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들어서도 속초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월남 실향민들이 정착한 수복지구라는 특수성 이외에도 몇 년 사이 수산업 활황으로 유입인구가 부쩍 늘어난 신흥도시였기 때문이다. 전쟁 후 새로운 산업 동력을 찾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산업 진흥은 중요한 국가현안이었고, 속초지역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한 도시였다. 1961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에는 권오기 기자의 ‘어업소작인들’이라는 기사가 게시되었다. 기사 속에는 당시 속초항의 속내가 담겨져 있고, 특히 4.19혁명 이후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2천여 어민들이 잡아들이는 명태 어획을 노리어, 시(市)로 승격을 발돋움할 만큼 인구가 모인 4만5천 동해안의 속초읍엔 요즘 ‘명태수보다도 사람수가 더 많아졌다’는 익살맞은 푸념이 교차되곤 한다. 명태잡이는 흉어인데 뜯어먹을 사람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속초의 경기는 어민을 근거로 한다는 이야기이지만, 그곳에 새로 세워진 다방, 당구장, 극장 등엔 어부들은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곳으로 되어 있고, 어획이 많으면 많은대로 또 적으면 적은대로 돈을 모으는 이는 상인들뿐이라는 불평이 어부들의 생활 주변에 그윽하다.
○…또하나 어부들로부터 보다 직접적인 질시를 받는 사람들로 어업조합 ‘나리들’이 있다. 실상 자기의 배를 소유하지 않은 단순한 어업노동자들은 조합원도 될 수 있는데도 태워준 배의 주인이 조합원이라는 데서 그들은 고깃값의 1할을 조합에 바치면서 공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조합이 배풀어주는 혜택이라고는 발동선을 가진 선주에게 수요의 반도 못되는 약간의 기름을 배급해 주는 것뿐인데도, 어민들은 조합직원들을 보고 “나리-나리”하며 굽신거려야 한다. 4.19 이후에는 크게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전에는 “기생끼고 술먹는 놈은 어조원(漁組員)뿐”이라는 소리도 대단했다는 이야기였다.(중략)
○…함경도 어민들만이 산다는 속초5구엔 벌써부터 끼니를 못 잇는 호수(戶數)가 1/3이나 된다고 하는데 주된 원인은 “풍파가 금년에 별나게 심하여 작은 돛배로는 바다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 또 고기떼가 어로저지선 이북에 많이 모이고 남쪽으로는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날도 배를 못타고 멀거니 바다만 보고 있는 어부들이 뇌까렸다. 배를 얻어 타고 풍획(豊獲)이라도 선주에게 세몫을 바치고 나면 육,칠백환의 벌이밖에 없다는 이들 어업소작인들은 풍향과 그 강도에 따라 삶을 좌우당하는 표현 그대로 “바람에 날리는 생계” 위에서 곡예사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 (이하생략)
1962년 1월 2일자 경향신문 3면 ‘희망지대’ 기획연재 첫 기사로 ‘20마일 속초해상에서’라는 현장르뽀가 실렸다. 경향신문 최종진 기자는 새해 첫 해맞이를 제일 먼저하는 사람들이 바로 속초의 어부들이라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내용까지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속초의 어부들은 삼경(三更)이면 목마(木馬)를 타고 파도위를 달려간다. 육지엔 나락밭이 있듯이 검푸른 바다에는 고기밭이 있다. 억센 밧줄을 움켜잡고 바닷사람들은 평생을 그 고기밭에서 일한다. 검은 구름장같은 고깃떼를 만나면 어부들은 어린이처럼 가슴이 일렁거린다. 산같은 파도가 온통 고깃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력나게 파도를 헤치고 가도 고기는커녕 갈매기 하나 눈에 띄지 않는 날이 때로는 있다. 그렇다고 바닷가 사람들은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중략)어부들은 줄기차게 파도와 싸우며 살아갈 뿐이다.”
