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박제라는 단어와 묘한 일치감을 갖는다. 아무리 전시패널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유물 특유의 아우라는 역사와 문화, 전통이라는 단어를 힘들게 한다. ‘만지는 박물관’(대표 황자정)은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하는 박물관이다. 유리상자 안에 잘 모셔둔 유물이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면서 역사를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만지는 박물관’을 만든 황자정 대표는 서울 강남과 목동 사립학교에서 역사교육을 하였다. 하지만 교육 자체에 불만이 많았다. 교과서와 박물관에 갇힌 역사교육으로는 아이들과 재미있게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만지는 박물관’이다. 10여년의 역사교육 노하우와 현장중심형 교육이 만나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 대표는 만지면서 박물관 유물을 공부하는 역사교육·박물관 교육과 관련한 산업재산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의외의 선택이 나온다. 서울이라는 거대시장을 놔두고 속초(조양초등학교 후문에 위치)에 본사를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일단 속초가 좋았어요. 자연환경이 뛰어나서 정붙이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관광아카데미 등 지역문화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의외로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이나 교육은 굉장히 소홀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지는 박물관은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백문이 불여일터치展’ 등 기획
박물관 개관 기념 전시로 지난 8월 1일부터 10일까지 강원진로교육원 1층 갤러리에서 ‘백문이불여일터치展-교과서 유물’을 개최하였다. 도시에 비해 문화체험 기회가 부족한 지역 청소년을 위해 교과서에 나오는 대한민국 대표 유물들을 직접 보고 만지면서 박물관 전시유물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높이기 위한 전시였다. 또한, 향후 박물관 견학에 도움을 주며, 평소 잘 알지 못했던 박물관 관련 직업(도슨트, 큐레이터, 문화재보존가 등)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전액 무료로 진행한 이 행사에는 백제금동대향로, 신라금관, 청동거울, 고려청자, 기마인물형토기, 농경문 청동기 등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시대별, 종류별로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유물은 진품과 복제품이 섞여있는데 의외로 진품도 많았다. 명사초청 특강도 마련했다. 문화유산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스스로의 꿈과 비전을 설계하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진로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나만의 self-muse, ‘Why not?’’은 3시간 정도의 교육시간 동안 큐레이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대별 대표유물을 직접 만지면서 배경지식을 배운 후 문화재 감상법, 진품과 가품의 차이를 익힌다. 문화재에 대한 기본 감각을 익힌 후, 실제 자신의 느낌과 이야기를 갖고 전시기획을 하고 전시장을 꾸미는 것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참여 학생들은 큐레이터라는 생소한 직업을 직접 체험하면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전시하고 해설할 수 있게 된다. 보고 듣는 것에 그치는 교육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인 체험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역사지식은 물론 창의력, 상상력, 기획력, 표현력이 향상된다는 것이 황 대표의 설명이다.
자유학기제 진로체험프로그램 인기
‘만지는 박물관’은 이제 막 시작한 개념이다. 아직 많은 학생들과 만나기에는 생소하다. 학교의 자유학기제와 교사 연수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준비한 이유이다. 교사 연수교육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기존의 역사교육과 달리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교육이어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자유학기제 전시체험교육은 아직 신청학교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문화유산 교육을 진로체험과 연결하여 학생들의 창의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매뉴얼을 발간할 정도로 유익한 프로그램임을 확신한다. 이에 대해 이영호 교육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재청이 자유학기제에 문화유산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만지는 박물관의 프로그램이 구현하는 정신과 일치합니다. 저희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다양한 교육실험과 프로그램 기획으로 현장에서 실천해 왔어요. 학생들이 지난 문화적 자산과 가치를 탐구하다보면 자신의 꿈과 끼를 발견하고 새로운 창조적 영감을 얻을 수 있죠. 진로교육, 인성교육, 역사교육, 예술교육이 동시에 가능한 프로그램입니다.”
‘만지는 박물관’이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문화환경이 열악한 속초에 작지만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이 자리잡는 일은 환영할 일이다. 올해는 청해학교와 다솜아동센터를 방문하여 교육기부를 하기도 했다. 아직은 찾아가는 교육 위주로 하고 있지만, 박물관 직접 방문자에게는 체험과 해설도 가능하다고 한다.
<문의 033-635-3234>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영호 교육팀장은 ‘만지는 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 참여하고 깨닫게 해주는 참여형 프로그램임을 강조한다. 박물관을 방문하면 고서나 고지도부터 다양한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1층 내부. 조양초등학교 후문에 위치한 박물관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생생한 체험과 해설을 만날 수 있어 생활 속 문화재라는 콘셉트를 잘 살렸다. 서울과 속초를 오고 가기 때문에 상시관람을 할 수는 없다. 전화문의는 필수.
인천에서 진행한 ‘백문이 불여일터치展’. 참여 학생들이 직접 문화재를 전시기획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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