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종합사회복지관에는 제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한 교육과정인 ‘청어람학교’가 2005년부터 개설돼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노년기의 어르신들이 한글 등을 공부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또 한편으로는 서로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담당 교사도 학생들과 비슷한 연배이다. 청어람학교 교사인 이미자 씨는 무술년을 맞아 일흔 일곱이 됐다. 희수(喜壽), 즉 ‘기쁜 나이’가 된 것이다. 오늘은 이미자 씨의 ‘기쁜’ 일상을 한번 확인해 보자.
젊은 시절 교사생활…1997년 속초로 이사
학창 시절, 이미자 씨의 꿈은 교사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한 권유로 약대에 진학하게 됐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전공을 선택했지만, 이 씨는 기쁘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 시절 문과 공부를 하다가 화학 공부를 하게 된 것도 힘들었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가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 가정과로 전과를 했고 교직 과정을 이수해서 교사 자격을 갖추게 됐다.
“전 참 특이한 사람이었나 봐요.”
이 씨는 당시에 약사의 길을 포기한 자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얘기했다. 부모의 기대보다 자신의 길을 택한 것이 자랑스러운 듯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교사 생활은 길게 가지 못했다. 5년여의 교사 생활을 한 후 남편의 직장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전업 주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이 씨가 다시 교단에 서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게 된다.
이미자 씨는 30년째 당뇨병과 싸우고 있다. 40대에 발병한 이후 한때 의사가 요양을 강력하게 권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속초로 여행을 오게 된 것이 속초에 정착한 계기가 됐다. 설악산의 풍광에 반해 1997년에 속초로 이사를 왔고 이곳에서 생활하며 차츰 건강을 찾게 됐다.
이 씨가 다시 교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2009년의 일이다. 당시 속초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노인들을 위한 교육 과정을 담당할 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순 여덟의 나이에 다시 교단에 서게 됐다.
교사로서의 생활은 이미자 씨의 삶에 있어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경험이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본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공부할 시기를 놓친 학생들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이를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고 한다.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강의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강의를 하면서 외출을 해야 하고 몸도 움직이므로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재작년 여름에 위장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은 바 있지만, 잘 관리하여 수업을 빠지지 않고 진행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명감이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신 영화 보고 독서도 꾸준히
“앞으로 지금보다 건강이 더 나빠지겠지만 누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가면 나이를 먹겠지만 늙어가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게 잠재된 것을 찾고 싶네요.”
희망차고, 어쩌면 비장하기도 한, 이미자 씨의 이와 같은 말처럼 이 씨는 평소에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우선 여행을 자주 하려고 한다. 남편과 함께 1주일에 한 번씩은 문화유적 등을 찾아 간다고 한다. 단순히 갔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공부를 하고 가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현장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려 하고 있다. 현장에 있는 안내문도 전부 다 꼼꼼히 읽는다고 한다. 그냥 가서 경치만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최신 영화도 빠트리지 않고 보고 있다. 독서를 하면서는 많은 책을 읽진 않지만 꾸준히, 그리고 꼼꼼히 읽고 있다. 서예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몇 해 전에는 만해대전에서 2년 연속 입선을 했다고 한다.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취미로 탱화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설악신문>의 시민기자로도 다년간 활동해오고 있다. 2011년에는 한국노인복지관협회가 주관한 신노년문학상에서 가작을 수상한 바 있다. 이미자 씨가 최근 몇 년간 일상에서 해온 활동을 몇 가지만 나열했을 뿐인데 너무도 다채롭다. 팔순을 앞둔 노인이 일상적으로 이렇게 열정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행복한 노년을 추구하는 이들이 눈여겨 볼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미자 씨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읊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미자 선생님’의 다채로운 일상은 그렇게 말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보인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속초종합사회복지관 청어람학교에서 노년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미자 씨.
이미자 씨가 청어람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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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 씨가 추천한 책 –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멋진 노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이미자 씨는 멋진 노년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자신이 요즘 읽고 있는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는 90세에 아들의 권유로 시를 쓰기 시작해 2010년에 99세의 나이로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발표한 사람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10대 때 가세가 기울어 음식점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등 젊은 시절 많은 고생을 겪었다고 한다. <약해지지 마>는 2010년 일본에서 15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시집은 일상의 소중함을 그리고 있고 인생의 선배가 건네는 상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광호 객원기자
책 ‘약해지지 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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