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1월은 동해안에서는 가장 슬픈 달로 기록될 것이다. 대화퇴어장에 조업을 나갔던 325명의 어민들이 폭풍우를 만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10월 28일 오후 3시쯤부터 울릉도 동북쪽 250마일에 위치한 대화퇴어장에 우박이 쏟아지고 폭우까지 몰아치며 파고 10미터가 넘을 듯한 삼각파도가 일었다. 사고 당시 대화퇴 어장에는 한국어선 5백여척과 일본어선 5백여척이 조업 중이었다. 어로보호본부는 당시 폭풍은 1백여톤급 어선 정도라야 조난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의 폭풍우였다. 46시간 동안 몰아친 폭풍우로 동해안 항포구에서 출어를 나간 오징어잡이 어선 다수가 침몰하거나 실종되었다. 그리고 사고 후 10일 넘게 총력을 기울여 구조작업을 펼쳤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어민가족들은 뱃머리에 나서서 실종된 가족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사고가 난지 보름이 지나서 일본 해안에서 표류되어 밀려온 한국어선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배에서는 죽은 선원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표류한 어선 금룡호에서 15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대사관 직원이 나오지 않아 10여명의 재일동포가 시신처리를 위임받아 화장을 해서 유골만 국내로 송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모두 14척의 오징어잡이 선박에 탔던 325명의 선원들이 망망대해 바다에서 폭풍우를 맞아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불귀의 혼이 되고 말았다. 피해 선박과 선원 중 속초항 소속은 △금성호(20톤) 23명 △제2동천호(18톤) 1명 △명철호(18톤) 1명 △순천호(16톤) 19명 △장기호(28톤) 29명 △제3홍익호(18톤) 26명 △제5용성호(18톤) 24명 △제3장성호(26톤) 25명이다.
이 믿기지 않는 해난사고에 온 속초시민들이 망연자실했다. 돌아오지 않는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이 당시 신문에 기사로 실렸다.
지난달 28, 29일의 동해안 鬱陵島(울릉도) 근해의 폭풍우는 속초시의 속초초등학교 교실마다에 모진 비보를 뿌렸다.
속초국민학교는 이번에 52명의 어린이가 아버지를 잃었으며 오빠나 형을 잃은 어린이도 60여명에 이르렀다. 졸지의 비보는 연중 전해지지만 이번처럼 무더기로 밀어닥친 것은 처음 있는 일.
교실마다 넋을 잃고 침울한 분위기였고 어린이들은 수색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수업만 끝나면 부둣가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아버지”, “형”을 부르는 소리는 허공에 메아리만 쳤다.
속초초등학교 3천명 학생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오징어잡이 등 어부를 부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학교는 ‘보호자 없는 어린이가 가장 많은 학교’로 이름나 있다. 해상사고가 있을 때마다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고 아버지를 잃고 생계가 막연해져 학업을 중단하는 어린이가 잇따른다. 이번 사고에서도 네 살 때 정신이상으로 어머니가 가출한 다음 오징어잡이 어부인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鄭龍起군(12, 6학년) 등이 고아가 됐고 20여명은 공부를 계속할 수 없게 될 것 같다고 교사들은 안타까워했다.
<동아일보 1976년 11월 13일 7면 ‘슬픔 가실 날 없는 어촌 학교’ 중>
당시 신문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실렸다. 속초 금호동 산꼭대기 판잣집 한평짜리 방하나에 세들어 살던 장아무개 부인은 이 사고로 남편과 둘째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37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과 살던 김아무개씨(54)는 정태열(28)과 정태선(19)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어 열흘째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누웠다. 금성호 선원 구용해씨(30, 동명동)는 “장가 밑천을 벌러 나간다”고 출어했다가 변을 당했다. 구씨는 11일을 결혼날로 잡고 그 비용을 마련키 위해 동거 중이던 권아무개씨(24)와 아들 원민군(1)을 두고 배를 탔다. 사고가 난지 한 달이 지난 12월 4일 고 구용해씨와 권씨의 영혼결혼식이 낙산사에서 열렸다.
4일 하오 1시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 법당에서는 지난 10월 동해안 해난 사고로 희생된 신랑 구용해씨(30)와 신부 권모양(24, 속초시 동명동)과의 영혼결혼식이 이웃·친지 등 10여명의 흐느낌 속에 올려졌다.
