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다. 어느새 푸르던 계절도 지나가고 추수 걷이가 끝난 들판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길가의 은행나무들도 노랗게 물든 이파리를 온통 바람에 흩어내며 다가올 겨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또 흘러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고들 하는데 요즘 들어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가히 ‘LTE’급이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 가는 길은 늘 멀게만 느껴지는데 같은 길을 돌아올 때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익숙해진 길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삶의 경험이 쌓여가고, 더 이상 새로울 것 없이 삶에 익숙해지면서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반복되기에 시간이 흐름이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처음 속초로 귀향했었던 10여 년 전이 떠오른다. 바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 작은 나사로 살던 서울에서의 삶을 뒤로 하고 속초로 내려왔을 땐 오히려 모든 게 새롭고 감동이었다. 속초에서 새로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즐거웠고, 처음 하게 된 사업에도 열정이 넘쳤었다. 서울에서 지인들이 내려오면 마치 내 것 인양 안내해 주던 주변 경관들도 그때는 기쁨이었다. 설악산은 마을 뒷산이고 영랑호는 우리 집 정원 연못이며 척산온천은 매일 가는 동네 목욕탕인 듯 자랑하고 있던 나를 만나게 된다. 푸르게 파도치는 속초 앞바다는 그들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고 속초에서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모든 게 무덤덤해졌다. 급기야는 10여 년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그동안 뭘 하고 뭘 이뤄놓았나 하는 후회가 가을 낙엽처럼 가슴속에 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법 의미 있는 흔적들이 그간 삶의 길목 길목에 하나 둘씩 자리 잡고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지난 10월, 설악문화제 기간 중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적성찾기 국민실천본부 강원영북지회’ 주관으로 이뤄진 뮤지컬 공연도 그 의미 있는 흔적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배우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한 ‘배우의 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뤄진 공연이었다. 전국에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청소년들이 재능기부로 이뤄지는 연기, 노래, 춤 연출 전문가들의 손길을 통해 무대를 올리게 되는 프로젝트인데 올해로 다섯 번째 공연을 하게 되었다. 매년 서울 국립극장에서 올렸던 무대는 올해 처음으로 지방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 첫 무대가 속초에서의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수반되었고, 공연은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설악문화제 거리 행사와 시간이 겹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한창 뮤지컬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어느 순간 내게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다. 수없이 반복하며 연습했던 탓에 몇몇 배우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컨디션 난조가 눈에 보였으나 출연 배우들 모두 다 같이 엔딩송을 부를 때였다. 주연급 배우였던 이들 몇 명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본 것이다. 그들이 거쳐 왔던 수많은 노력의 순간들, 그에 따른 성취감들, 이제 끝냈다는 안도감들이 아직은 어린 그들의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에 녹아 있는 듯 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익숙함이라는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무감각한 익숙함은 결코 좋은 것일 수만은 없다는. 그리고 일상화된 익숙함을 떨쳐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고 열정일 것이라는.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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