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보 작가는 학창 시절 운동에서 재능을 보이는 학생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사이클 선수였고 고등학생일 때는 야구와 테니스를 했다. 그렇게 그의 미래는 스포츠 분야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혼자서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면 그림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취미로 그림 그리는 것을 본 미술 교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미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순식간에 그의 진로는 바뀌었다.
미술교육학과로 진학한 그는 처음에는 서양화를 그렸다. 그런데 회화는 재료값이 많이 들어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조소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조소도 비용이 만만하지 않은 분야이지만 그는 고물을 주워다가 조립해서 조소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조각가가 됐다.
“돌에 형체를 집어넣는 게 어려워”
장국보 작가가 대학을 다닐 때의 일화이다. 그가 돌을 다듬으며 작품을 만들다가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자 약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작업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대형 망치로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은 작업물의 하단을 힘껏 내려쳤다. 그러나 단단한 돌은 거의 깨어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에 작가는 오기가 발동했다. 있는 힘을 다해 석상의 다리 부분을 한 번 더 두드렸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래를 쳤는데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엉뚱하게도 조각상의 목 부분에 금이 가면서 상의 머리가 떨어졌다. 오랜 작업으로 형체가 거의 다 나온 작업물이 그렇게 돼버리자 작가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경험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작가의 가슴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작가가 특별한 도구를 잘 쓰지 않고 망치와 정으로 조금씩, 조금씩 작업을 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런 더딘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대학 때의 이런 경험이 그 바탕을 이뤘을 것이다.
“돌에다가 형체를 집어넣는 것은 어렵습니다. 돌에서 형체를 끄집어내는 것이 오히려 쉽지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흥미로운 표현으로 설명했다. 돌에다가 형체를 집어넣는다는 것은 어떤 조각품을 만들지 구상한다는 뜻이고 돌에서 형체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망치와 정으로 돌을 다듬는 과정을 의미한다. 위와 같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국보 작가는 구상의 단계를 중시한다. 구상을 완벽하게 해낸다면 작업은 헤매지 않고 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돌에서 형체를 끄집어내는 것이 쉽다”는 말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듯이 작가에게 돌을 다듬는 지난한 과정은 까다로운 일이기보다 성취를 향해 가는 도정이다.
‘장국보 조각마당’ 전시 작품들
조각마당 야외전시장에서는 두 개의 <어부> 작품이 눈길을 끈다. 작가가 어린 시절 속초에서 흔하게 보던 모습을 담았다. 하나는 어부가 그물을 한쪽 팔로 들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어부가 두 손으로 그물을 끌어당기는 모습이다. 그런데 조각상의 크기가 보통 사람보다 큰 거인의 형상인 데다가 역동적이어서 어부가 아니라 마치 전사 같기도 한다. 이제는 관광도시로 유명한 속초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치 전사와도 같았던 어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도 보인다.
어부상 앞에는 태아를 형상화한 작품이 있다. 태아 둘이 붙어 있는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태아 중 하나는 인간의 태아이고 하나는 거북이의 태아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은 태아일 때 다른 포유류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인간도 다른 동물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따라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태아 둘이 붙어 있는 것은 하나가 떨어지면 다른 하나도 같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인터뷰 도중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 인류가 지구에 있어 어쩌면 암과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고 밝혔다. 잠깐 부연하면 작가는 평소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학교 쓰레기의 대부분을 재활용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런 공로로 2010년에는 강원일보사와 KBS춘천이 공동으로 주최한 강원환경대상 시상식에서 ‘환경교육 및 홍보활동 부문상’을 받은 바 있다.
조각마당에서는 거대한 금속 포크들이 뒤엉켜 있는 작품들도 여럿 보인다. 이건 인간들이 서로 찌르며 싸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근데 작가는 이런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멀리서 보면 멋진 풍광의 고요한 숲도 그 내부에서는 다양한 생물들의 투쟁이 전개된다. 인간이 서로 싸우는 것도 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일지 모른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실내 전시실에 있는 <삶의 무게>라는 작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람의 머리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올라가 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작품이다. 그리고 <말타기>란 작품의 어린이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햇님, 달님>의 아이들도 동화 속 귀여운 주인공 모습 그대로이다.
작가가 화강암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돌은 지속성에서 다른 재료들을 월등히 능가한다. 수만 년 전의 석기가 당시 인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증언한다. 도시와 문명이 없어져도 석상은 남아 역사를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 화강암으로 조각을 하는 것은 글로 기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어쩌면 수천, 수만 년 후, 미래의 고고학자가 장국보 작가의 작품으로 우리 시대를 재구성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만약에 우리 인류가 환경 재앙으로 멸망하더라도 작가의 작품이 남아서 인간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장국보 조각마당’을 부담 없이 방문해 주길 바라고 있다. 그가 직접 전시관을 만들어 상설전시를 하는 이유도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만나기 위해서이다. 누군가 불쑥 찾아가더라도 작가는 ‘마음씨 좋은 선생님’으로서 부드럽고 차분하게 안내해줄 것이다. 작가의 조각마당은 7번 국도를 달리다가 언제라도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천진사거리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거인 같은 어부의 모습이 마치 위대한 전사처럼 보인다.
작가는 화강암 조각을 주로 하지만 포크를 형상화한 연작은 금속재료를 사용한다.
인간의 태아와 거북의 태아는 닮았고 인간과 지구의 다른 생명체는 하나의 운명이다.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하나의 돌덩이를 이고 산다.
작품 <말타기>. ‘장국보 조각마당’에는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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