경향신문이 르뽀기사가 보도된 1962년 1월 2일. 그날 오후 속초 앞바다에서는 수복 이후 최대의 조난사고가 발생했다. 다음날 1월 3일자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에 어선 조난사고가 크게 보도됐다. 1월 2일 새벽2시경부터 2백44척의 어선에 1천6백여명의 어민들이 명태잡이를 위해 속초항에서 출항했으나 오후 들어 갑자기 강풍에 파도가 높아져 급하게 속초항으로 귀항하던 5척의 선박이 조난을 당했다. 모두 24명의 어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선원은 모두 5명에 불과했다. 당시 사고는 속초항 방파제 30미터 전방에서 어부 가족들과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는 가운데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참사보도 이후 슬픔에 젖은 속초시민을 위로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1월 6일 조선일보 3면에는 ‘미국가는 명란젓 / 비극의 항구, 속초의 경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오는 8일경 부산항을 떠나는 배에 실려 속초 명란젓 2천5백 파운드가 처음으로 미국에 팔려나가는데, 가공업자는 속초읍 5구에 사는 김명탁(34)씨로 10파운드 나무통 하나에 단돈 50센트 가격으로 첫 수출이라 20여만환을 밑지며 수출한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위로기사로 1월 8일 경향신문 3면 ‘희망지대’에 ‘슬픔의 포구 속초에 뒤늦게 경사’가 실렸다. 기사에서는 조난사고로 속초 포구는 통곡의 여운이 남았는데, 지난 6일 밤엔 3백척의 목선들이 새섬(조도) 밖에 나가 9천급(2천여만환)의 명태를 잡아와 속초는 다시 해바라기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당시 항포구 속초사람들의 생활과 수산업 현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속초사람들은 사철 일손을 놓을 짬이 없다. 엄동엔 명태와 양미리철이 겹쳐 그렇고, 새봄엔 미역따기에 바쁘다. 지난해만해도 4억3천여만환 어치의 미역을 따냈다. 오뉴월 미역철이 가면 한여름내 오징어가 쏟아져 나온다. 애들도 쪽배를 타고 나가면 두축(40마리)씩은 건져온다. 매년 4억환 평균의 오징어가 5리밖 바다에서 잡힌다. 지난해의 총 어획고는 18억5천여만환이 넘었다. 그 가운데 명태는 거의 10여억환이 된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1천여척의 배들이 조그만 포구에서 닻줄을 끄른다.
○…본고장의 배는 통통배가 3백33척 돛단배가 1백6척 종선이 2백60척 모두 합쳐 6백99척이다. 나머지 수백척의 배들은 철새들처럼 고깃떼를 따라다니는 남도지방의 떠돌이 배들이다. 속초의 주민은 5만여명이며 이 가운데 7할이 함경도 아니면 남도지방에서 온 이방인들이다. 1만4천5백여명의 어부들이 3천5백여호의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명태 대목을 바라고 이 고장을 찾아온 거상(巨商)들은 2백여명이 넘는다.
○…선창가는 새벽 4시면 눈을 뜬다. 뱃머리를 보러 나오는 아낙네들이 북작거린다. 참대바구니를 끼고 나무상자를 이고 밤새 나간 고깃배를 기다린다. 새벽녘에 아낙네들의 세찬 음성으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진다. 함경도 나남에서 피난을 왔다는 이옥주(46세)씨는 “한나절이면 3천환을 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지푸라기를 한단씩 묶어가지고 다니는 아낙네들이 있다. 양미리를 엮으러 다니는 품팔이 여인들이다. 40마리 한단을 엮는 삯으로 기껏 10환을 받는다. 손이 맞아 하루 종일 묶으면 2천환 벌이는 된다. 창칼을 들고 선창을 헤매는 여인들도 있다. 이들은 생오징어를 찢으러 다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 구하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원체 품삯파는 여인들이 많은 탓이다.
어황의 기복으로 울고 웃고, 대규모 조난사고로 모두 슬픔에도 빠지기도 하고. 이런 우여곡절 끝에도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 인구 5만명이 넘는 속초읍은 1963년 1월 시로 승격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62년 속초조난자 인양작업. 국가기록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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