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동심(童心)으로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졌으며 불심으로 마음을 다스렸고 인술로 몸을 치료했다. 그에게 동심은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자, 부처를 향한 고요 속의 고운 기도였다.”
오대산 월정사 탄허스님 문하의 승려이자 의사였던 박용열 시인(89)의 삶을 압축한 표현이다. 박용열 시인은 지난 1959년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과 입선돼 아동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그동안 그의 문단이력에 비하면 문학세계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설악문화예술포럼(회장 이반)은 이에 따라 오는 10월 21일 오후 4시 신세계 영랑호리조트 지하 대연회장에서 ‘박용열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문학강연회와 공연을 개최한다.
이날 포럼 회장인 이반 극작가가 만해 한용운의 ‘침묵’과 초연 박용열의 ‘고요’에 대해 말문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박용열 시인이 삶을 담은 영상 상영, 시인의 손주들이 들려주는 작가의 동시 낭송, 아동문학가 김종상씨의 박용열 시인 등단기, 이상국 시인의 ‘승려와 의사 그리고 시인이 함께 가는 길’ 강연, 박용열 작시의 동요 공연에 이어 문학평론가 이동순 조선대 교수의 ‘동(童)과 선(仙)의 완숙한 극치, 고요–박용열론’ 강연이 열린다.
■만해 한용운의 ‘침묵’과 초연 박용열의 ‘고요’=이반 설악문화예술포럼 회장은 여는 글에서 “만해의 ‘님의 침묵’은 근대가 만들어낸 거대담론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만해의 ‘님’은 민족일 수 있고 조국이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아야 할 거룩한 존재일 수 있다. 그래서 ‘님의 침묵’은 거대담론, 큰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연 박용열의 ‘고요’는 거대담론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다. 그는 큰 이야기들 간의 갈등이 빚어낸 전쟁 가운데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비껴나 ‘고요’ 속에서 미시적 일상들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바라보며 참을 그린다”고 분석한다.
■내가 만난 박용열 시인=‘승려와 의사 그리고 시인이 함께 가는 길’이란 주제의 문학 강연 원고에서 이상국 시인은 자신이 만난 박용열 시인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박용열 시인을 처음 본 것은 제 나이 30대 초반, 속초의 문학동인회인 설악문우회 회원으로 활동할 무렵으로 기억된다. 거구(巨軀)의 호남(好男)이었고 문학에 대한 염결성(廉潔性)과 진지함, 그리고 특유의 대인다운 풍모와 거침없는 언설은 당시 회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문학적 윤리나 기준에 벗어났을 때의 엄격함에는 타협이 불가했고 작품에 대한 노력보다는 중앙 문단의 인사들을 향한 굴신이나 이른바 문단 정치에 대한 비판은 가차 없었다”며 “시인이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문학과 삶을 말씀하는 기회가 조금 더 일찍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문단 후배이자 지역의 후배로서 무능하고 무력했음을 고백한다”고 썼다.
■‘동(童)과 선(仙)의 완숙한 극치, 고요 –박용열론’=문학평론가인 이동순 조선대 교수는 ‘동(童)과 선(仙)의 완숙한 극치, 고요 –박용열론’을 주제로 한 문학 강연회 원고에서 “첫 동시집 제목이 ‘엄마’인 것은 보이지 않는 삶의 여정을 반영한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가족을 북쪽에 두고 혼자 남아 그려낸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애착은 어린 아이의 그것과 같다. 어머니에게 일주일 지나면 꼭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되돌아가기 위해 최전방 수색대에서 근무한 것은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이며 절규다. 그래서 엄마를 찾아 나선 길이 오대산 월정사 탄허스님 문하에서 초연(超然)이란 법명의 수행자였다. 슬프고도 괴로웠던 지난 날, 육신의 어머니가 그리워 방황하던 끝에 스님이 되었고 영(靈)의 어머니(부처님)를 만났다. 그 수행과정에서 만난 것이 동심이며 거기서 탄생한 것이 동시다. 속세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영혼의 어머니를 향한 기도가 동심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의 시가 동시이면서도 선시(禪詩)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첫 시집에 쓴 것처럼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그날의 마음가짐에서 동시를 쓰고 싶음이 나의 평생소원이라는 그 소원대로 동심을 향해 걸어가면서 동시를 쓰고 있으니 소원을 이룬 셈”이라고 평했다.
박용열 시인은 그동안 동시집 <엄마>(세종문화사, 1973), <고요>(아동문예사. 1984), <고요속에>(아동문예, 1989), <아가에게 엄마에게>(삶과 꿈, 1997), <할아버지와 손자>(아동문예, 2008)를 냈다. 그리고 탄허스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 <오대산 가는 길>(아동문예, 2013)을 냈다.
이수영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용열 시인 연보
▶1929년 함북 청진 태생
▶1950년 함북 성진의학전문학교 졸업. 한국전쟁 참전. 남강전투서 부상, 우측 폐 절제, 동상으로 양쪽 발 일부 절단, 육군병원 전전.
▶1952년 화랑은성무공훈장 받음
▶1953년 27육군병원 명예제대
▶1955년 월정사 입산, 탄허스님 은사로 초연이란 법명 승려생활
▶1959년 승려생활 중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시 ‘노을’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푸른 감’ 입선.
▶1967년 의사시험 합격, 하산, 고성에서 의원 개업.
▶1973년 동시집 <엄마>출간
▶1979년 한국 동시 문학상 수상
▶1984년 동시집 <고요> 출간.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수상
▶1989년 동시집 <고요 속에> 출간
▶1997년 동시집 <아가에게 엄마에게> 출간
▶2008년 동시집 <할아버지와 손자> 출간
▶2013년 탄허스님 탄생100주년 기념시집 <오대산 가는 길> 출간
▶현재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회 명예고문 및 아동문학세상 고문
2014년 10월 오대산 월정사에서 열린 박용열 시인 시비 제막식 후 박 시인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1970년대 고성 아야진에서 신진의원을 운영할 당시의 박용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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