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연재를 시작하며
흔히 예술이라고 하면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고매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술은 분명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다. 창작물이 다루는 주제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작품’도 현실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 열광적 몰입, 그리고 부단한 노력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 연재에서는 창작 결과물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현실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따라서 이 연재는 예술 평론이 아니다. 예술가가 어떤 고민을 안고 있으며,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그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이 예술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의 성격도 가진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예술가가 직접 작업하는 현장에서 현실 속의 예술가를 살펴보게 된다.
이번 연재의 대상 분야는 미술, 사진, 문학, 음악, 연극, 영화, 공연, 디자인, 공예 등 모든 예술 장르이다. 연재의 대상자는 우리 지역의 작가이다. 물론 우리 지역이 배경인 작품을 만든 이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완숙한 경지에 올라 주목받는 작가뿐만 아니라 조용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이나 아직은 성취가 부족한 신진 작가도 충분히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연재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더 쉽게 이해하는 가교가 되길 바란다.
‘장국보 조각마당’은 작업실이자 전시실
고성군 토성면 천진사거리 인근 한적한 도로변에는 넓은 벌판을 배경으로 작은 조각공원이 보인다. 쇠로 된 커다란 포크들이 뭉쳐져 있는 작품도 있고 그물을 든 어부 조각상도 보인다.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석상도 있고 커다란 새싹이 발아하는 작품도 입구에 놓여 있다. 조각품들이 놓인 마당을 지나 건물 앞에 이르자 ‘장국보 조각마당’이라는 돌로 된 작은 간판이 벽 속에 박혀 있다.
장국보 작가가 편안한 표정, 평온한 말투로 방문객을 맞는다. 그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실내는 또 다른 전시공간이다. 역시 조각 작품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 돌로 만든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쇠로 만든 거대한, 그러나 일그러진 포크들도 역시 전시 중이다. 그리고 벽에는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실내 전시실의 오른쪽 외부가 그의 작업실이다. 작업실에는 지붕이 있지만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야외 작업실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작업실에는 작업을 대기 중인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높이는 성인 남자의 키보다 더 높고 너비는 두 팔을 벌린 리치쯤 되며 두께는 어깨 너비만큼 두껍다. 그 큰 돌의 아래에는 둥근 받침대가 놓여 있는데, 이 받침대는 작업 시 돌의 방향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작가가 작업의 편의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고 한다. 작가가 긴 쇠막대를 가지고 와서 그 막대로 땅을 짚고서 돌을 밀자 몇 톤은 돼 보이는 큰 돌이 움직였다. 그 큰 돌이 언제든 쓰러질 수 있을 것만 같아 오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소 작가들은 다양한 소재로 작업을 한다. 어떤 이는 흙을 주로 사용하고 또 다른 이는 나무를 주재료로 이용한다. 장국보 작가의 주재료는 돌이다. 돌 중에서도 굉장히 단단한 화강암인 ‘영주석’을 선호한다. 화강암은 우리의 조상들이 불상과 탑들을 만든 돌이다. 그리스 같은 서구에서는 돌 조각품들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대리석은 화강암에 비해 단단함이 덜해 조각을 하는 데 있어 힘이 훨씬 적게 든다. 따라서 오뚝한 코와 또렷한 눈매를 가진 서구인들의 모습을 표현해내기가 쉽다. 반면 화강암은 너무 단단해 무언가를 섬세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작은 눈과 코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은 대리석이 아니라 화강암으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는 화강암이 잘 맞는 재료라고 장석보 작가가 말했다.
망치와 정으로 고집스럽게 작업
돌을 다루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 작업을 하다가 한 번이라도 잘못 깎아내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작업을 하면서 파편을 맞아 다치기도 한다. 피가 흐를 정도로 세게 맞아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단지 작업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돌을 들여와서 작업실에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고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옮기다가 떨어트려 파손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완성 작품을 옮기는 문제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장국보 작가의 작업 도구는 간단한 편이다. 망치와 정을 주로 쓴다. 그라인더 같은 기계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망치와 정만으로 이뤄진다. 요즘은 작가들이 기계를 많이 사용하고 다른 이들을 동원해서 작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장국보 작가는 고집스럽다 할 정도로 망치와 정으로 혼자서 묵묵히 작업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인지 작가의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가격을 후하게 해서 팔기를 바라는데도 팔지 않은 경우가 꽤 된다. 돈 많은 기업 총수가 초청해서 고상하게 대접을 하면서 구매를 요청한 경우도 있었지만 작가는 판매를 거절했다. 어떤 이는 작가가 소장한 작품 전체를 구매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했다. 작가는 다루기 힘든 소재를 매우 길고 지난한 과정, 길게는 2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마치 자식을 만들어내는 느낌이 들어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애착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작가는 작업에 들어가면 하루에 3만 번의 망치질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수백만 번 망치로 두드린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예술이지만 그 탄생까지의 과정은 중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힘든 과정을 즐긴다. 망치질 한 번, 또 한 번에 어느새 해가 저물고, 다시 작품에 빠져 있는 사이에 해가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희열감은 누구도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더군다나 조금씩, 조금씩 형태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감정은 배가된다.<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장국보
-1960년 속초 출생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학과 졸업
-2009년 한국현대조각초대전 작품상 수상(춘천MBC)
-2010년 송추아트밸리 현대조각 초대전
-2014년 현대미술 12인의 시각과 전망전(예일화랑)
-2015년 평창비엔날레 특별전
-2003년 ~ 현재 장국보 조각마당 상설전
-속초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
고성군 토성면에서 상설전시를 열고 있는 장국보 작가.
‘장국보 조각마당’의 실외 전시장.
‘장국보 조각마당’의 실내 전시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