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을 전공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음악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대학 음악과 시절은 참 암울했던 시기였었다. 그토록 원하던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유신독재정권의 정점이었던 1970년대 말이어서? 아니다. 그 시절의 나는 워낙 무식해서 사회의식이니, 역사의식이니 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고민의 8할이 주로 사적인 것이었다.
일단, 음악 전공자로서 같은 전공자인 과우(科友)들한테 적어도 재능이나 실력이 못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했다. 나는 고교 시절에 영어·수학을 못해서 3년 내내 열반(劣班)에서만 생활했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 경쟁자는 없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니 음악 경쟁자와 동문수학을 해야 했다.
음악 전공은 특성상 그 실력이 완전히 노출이 된다. 그리고 정명훈 지휘자의 경우를 보아서 알듯이, 음악계라는 데가 승자독식 구조이다. 그래서 음악과 재학생들도 최상위의 실력이 아니면, 관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 관심은커녕 완전히 무시를 당한다.
그런데 나는 음악을 독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체계적이지가 못했다. 음악적 오지랖은 넓어서 이것저것 아는 것은 많았지만, 제대로 정리된 게 없었다. 이러한 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나는 작곡가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감동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음악은 잘 모르면서 좋아해야 신비롭고, 아름답다. 음악은 적당한 청각적 착각이 있어야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 전공 이전 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많다. 그 시절에 음악은, 일단 재능이니 경쟁이니, 실력이니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음악은 좋아했지만, 전문적으로 듣는 능력이 없다보니 주위에서 접하게 되는 음악들은 거의 다 명연주로 들렸었다.(물론 교향곡 같은, 너무 어려운 음악은 이해 자체를 못했었지만)
초등 1년 때 담임선생님의 풍금소리는 마치 뼈라도 녹아내릴 듯 감미로웠고, 초등학생 형이 불던 하모니카 소리는 내 마음을 마냥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했다. 군악대 아저씨들의 나팔 소리, 떠돌이 약장수 아저씨들의 색소폰, 기타 소리 등등 이 모든 음악들이 나를 아름다운 행복감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수준의 음악이나 연주가 아니면 감동이 잘 안 된다. 감동적인 소리보다는 거슬리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이 음악과 이 연주는 이래서, 저 음악과 저 연주는 저래서 거슬린다.
요즘 서양의 현대음악 작품들이 청중들로부터 점점 외면 받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작곡가들의 음악적 귀가 점점 높아지다 보니, 기존의 음악 작품에 만족을 못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전문화 된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쓰다 보니 청중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물론 전문 음악인들만이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아주 고급스러운 음악 세계가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현실적으로 잃는 것도 너무 많은 것 같다.
<논어>에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는데,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음악을 아는 자는 음악을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자는 음악을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음악적 감동의 질이 높아질수록 음악적 감동의 양은 엄청나게 줄어든다는 것, 나에게는 이것이 참 받아들이기 싫은 역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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