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명태가 다 어디로 갔을까? 연근해에서 해마다 2만톤 이상 어획하던 명태의 공식 어획량은 1999년 1,392톤, 2000년 766톤으로 줄어들더니, 2008년에는 0톤으로 기록되었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1톤, 2016년에 간신히 6톤을 기록했다. 지금 우리나라 명태 소비량은 1년에 26만톤으로 국민 1인당 약 8마리를 소비한다. 이 소비량 중 연근해 조달은 거의 없으며, 러시아 배정 쿼터량 4만톤 이외 물량 20여만톤은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사실상 우리나라 바다에서 명태는 멸종되었다. 비단 명태뿐만 아니라 동해안 연근해 어획량은 해마다 감소하여 수산업계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지금 와서 사라진 명태를 양식으로 살려낸다고 하지만 과거의 어획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전망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동해안에서 명태가 사라진 이유로 명태의 남획과 수온 상승을 들고 있다. 명태의 남획은 우리 해역만이 아니라 북한해역에서도 1980년대 이후 중국 저인망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1970년 10월 17일 수산자원보호령 개정으로 명태 치어 남획이 이뤄진 것이 명태 멸종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선저인망들 무차별 노가리 조업
1963년 12월 16일 처음으로 수산자원보호령이 제정되어 명태 치어인 노가리를 잡지 못하도록 했다. 명태의 산란시기는 12월에서 1월 사이며, 명태치어 노가리가 30cm 크기의 명태로 자라자면 3년이 걸린다고 해서, 어족보호를 위해 27cm 이하의 치어를 잡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러나 바다의 갱이라고 불리는 기선저인망 등은 금지조항을 무시하고 무차별 노가리 조업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관계기관은 불법어획을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줘 왔다.
1962년 11월 3일자 경향신문에는 “속초항의 명태 어획고는 명태새끼 노가리를 마구잡기 때문에 해마다 줄어가고 있다”며, “아직도 공공연히 노가리가 매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4년 11월 4일 대구에서 발행하는 매일신문에서는 “명태새끼를 마구 잡아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포항 기선저인망업자들은 신문기자를 무마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거둔 사실이 알려져 말썽을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8년 2월 7일 매일경제에서는 “동해안 12만 어민들은 중형저인망 어선들의 남획을 막아 줄 것을 여러 차례 진정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자 이번에 또 다시 도내 어민들과 10개 어협에서 진정서를 작성해서 중앙관서 요로에 건의했다”며, “요즘 동해안에는 2백여척의 저인망 어선들이 연안 3마일 이내에까지 들어와 노가리(명태새끼)를 수만상자씩 잡아내어 팔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4년 8월 14일자 매일신문에 따르면, 기선저인망의 어업구역을 2구(강원도), 3구(경북)로 나뉜 것을 동해구로 통합해 조업구역이 늘어났으며, 매년 9월부터 다음해 6월말까지의 어로기간 제한이 폐지되어 연중 작업이 가능해져 산란 보호기도 없어졌다.
“노가리, 명태새끼 아니다” 억지 주장
저인망의 명태 치어 어획은 1970년부터는 아예 합법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1970년 10월 10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17일 수산자원보호령 개정으로 명태 채포금지체장 27센티미터 조항을 삭제했다. 1970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당시 수산당국의 의견이 뒤늦게 게시되었다. 정부는 △동해안에서의 우리나라 명태 어획이 동해 전체 명태 어획고의 1~4%에 지나지 않아 명태새끼를 잡더라도 어족자원 보호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며 △명태새끼라고 알려진 이 ‘노가리’가 실제로는 명태새끼가 아닌 딴 어종이라는 반대 주장도 있고 △명태새끼가 한국 연안에서 번식한 고기가 아니고 딴 곳에서 번식하여 한국연안에 회유한다는 주장도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소련 북괴 등이 명태잡이 금지 체장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러한 조치에 수산학계와 어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우리나라 수산학계 최고 원로인 정문기 박사는 그해 10월 21일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정부의 명태치어 어획허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박사는 “우리나라 명태 산란장은 다른 어족에 비하여 넓은 수역을 가지고 있지만 기선저인망의 남획 대상 어장이기도 하다”며, “부화한 명태 치어를 채포하도록 하면 불원에 우리 연해에서 명태 자원의 멸망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국회에서 명태 치어 남획을 막도록 수산자원보호령을 환원할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동해안 어민들도 크게 반발했다. 1970년 11월 23일자 중앙일보에서는 동해안에서 일부 저인망 어선 소유자를 뺀 모든 어민들은 노가리 어획을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노가리 불법 어획을 자행해온 저인망어선 수는 동해안에서만도 30톤급 이상 중형 30여척, 소형 60여척 등 모두 90여척. 이중 중형은 돈과 배경을 겸비한 소수 부유 어민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부정어로가 적발되어도 벌과금 3만원만 물고 나면 다음날 또다시 바다 밑을 훑어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속초시 관계자 조사 결과, 저인망 불법 남획으로 노가리는 삼척 이남으로, 명태는 주문진 이남으로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속초 어협장 유성국(40) 씨 등 어민들이 “수산청은 노가리만 잡도록 한다지만 다른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는 것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당국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보도했다.
