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1월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을 앞두고 속초를 비롯한 양양군 수복지구는 최악의 수해를 만났다. 1954년 9월 12일부터 초속 23미터 이상의 강풍과 980mm의 강우량을 동반한 태풍의 엄습으로 동해안 일대는 가을 수확을 앞둔 논은 모두 침수되었고, 주요교량은 모두 파괴되었다. 바닷가 일대는 해일까지 겹쳐 항만과 선박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9.13수해로 인해 1주일 후 1군단이 잠정 집계한 결과 △가옥침수 877호 △가옥파괴유실 177호 △사망자 26명 △중상자 13명 △경상자 11명 △선박행방불명 11척 △선박침몰 1척 △선박파괴 66척에 농작물 및 전답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수해 당시 1군단 참모부장을 지냈던 참전시인 장호강씨는 1955년 출판한 시집 <항전(抗戰)의 조국(祖國)>에 관동지구 수해이재민에게 보내는 ‘누구를 위한 하늘이냐’라는 시를 게시했다. 강호강 시인은 1954년 세워진 속초 수복기념탑에 새겨진 ‘모자상부’ 시를 쓴 시인으로 시 ‘모자상부’도 같은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일찌기 이런 變이 있었든가 /風速 45놋트 / 降雨量 980미리 / 禍있을진저 네이름 씻지못할 9·13 水變 / 船舶은 얼마를 아서 갓고 / 橋梁은 얼마를 끊었는가 / 山을 허무러 논 밭 묻어버리고 / 알뜰한 오막사리 빼앗은 뒤 / 언덕으로 언덕으로 기어오르는 / 황소같은 목숨마저 삼켜야 하는가 / (이하 생략)”
1954년 11월 17일 전국민의 뜨거운 관심 속에 행정권 이양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은 9.13 수해 이재민 구호대책과 수해 피해시설 복구였다. 그러나 행정권을 이양받은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절량 위기의 주민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해 겨울 속초에는 절량농가가 4백여 호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9.13 수해로 피해를 본 항만시설도 수차례 복구해 달라는 민원이 제기되었다.
1954년 11월 10일 경향신문에서는 속초에 명태가 많이 잡혀 9.13 수해로 연명조차 할 수 없던 주민들이 큰 근심을 덜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달 24일자 경향신문에는 행정권 이양 1주일이 지난 속초 현지 취재를 통해 “8.15 해방 전부터 한국 굴지의 어장으로 현재 속초항을 모항으로 약 5백여척의 대소어선이 출어하여 명태, 오징어, 청어잡이에 분망하여 1년 어획고만 하여도 약 1억환에 달하고 있는데, 지난 9월 수해로 방파제를 비롯한 항만시설과 해면이 흙으로 매몰되어가고 있어 해면의 준설과 방파제의 복구가 없으면 속초항은 폐항의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로부터 1년 후가 되어서야 속초항 방파제 보수와 신축, 준설공사가 진행되었다. 1955년 11월 27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속초어업조합에서 폐항 직전에 처한 항내의 축항공사의 실현을 보게 되어 지난 20일부터 항내 계선장 준설공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사는 인근 주둔부대의 중장비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계선장 50미터의 거리를 2미터 깊이로 파내고, 수중작업이 끝나면 20여척의 배를 무난히 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55년부터 진행된 속초항 준설 및 방파제 신축 연장공사는 해무청 주관 하에 동중토건 주식회사가 공사를 담당했다.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공개문서에 따르면, 이 사업은 미국 국제협력처(ICA)의 원조사업으로 1961년 12월까지 진행되었다. 당시 미국 원조사업으로 속초항뿐만 아니라 동해안 일대 아야진, 주문진, 묵호, 삼척, 임원항도 모두 원조사업으로 방파제 등 항만 공사가 진행되었다.
1950년대 속초항의 어황은 어떠했을까? 1957년 1월 29일자 조선일보 3면 ‘20년來의 풍어, 속초의 고등어 명태잡이’에 잘 나와 있다.
