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 복판 육교위에 한 젊은이가 서있다. 초대형 건물을 향해 스마트 폰의 버튼을 누르자 건물전체가 일시에 암흑상태가 되어버렸다. 전력이 차단된 것이다. 이번에는 달리는 전철을 향해 역시 스마트 폰으로 몇 번의 터치를 하자 곧바로 멈춰버렸다. 이정표의 행선지가 임의로 조작되어 바뀐 것이다. 수년전 모 방송국에서 사이버테러의 현실을 다룬 프로그램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가상의 상황을 픽션으로 꾸민 것이 아니고 실제상황이다.
우리는 이미 수년간 크고 작은 여러 해킹사고들을 경험했다.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문제에서부터, 심각하게는 은행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을 겪었다. 2011년 4월 발생한 농협해킹테러는 일주일 이상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 사건은 미국 컴퓨터 보안업체 맥아피의 ‘한국 DDos 공격에 대한 맥아피 보고서’를 통해서 결국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이어서 2013년에는 국내 방송사와 금융사 6곳의 전산망이 동시에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북한 정찰총국의 소행으로 드러난 이른바 ‘3.20사이버테러’이다. KBS, MBC, YTN 방송 3사와 농협과 신한 그리고 제주은행의 금융전산망이 마비되었다. 방송관련 피해액만 8천6백억원이 넘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사이버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국론분열 현상이다. 사이버테러는 통상적으로 원인규명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이때마다 일부 언론들은 부정적 의견과 수많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한 행태를 보여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이버테러관련 전문가를 자처했다.
필자는 정보보안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IT만을 연구해왔다. 27년 전에 이미 대학신문에 컴퓨터해킹에 대한 기고문을 게재했었다.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대비해 10만 해커 양병설도 일찌감치 공감했었다. 북한은 이미 1986년부터 해킹부대를 설치하였고, 현재 정찰총국 산하에 전문해커 3천명의 사이버테러 전담부대를 운영하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국회에서 테러방지법과 관련하여 무제한토론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보안전문가도 아닌 국회의원들이 테러방지법의 역기능을 지적하면서 한사람이 열 시간이 넘도록 발표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성문법은 없다. 왜냐하면 법을 만든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령 완벽한 관련법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완벽히 막지는 못한다. 적에 의한 사이버테러는 우리의 법적완비와 무관하며, 법조문의 오류지적과 분석으로 대비할 수 없다.
유엔은 대북제재안을 결의했건만 정작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주국방을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는가. 우방은 불리하면 언제라도 손을 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이버테러 위협은 점증하는 현실이다.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다. 북한이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사이버테러 위협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것이 현실적 상황이다.
개인정보보호, 사생활침해문제 그리고 인권보장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로 영존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라이프의 ‘Life At War’ 사진첩에는 6.25남침전쟁의 참화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너부러진 주검을 보면 인권과 인간의 존엄은 한낱 사치스런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북한의 미흡한 기술수준과 실패에 안도하는 것은 국방이 아니다. 국방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완성될 수소폭탄과 핵탄두 장착을 기정사실화하고 방비책을 세우는 것이 국방이다. 사이버테러위협은 분명한 현실이고 실제상황이다.
최철재
경동대교수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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