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철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내가 작곡 전공자가 된 것은 차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나는 음악 이론을 전공하여 음악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는 국내 대학에 음악 이론 전공이 없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게 작곡 전공이었다. 작곡 전공도 음악 이론을 많이 공부해야하는 전공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곡 전공은 누구나 가능하다. 많이 노력하고, 좋은 레슨 선생을 만나면 명문 대학 작곡과에 진학할 수 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훌륭한 작곡가는 누구나 될 수가 없다. 우선 재능을 많이 타고 나야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작곡에 대한 꾸준한 노력과 열정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작곡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좋은 음악 작품을 많이 남기게 된 것도 사실은 작곡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아무도 음악 작품을 청탁하지 않고, 또 작곡 활동에 따른 보상과 후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모차르트보다 더 천재적인 작곡가라도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작곡가들은 매우 불행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시대에 비하면 작곡 환경이 무척 나빠졌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사적으로 보자면, 이제 나올 수 있는 음악 작품들은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작곡과에서 공부하는 것은, 바흐 이후 수 백 년 동안 축적된 기존의 음악 작품들을 연구·분석하여 그러한 작곡 매뉴얼에 따라 습작을 하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곡 매뉴얼을 많이 아는 작곡학도는 기초가 잘 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곡과 입학시험에서도 물론 그러한 작곡 매뉴얼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수험생의 아주 기발하고 독창적인 작곡 재능을 평가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래서 작곡 전공자는 속칭 명문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독창적인 작곡을 더 잘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출신 대학과 무관한 작곡 전공자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진짜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작곡가가 되려면, 차라리 제도권 작곡 교육을 안 받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오늘날의 작곡학도들은 고작 기존의 작품들을 연구·분석하는 공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만, 이러한 공부도 사실 쉬운 게 아니다. 기존의 방식대로 아주 짧은 음악 작품을 하나 제대로 쓰려고 해도 많은 습작 과정이 필요하다.
작곡과는 입학시험만 해도 피아노 실기, 화성학, 청음, 작곡 실기 등등 한 두 과목이 아니다. 이게 모두 다 시간과 돈이다. 피아노 실기 공부 하나만 해도 최소한 10년은 해야 하며, 레슨비는 영어나 수학 과외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래서 속초 같은 소도시에서는 작곡 전공 지원자가 많이 나올 수가 없다. 같은 예능 분야지만, 미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수가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계속 작곡 활동을 하려면, 연주자·기획자·후원자도 필요하고 나아가 팬들도 확보해야 한다.(베토벤 시대에는 이게 가능했었다.)
그래서 작곡가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속초·고성·양양에서 강릉과 삼척에 이르기까지 영동 지역을 근거로 작곡 활동을 해온 작곡가는 고작 한 두 명 정도뿐이며, 전국적으로도 작곡가 수는 많지 않다. 더욱이, 연구비 지원을 받아서 활동을 하는 교수 작곡가를 빼고 나면, 순수 재야 작곡가는 아마 10명도 채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작곡의 현실이다.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도 작곡가를 지원하고 후원해야겠지만, 이에 대한 개념조차,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새해 들어 이번 호부터 임수철의 돌직구 음악비평<1>을 연재합니다. 격주 연재 계획이지만, 지면사정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임수철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는 속초고(23회)와 강원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했으며, 경희대 대학원에서 작곡 석사, 강원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0여 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했으며, 작곡가 겸 음악평론가(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악 해설서 <O.K國樂(1·2권)>, 음악평론집 <음악적 오류와 오해>, 작곡 이론서 <가곡 작곡법>, 음악 에세이 <못생긴 피아노> 등을 펴냈으며, 그간 기타창작곡 등 120여 곡을 작곡했습니다. 지난 2013년에는 기타연주곡 음반 ‘당신을 위해서라면’을 발표했고, 지난해 11월 22일에는 그의 ‘기타 창작곡 발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임수철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