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4년간, 본지의 ‘사는 이야기’ 코너에 42편의 글을 실었다. 그 동안 기고한 글의 내용을 살펴보니 크게 교육과 지역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적인 견해를 풀어놓았다. 이는 필자가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문적으로 해왔던 일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주말, KBS 제작팀이 펴낸 책 <명견만리(明見萬里)>를 읽으면서 이제는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정치 분야의 이야기도 말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동안 정치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말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내 자신이 공직자이기에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는 비겁한 이유가 첫 번째 이유요, 내 전문분야가 아니기에 말하기 조심스러웠던 것이 두 번째 이유 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회를 말하다. – 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이라는 부제를 단 ‘명견만리’를 읽으면서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비겁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더 이상은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이는 토드 부쿠홀츠의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와 기생충 박사로 알려진 서민의 ‘서민적 정치’라는 책을 읽고 느낀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한다.
‘명견만리’ 제작팀은 프롤로그에서 ‘이번 새로운 사회 편은 정치, 생애, 직업, 탐구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정치 파트에서는 전 세계에 불어 닥치는 시민 직접 참여 열풍과,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기술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정치 시스템의 변화를 다룬다.’고 말문을 열었다. 필자는 이 책에 나온 정치 참여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여 우리 영북지역 주민들도 다시 한 번 자신의 정치의식을 점검해 보기를 기대한다.
정치 참여를 다룬 2장에서 세계적인 정치현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2015년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당 ‘포데모스’를 새로운 전국정당으로 탄생시켰으며, 아이슬란드에서는 정치판의 로빈 후드라 불리는 ‘해적당’이 제2야당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이탈리아에서는 평균 연령 37세의 젊은 정당인 ‘오성 운동’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촛불집회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민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치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이다. 즉 ‘정치는 사회적 자원을 공정하게 나누는 행위’임에 도 불구하고,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망각한 정치’와 ‘평범한 소시민적인 삶조차 책임져주지 못하는 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직접 정치의 광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부패한 정치인이 가장 환영하는 것은 유권자의 무관심’이라고 질타하면서, 그 무관심이 결국은 ‘유권자를 구경꾼으로 만드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만들고 고착화시켰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는 ‘정치 진입의 장벽’을 낮추고, 우리 모두가 ‘참여와 견제로 강한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고 속삭인다. 그래야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정치가가 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의식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영북지역의 현실과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과 대안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시민들보다 영북지역의 기성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들이 더 명심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표만을 의식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고, 먼 훗날이 아닌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민원해결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리를 내다보는 밝은 눈, ‘명견만리’는 못되더라도 ‘명견백리’ 정도는 되어서 우리지역의 내일을 내다보는 지혜로운 눈을 가진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정치가가 되려면 아무리 바빠도 늘 연구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정치하는 이들과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함께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란 책을 읽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민적 정치’를 읽고 진짜 서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발 품 팔아 가며 묻고 다니는 그들이 보고 싶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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