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은 노년을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봉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적절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여기에 또 다른 무언가를 더하고 있다.
“시간을 조금만 투자한다면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고 봉사할 곳도 많아요.”
올해 일흔다섯인 김정자 씨의 표정은 밝고 경쾌했다. 낭랑한 목소리는 열 살쯤 더 젊게 들렸다.
즐거운 표정의 김정자 씨는 인터뷰 서두에서 마치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일부러 준비한 듯 세 가지 생활신조를 먼저 제시했다. 첫째,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하자. 둘째, 배우는 것을 즐기자. 셋째, 욕심내지 말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자. 이 중에서 김 씨는 세 번째 것을 강조했다. 사랑을 통해 감정이 풍부해질 수 있고 그게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조들은 단순히 말에만 그치지 않고 김 씨의 삶에서 충실히 지켜지고 있는 듯 보인다.
노인복지관서 배우고 봉사하고
김정자 씨는 매일 속초시노인복지관으로 ‘출근’을 한다. 직원이 아닌 이용자이지만 매일 복지관에 나가고 있어 마치 출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빠짐없이 복지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당구를 배우고 물리치료실에서 치료 장비를 이용하고, 시간이 나면 악기를 연주하다가 탁구 삼매경에 빠진다. 그리고 매주 정기적으로 요가도 배우고 검도도 하고 있다. 복지관에 개인사물함이 있어 책을 보관하며 읽고 있다. 복지관에 오갈 때도 셔틀버스를 타는 등 아주 알차게 복지관을 이용 중이다.
김 씨는 자신이 복지관을 통해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복지관을 위해 무언가라도 하자는 마음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래서 하다못해 복지관에 떨어진 쓰레기라도 발견하면 어서 줍자고 생각한다며 노인복지관에 대한 큰 애정을 드러냈다.
김정자 씨가 속초시노인복지관에서 그저 받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매주 한 번씩은 노인들을 위한 노래교실을 운영하며 봉사를 하고 있다. 복지관 1층 주간보호센터에서 노인 15~20명 대상으로 우쿨렐레를 치며 함께 노래하고 간단한 운동도 지도하고 있다. 이때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전에 5년 동안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 봉사를 했는데 아이들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배려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는 아동성범죄 예방을 위한 실버인형극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 속초시노인복지관을 통해 인형극에 대해 배웠고 이후 극단의 구성원으로서 한 달에 한 번은 유치원에서 공연을 한다. 그저 말로 교육하는 것보다 극을 보여주기에, 산만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도 쉽게 몰입한다고 한다. 앞으로는 소재를 아동성범죄 예방에 국한시키지 않고 다변화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보통 노인들은 위축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김정자 씨는 인터뷰 내내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가득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할 때면 자신만의 노하우와 특별함이 무엇인지 들려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듯 보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검도를 배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김 씨는 60대에 검도를 시작해 해동검도 1단을 취득했다. 그리고 우쿨렐레와 오카리나도 일흔이 다 돼서 배워 이제는 행사에서 공연도 하는 정도가 됐다. 조만간 드럼도 배울 생각이다. “잘 배울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모습에선 실제로 그럴 것 같은 신뢰감이 들었다.
“좋은 기억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
김정자 씨의 이와 같은 당찬 면모를 보면 그가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도 살면서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어왔고 몇 해 전에는 재산상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봉포 바닷가 앞에서 5층의 큰 모텔을 운영했는데 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오래지 않은 일이라 여전히 괴로워할 법도 하지만,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평가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 중에는 한국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는 남해안의 섬에서 나고 자라 그런 참화를 겪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어린 시절, 당시 흔하지 않은 유치원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예전에는 진학 시에 딸이라고 차별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그는 그런 일 없이 대학 교육까지 무사히 마쳤다. 아름다운 섬에서 자란 기억은 두고두고 소중한 추억이다. 젊을 때 그가 경험한 다양한 문화생활들도 그에게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좋은 기억이 제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지요.”
김 씨는 그렇게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었다. 수많은 일들을 겪었겠지만, 안 좋았던 기억들은 잊고 좋은 것들만 되새겨보는 듯했다. 아마도 이런 태도는 그가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데 있어 든든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많네요. 남들은 저를 보고 바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스스로 잘 조절하고 있지요.”
이렇게 말하는 김정자 씨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지역을 위해 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실버인형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자 씨.
김정자 씨(왼쪽)가 인형극 공연을 하고 있다.
김정자 씨는 매달 한 번씩 인형극 공연을 하며 어린이들을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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