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나…’ 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위해서 열심히 외우던 용비어천가 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용비어천가는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새로 만들어진 우리의 글자 훈민정음으로 처음 만든 고전이다. SBS 월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용비어천가의 이 구절을 제목으로 삼아 조선의 건국과정을 다룬 역사드라마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적 사실(Fact)에 작가의 상상력(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드라마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텔레비전 드라마 프로그램 중 그나마 제일 볼만한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삼봉 정도전과 포은 정몽주라는 4개의 인물 축을 통해 조선의 건국과정에 벌어지는 다양한 시대적 상황을 작가의 시점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매우 흥미진진하여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고나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그 하나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대한 걱정이다. 몇 년 전인가 신문에서 어느 고등학교의 시험 문제로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를 묻는 문제의 답을 많은 아이들이 고구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그 당시에 재미있게 방영되던 광개토대왕이라는 역사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감자를 먹는 장면이 방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국사라는 교과서를 통하여 체계적으로 배워 감자가 조선시대 조엄이라는 사람에 의해 우리나라로 전래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여러 가지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용비어천가의 육룡은 세종대왕이 자신의 선조 여섯 명,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를 시작으로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을 가리킨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정도전이라는 3명의 실존인물과 무사인 이방지와 무휼, 첩보업무를 맡은 분이라는 3명의 창조된 인물이 육룡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오해를 할 내용들이 너무나 역사적 사실처럼 펼쳐져 작가의 상상력을 역사로 인식하는 오류가 일어날까 심히 걱정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드라마를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기에 이 드라마를 통해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인지를 고민하는 정치인이 있어주기를 바란다면 ‘연목구어(緣木求漁)’ 같이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당리당략에 따라 여당은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야당은 필리버스터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정쟁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새삼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깊어진다.
요즘 ‘육룡이 나르샤’ 드라마 속에도 왕권을 지키려는 대군 이방원과 새로운 유자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정도전의 정략싸움이 한창이다. 그들 모두 표면에는 ‘대의’와 ‘백성’이라는 단어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 속에는 백성이 없다. 오직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 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그것을 피부로 체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오죽하면 노00 정권, 이00정권, 박00정권이라는 단어가 아무런 여과도 없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나라의 정권이 한 개인의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가? 이는 정치를 하는 사람과 그들을 뽑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삼시세끼 따뜻한 한 그릇의 밥과 몇 년 고생하고 절약하면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이 백성이요, 국민이다. 이 평범한 진리를 왜 그들만 모르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면서 괜스레 머릿속이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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