에 홍게칼국수 곱배기를 찾는 손님들도 있으니, 칼국수의 풍미는 면발 다음이기 전에, 국물 맛이 입맛을 더 당겨야 한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홍게칼국수 한 그릇 값은 7천원이다. 국물이 맛있고, 찬품으로 내놓는 김치도 맛있고, 곱배기라 해서 돈을 더 받지도 않는 정까지 담긴 것이 이 곳의 홍게칼국수이다. 때론 칼국수가 아니고서야 느껴지지 않을 심술 같은 입맛일 때, 찾아가면 국물 한 숟가락에도 흐뭇해질 만한 홍게칼국수집이다.
시민기자
진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흠뻑 밴 홍게칼국수 면발.
막장으로 끓여 텁텁하지 않으면서 구수한 맛이 진한 홍게칼국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