신부 권양과 신랑 구씨는 이웃에 살며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친한 소꿉친구로 신랑 구씨가 70년 파월 청룡부대의 일원으로 월남에 파병됐을 때 권양이 사흘이 멀다하고 무운 장구를 비는 위문편지를 보내 두 사람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고 71년 권씨가 귀국, 제대하자마자 약혼식을 올리고 장래를 약속했던 것.[속초]
<중앙일보 1976년 12월 6일자 6면 ‘조난 어선 희생자 영혼 결혼식’>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을까? 당시 신문들마다 조난사고의 원인 분석에 집중했다. 1968년 어로한계선 5마일 남하와 1970년 명태 치어 노가리 어획 허용 등에 따른 어장의 황폐화, 기선저인망의 무차별 남획 등으로 동해안 연근해 어장이 점점 고갈되었다. 그래서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선박 대형화에 힘입어 멀리 울릉도에서도 동쪽으로 2백50마일을 더 가는 대화퇴어장까지 오징어를 잡으러 출어하게 되었다. 대화퇴어장은 수심 2백10~7백미터의 얕은 수심의 수중분지로 꽁치와 오징어, 고등어 등 어자원이 풍부한 어장이다. 하지만 조류 변동이 심할 때는 연안의 파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격랑이 이는 곳이다. 이러한 해역에 20톤 미만의 어선들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40~50시간을 출어해 조업해 온 것이다.
원거리 출어에 따라 안전성을 더 확보해야 하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10년 넘는 선령에 20톤 미만의 소형 어선이 대부분이었다. 속초와 대화퇴어장 직선거리는 3백80마일로 선박에 설치된 10W 소형 무전기 교신거리 3백마일을 넘어서는데다 5년 이상 낡은 무선기라 툭하면 교신이 끊어졌다. 오징어 집어등을 켜는 발전기도 2.5톤으로 가볍지 않고, 장기출어에 따른 얼음과 상자 등도 소형선박에는 큰 하중으로 안전성을 떨어뜨렸다.
더구나 15톤 이하의 어선은 동경 1백31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나 지켜지지 않았으며, 선단 편성이 되어 있어도 막상 조업에 들어가면 서로 위치도 알지 못한다.
사고 당시 불량 구명동의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늘어났다. 속초항 소속 금성호 선원 2명은 구명동의를 입은 채 숨져 있었는데, 구명동의에 물이 꽉 차 있어 불량품으로 판명되었다. 정확하지 않은 기상예보도 사태를 더 키웠다. 구조된 어부들은 폭풍주의보를 듣고 조업을 중단하고 회항하는데 삼각파도를 몰고 온 폭풍이 불어닥쳤다고 했다. 사전에 충분한 경고가 없었던 것이다. 해난사고에 대비한 선원공제에 일반선원들은 부담이 커서 가입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1976년 11월 12일자 중앙일보에서는 해난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동해안 일대 무허가 저인망 어선 3백여척과 기선저인망 30여척 등이 연안의 산란장을 찾아다니며 어란과 치어를 마구잡이로 훑어내고 있어 요즘은 아예 씨가 말라가고 있다”며, 대안으로 “바다에 생계를 걸고 있는 어민들은 저인망 잠수기 등의 불법 어로작업을 없애 근해수자원을 보호하고 원해 출어선도 50~1백톤급으로 대형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해난사고의 책임 추궁이 정치 이슈로 등장했다. 당시 신민당에서는 “전대미문의 대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관이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국회에서도 “불량 구명대를 수협 모간부의 알선에 의해 속초어협장 등에게 납품한 경위를 밝히라”는 추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산청장은 “속초어협장 등 5명을 치안본부 특별수사반에서 연행 조사했으나 무혐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대화퇴어장에는 30톤 이하 선박의 출어를 금지시켰으며, 모든 어선과 선원에 대해 공제 가입을 의무화했다. 그리고 선박 대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3백25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고 나서야 동해안의 열악한 어로환경에 세상의 관심이 쏠렸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동아일보 1976년 11월 13일 7면에 실린 대화퇴어장 해난사고 관련 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