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2년 전, 내 나이 26세 때 이야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 고시를 준비하러 형이 사는 부산대 근처에서 기거할 때 ‘상아회집’ 최영근 대표는 부산 광안리 회센터에서 칼을 배웠다. 당시 광안리 회센터는 3층 건물에 1층은 수족관을 갖추고 있었다. 손님들이 1층에서 직접 선택한 횟감을 들고 2~3층에 포진한 회집에 올라가 주방에 맡긴 회를 각종 반찬과 함께 먹는 시스템이었다. 밤 10시쯤 영업이 끝날 무렵 광안리에 가면 손수 준비한 회에 술을 곁들여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다. 광안리 칼잡이들을 서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을 하던 시기였다. 칼솜씨 좋기로 소문이 났는지 ‘상아회집’ 최영근 대표는 스카우트의 표적이었다. 손재주는 타고난다고 하던가. 같은 횟감을 썰어도 맛의 차이를 느끼는 것은 바로 ‘칼맛’때문이리라.
최영근 대표는 고향 속초에 정착하면서 회집 등을 운영하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지하에서 ‘상아회집’ 상호로 8년 동안 재래시장 활성화에 한몫을 했다. ‘상아회집’이 유명해진 것은 최 대표의 칼맛뿐만 아니라 기존 회집 스타일을 파괴한 코스별 식단에 있다. 어종별로 그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8~10개 접시에 회를 담아낸다. 최 대표는 ‘상아회집’ 마니아들이 대폭 늘자 공간도 협소하고 질적으로 소홀해지는 것을 경계해 청호동(설악금강대교로 58)으로 회집을 옮겼다.
홀(Hall) 입구에 붙은 1954년도 청호동 컬러사진이 눈에 띈다. 청초호를 준설하면서 청호동 허리를 끊어 수로가 났고 청초호 일부를 매립한 곳에 청호동 주민 일부가 이주해 미리내마을이 되었다. ‘상아회집’은 미리내마을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얄궂은 운명이다. 최영근 대표가 태어나 놀던 청초호 교동항도 매립돼 사라졌다. 홀로 들어서니 인테리어가 일식집마냥 깔끔하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지하 때보다 주방 냉장고가 대형이다. 활어를 잡아 숙성하는 시간이 회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회가 꼬들꼬들 씹히는 맛은 단기 숙성의 비결이다.
‘상아회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본간장에 생와사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된장에 참기름과 마늘을 섞은 양념도 있다. ‘상아회집’ 회 정식은 1인 기준 3만원, 4만원, 5만원 코스가 있다. 대게를 곁들인 코스도 있다. 멍게와 오징어, 구운 꽁치가 먼저 식단에 오르고 세꼬시, 우럭에 초밥, 방어, 깔따구, 전복치, 쥐치, 미나리로 감싼 복, 도다리, 광어, 배추에 소스 바른 복어 등이 차례로 나온다. 마무리로 수제비를 넣은 매운탕이 제 맛이다. 김치 맛도 기가 막히다.
이 건물 2층에 있는 드립커피 전문점 카페 ‘커피 플레이트’에서 드립커피로 회의 잔향을 북돋워도 좋을 듯하다. <예약 033-637-7732> 이수영 전문기자
속초 청호동 설악금강대교로에 위치한 ‘상아회집’.
상아회집은 숙성된 회를 어종별로 접시에 담아 코스로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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