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제13회 세계기사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속초 영랑호 화랑도체험장에서 (사)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 김영섭 회장(60)을 만났다. 세계기사연맹(WHAF) 의장이기도 한 그는 파리가 제 집인양 돌아다니는 오래된 협회사무실에 앉아 그간 답답했던 마음을 긴 시간 동안 털어놓았다. 옆에 앉은 박춘식 사무국장(55)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영섭 회장은 여덟 살 때부터 전통무예를 배웠다. 1980년, 20대 초반에 무예도보통지를 보게 되었고 거기 실린 마상무예에 빠져 뚝섬 승마장에서 말과 병법을 연구했다. 그러다가 1994년 3월 처음으로 한국마상무예협회를 만들었다. 당시 ‘녹원파워랜드’라는 회사에서 야생마 200여 마리를 내몽골에서 수입했는데, 그 말을 훈련할 조련사가 없어 김 회장이 제자들 열서너 명을 데리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6개월 동안 엄청난 훈련 끝에 같은 해 8월 경기도 포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마상무예 공개시범을 보이면서 마상무예 복원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 공연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각종 축제며 문화제, 방송 등에서 찾아 주었고, 한국마사회에서도 1995년 경마문화제 1회부터 15회까지, 매년 다른 마상무예를 선보이며 15년 동안 공연하게 되었다. 1997년 한국문화유산의 해에 마상무예가 복원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공로로 표창장까지 받았고, 2002년 10월에는 기사, 격구, 마상재, 모구 등 마상무예의 모든 기술을 복원했다. 그 사이 협회는 세간으로부터 마상무예에 관한 한 세계 제일의 실력과 기술을 갖추었다는 평판을 듣게 되었다.
그 평판에 힘입어 속초 영랑호 화랑도 체험관광지 위탁운영자로 선정되었고, 이어 2004년 제1회 대한민국화랑기사대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접근로의 어려움 등으로 체험장 이용률이 저조하자 김영섭 회장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다고 판단한 기사(騎射)종목의 국내외 보급을 위해 2005년 세계기사연맹(World Horseback Archery Federation; WHAF)을 창립하고 국제기사대회를 개최했다. 2011년 7회 대회 때부터는 유네스코의 공식 후원을 받아 대회명칭을 세계기사선수권대회로 변경했다. 그러면서 기사대회 경기장을 규격화하고 대회운영규칙을 한국의 것을 기준으로 표준화했다. 이런 앞선 행보로 태권도가 그랬듯이 한국이 세계에서 기사대회 종주국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계기사연맹 본부가 바로 속초 영랑호 화랑도 체험관광지가 된 것이다. 그것이 제13회 세계기사선수권대회를 치른 올해까지 김영섭 회장이 마상무예에 헌신한 37년 세월의 결과물이다.
말똥 앞에서 식판 들고 식사
그런데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김 회장은 ‘반평생 내 삶의 가치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회의가 물밀 듯 밀려왔다고 한다. 일명 정유라 사건 때문에 지원금이 90%가량 삭감된 것이다. 정말 이번 대회는 소명감 하나로 겨우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회 당시 식사를 책임진 사람이 겨우 둘이었고, 설거지할 일손이 없어서 쩔쩔맸다. 천막 속 말똥 앞에서 식판을 들고 밥을 먹고 그나마도 부족해 일부 참가자들은 비스킷을 씹어야 했다. 명색이 종주국이고 의장국인 한국의 환경이 너무 허술하고 열악하니까 정부지원단체가 맞는지 다들 의구심을 가졌다. 세계대회치고는 격이 너무 떨어진다 싶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박춘식 사무국장은 그 창피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가 나중에는 허탈해서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더라고 했다. 15년째 접어든 기사대회를 거의 매년 참가했던 한 외국인은 13년 전에 봤던 말이 아직도 그대로 있고, 그때 봤던 구조물도 변함이 없고, 대회참가인원은 점점 늘어나는데 대회운영자들은 점점 줄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1년에 20개 정도의 국제대회가 열리는 기사대회의 종주국이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기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곳이며 국제경기장을 규격화, 경기규칙을 표준화시키고 선수와 심사위원을 교육하고 파견시키고 자격증을 발급할 권한을 가졌는데, 심지어 이란과 터키에서는 왕족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고 있고 오로지 WHAF의 자격증만 인정해주고 있는데, 잘만 발전시키면 우리 자손 대대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될 이 대회를 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내다 버리려는 건지 관련자들이 털어놓는 여러 소회가 마음을 시리게 했다.
사실 이곳은 국제경기를 치르기에 장소도 협소하고 경기 주도 면이 10도 정도 경사져서 그 낙차가 무척 심하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낙차는 경기 도중 한쪽으로 쏠릴 위험성을 높인다. 한 번 다녀간 유럽 선수들은 그게 두려워 재참가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안전한 경기장을 확보하려면 100m 정도 뒤로 더 뚫어야 한다. 그리고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말은 최소 50마리가 필요한데 현재 24마리뿐이다. 경기용 말은 대회장마다 훈련해서 갖추게 되어있고, 선수들은 그 말 중 한 마리를 선택해 호흡을 맞출 연습시간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런 훈련과정에서 말이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 경우 대체해 줄 말이 없는 실정이다.
마상무예,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국가마다 고유한 기마문화는 존재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전통 기마문화를 발굴해주고 그것을 발전시켜 스포츠로 만들어주는 기사대회의 세계선수권대회가 이곳에서만 치러지는 탓에 외국 선수들의 경기 참가는 대회 때마다 늘어나고 있는데, 열악한 근무환경과 생계 때문에 직원들과 경기운영인원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다. 각국 기사대회 지휘부와 임원진을 교육하며 경기장 표준 규격과 규칙을 알려주고, 국제대회 심사위원 1, 2급 자격증 발급과 교육도 여기에서 할 만큼 국제적인 기구인데, 화랑도 체험관광지라는 타이틀에 묻혀 업적은 가려지고 곧 빠지려는 이빨처럼 종주국 자리까지 위태롭다. 일본은 홈페이지를 네 번이나 바꿔가며 기사대회 첫 시기를 조작, 종주국의 지위를 가져가려 혈안이 되어있다.
지난 9월에 국가무형문화재 등록서류를 제출했고, 그렇게 하나하나 발굴한 세계 각국 고유마상무예를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등재하기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는 중이지만, 김영섭 회장은 기껏 선점한 것을 빼앗기게 될까 봐 늘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알아주고 나서서 도와준다면 정말 고맙겠다며 막힌 심사를 토로했다.
위나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제13회 세계기사선수권대회 경기 모습.
제13회 세계기사선수권대회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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