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예년처럼 새해 첫날 해맞이를 했다. 늘 그랬듯이 해안가마다 해돋이를 보러온 사람들로 온통 북적였다. 어제 떠올랐던 태양과 오늘 떠오른 태양이 별반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막히는 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새해 첫날 해맞이를 하러 동해안 바닷가로 몰려왔다. 사실 자연은 자연의 시간대로 그냥 흘러가는 것일 터인데, 인간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맞춰 만들어 놓은 시간 단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해 첫날 아침부터 새해 덕담을 주고받느라 휴대폰의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 가운데서도 각양 각지에서 맞이한 해돋이 풍경을 첨부해서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새해 덕담을 주고 받다보니 문득 그동안 해왔던 해맞이 중에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복학을 준비하던 20대 때였다. 절친했던 대학 친구 한명과 같이 설악산 대청봉에서 새해 첫 일출을 보기로 했다. 그 친구나 나나 모두 산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깜깜한 새벽녘에 오색에서 출발해서 대청봉 정상에 올라 해돋이를 보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다행히 날씨는 흐리지 않았고 우리는 눈이 쌓인 대청봉 정상에서 어스름한 수평선을 뚫고 말갛게 솟아오르는 첫 태양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빌었던 소원이 ‘애인 만들기’였던 것 같다. 그 소원은 그 해의 꼭 반을 지나고 이루어졌었다.
밀레니엄 열풍이 몰아치던 2000년 첫 해돋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밀레니엄’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회자되었고 무언가 나라 전체가 들썩들썩 하던 때였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첫 태양을 보겠다는 사람들로 그렇지 않아도 밀리던 동해안 가는 길은 그야말로 온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나름 속초에 도착하면 근사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첫 일출을 맞이하려던 계획은 밀리는 차들로 인해 출발 시점부터 어그러져 버렸고, 속초엔 도착하지도 못한 채 어느 휴게소에서 어묵을 먹으면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해야 했다. 결국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운전한 탓에 늦잠을 자버렸고, 이미 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떴을 때야 비로소 바닷가에 당도할 수 있었다.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어느 해에는 해맞이 ‘그랜드슬램’을 하기도 했었다. 고성에 있는 한 펜션에서 몇 명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전날 송년 파티를 하고 새해 첫 해맞이를 ‘대진항 등대’에서 했다. 새벽녘부터 분주히 해맞이를 하려고 서두르다가 그때는 아직 어렸던 아들의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다. 새해 첫날부터 신발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며 등대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결국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찾아 안도했던 그 느낌도 새롭다.
그 다음날에는 서울에서 온 지인과 함께 ‘속초항 등대’에서 둘째 날 해맞이를 했고, 셋째 날에는 연휴를 맞아 놀러온 처가 식구들과 함께 양양의 한 리조트에서 해맞이를 했다. 북쪽에서부터 차례대로 고성군, 속초시, 양양군을 아우르는 새해 해맞이 ‘그랜드슬램(?)’을 이룬 셈이었다. 이 곳 저 곳에 그 때 찍었던 인증 사진들과 이야기들을 올렸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해맞이를 보러 먼 길을 거쳐 이 곳 동해안까지 오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해 본다.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단어를 굳이 찾으라 한다면 ‘간절함’이 아닐까? 가족들의 건강과 사업의 번창, 학업에서의 성취나 취업 또는 승진, 혹은 애인 만들기. 이런 보편적인 우리네들의 소망이 매년 새해 첫 해맞이의 단골 메뉴일 것이다. 그만큼 간절하기에 여러 어려움들을 감수하고라도 해맞이를 하러 오는 것이리라.
올해의 첫 태양도 예쁘게 잘 떠올랐다. 바닷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파도처럼 많은 소원들도 모두 이루어지고 새해 첫 해맞이를 하지 못한 이들의 간절함도 다 이뤄지는 꿈같은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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