당시 저인망 일부 선주들은 노가리는 명태 새끼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를 정부 수산당국자까지도 인용했다. 이에 대해 1978년 서울대 해양학과 김완수 교수와 허성회 대학원생은 ‘노가리와 명태에 대한 형태학적 고찰’이라는 연구 논문을 통해 “노가리는 명태의 미성어(未成魚)”이며, “노가리에 대한 어획금지규정의 폐기는 재고되어야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2013년 <한국수산과학회지>에 실린 논문 ‘1970-1990년대 동해에서 어획된 명태의 체장에 따른 체급별 어획 마릿수 추정’에서 저자 강수경, 박정호, 김수암은 “1975~1997년 사이 동해에서 어획한 명태 140만톤 가운데 길이 30㎝ 미만인 노가리는 95만톤으로 68%를 차지했고, 마릿수로는 91%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명태 어획량은 1970년대 초반부터 증가하여 1981년 16만6천톤으로 해방 이후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1976년부터 1985년까지 연평균 10.7만톤의 명태를 어획하여 동해 연근해 전체 어종 어획량 24.4만톤의 44%를 차지했다. 결국 1970년대부터 명태 어획량이 늘어난 것은 명태 치어인 노가리 남획에서 기인한 것으로, 치어 남획에 따른 명태의 멸종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명태 치어 남획…동해안서 사라져
1970년 명태 치어 남획 허용은 동해안 수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소규모 어선으로 자망과 연승으로 명태잡이에 종사하던 다수의 어민들은 큰 피해를 감수해야했다. 1968년 어로한계선 5마일 남하로 명태어장이 좁아지고, 저인망의 명태치어 남획 허용으로 인한 피해, 그리고 원양명태의 국내반입 영향까지 삼중고가 겹쳤다. 1970년 처음 20척 규모의 원양선단이 북양어장에서 잡아온 원양 명태 1만3천여톤을 국내에 풀어놓았다. 결국 원양명태 국내 반입 물량이 늘어나면서 1970년대에는 국내산 명태값은 60년대의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북양명태어장도 러시아의 2백리 경제수역 선포로 위축되어 지금은 국내 명태수요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명태조업 삼중고는 속초시 전역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63년 시 승격 당시 5만5,619명이던 속초시 인구는 1973년 7만5,968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다음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해서 1980년에는 6만5,798명으로 감소했다. 명태를 중심으로 한 속초의 수산업 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시작된 명태 치어 27센티미터의 비극은 우리 바다에서 명태 치어가 완전히 씨를 감춰버린 2006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1996년 12월 수산자원보호령 개정으로 명태 채포금지체장이 10센티미터로 살아났으며, 2003년에는 15센터미터로 확대되고, 2006년에는 다시 27센티미터로 환원되었다. 만 46년만이다. 2010년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으로 이 규정이 계속 지켜져 오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명태는 동해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노가리가 명태 새끼가 아니라는 억지 주장까지 당국자가 받아들여 몇몇 부유한 수산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 어민들의 생계터전을 처참히 망가뜨린 비극. 1970년 명태치어 27센티미터의 비극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명태 치어 남획을 허용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1970년 11월 23일자 중앙일보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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