20년來의 풍어, 속초의 고등어 명태잡이
[속초]속초어항은 명태 오징어 고등어 양미리 등이 주산물로서 예년의 그 어획고가 동해안 일대에서 제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지난 겨울부터 지금 한창 계속되고 있는 동태잡이의 어획실적은 동 어항이 개발된 지 20년 만에 처음보는 놀라운 증산을 올리고 있다. 즉 지난 25일 속초어업조합이사 이갑호(李甲鎬)씨가 말한 바에 의하면 작년 10월 이래 동년말까지의 통계만으로 보아도 그 어획고는 5억9천8백만환에 달하고 있어, 이것은 1955년 실적 3억5천7백만환에 비하면 2억4천1백만환의 증산을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도 매일 4백여척의 기범선(정착선300, 외래선100척)이 계속 출항하여 여전히 활기를 띠우고 있는데 금년 동태의 가격은 1급당 최저 4백환에서 최고 1천50환까지 나가고 있으며, 매일처럼 서울 기타 도시에 수대의 트럭으로 방출되고 이곳 해안 일대의 ‘덕거리(건조장)’에는 연거푸 꽉 들어차게 되어 수천명의 어민들은 눈부시게 바쁜 가운데 그들의 생활도 윤택해져가고 있다. 그런데 어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러한 증산의 원인은 과거에는 기후 및 조류관계로 매월 평균 작업일수가 겨우 17,8일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 겨울부터는 거의 매일 계속작업을 할 수 있도록 된 것이 주요원인이라하며 항만시설이 정비되어 가고 있어 더한층 활기를 띠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1957년 1월 29일자 3면>
1958년 4월 29일자 경향신문 2면 탑 기사 ‘자금난에 허덕이는 어촌’에는 속초항이 고리대금을 출어자금으로 돌려쓰는 바람에 어촌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 속에서 당시 속초항의 비중이 어떠한지 언급되어 있다.
“개항 20년에 어민 1만여명을 헤아리고 연간 수획고가 20억환(1천6백만킬로)으로 우리나라에서 수획고 많기로 부산어장 다음을 차지하고 있는 속초어장은 명태 오징어 청어잡이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 성어기는 12월부터 이듬해 1월말까지 불과 2개월 남짓한데 해마다 성어기가 되면 대소선박 7백척이 고기잡이로 동원되어 많은 날은 명태만 해도 하루에 1백20만마리 6만쾌로 시가 3천여만환이나 되는 명태잡이를 한다고 한다. 이하생략” <경향신문 1958년 4월 29일자 2면>
기사에 따르면 속초어장은 연간 어획고 20억원으로 부산 다음으로 어획고가 많은 전국 제2위의 어장이라는 것이다. 속초항이 전국 제2의 어획고를 기록했다는 언급은 다른 자료에도 나온다. 속초읍에서 발간한 <읍세일람> 1959년판 첫머리에 나오는 ‘대속초의 전망’에 속초항이 ‘전국 제2위 어획고를 산(算)하고 있는 현실인 바’라고 제시하고 있다. 읍세일람에 따르면, 1958년 12월말 기준으로 속초 어업인구는 2010가구에 8,029명이다. 어획량은 1만9천여톤으로 이중 명태 1만7천여톤, 오징어 1천2백여톤, 꽁치 286톤, 양미리 277톤 등이며, 총어획고는 15억8천여만환에 이른다. 선박은 속초항(608척)과 대포항(119척) 합해서 727척이며, 이중에서 기선 336척, 범선 133척, 종선 258척이다.
남북이 가로막혀 함경도를 대신해 동해안 최고의 명태 주산지로 부상한 속초. 전쟁 후 마땅한 일자리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시절. 명태의 풍어로 속초에 오면 먹고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전국에서 가난한 이들이 몰려들었다. 남한 땅에서 의지할 데 없던 실향민을 포함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속초는 그야말로 희망과 기회의 땅이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58년 11월 2일 촬영한 속초리 어업조합어판장(좌)와 복구공사를 마친 항만시설(우) 사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개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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