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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도로 만나는 속초의 재발견 - 속초의 시간을 걷다③ 석봉도자기미술관에서 속초로데오거리까지
구석구석 골목길, 낯선 그리움에 발길이 머물다
등록날짜 [ 2017년10월02일 12시45분 ]

설악로데오거리와 속초관광수산시장. 속초의 중심 상권이 있는 길과 재래시장의 새로운 이름이다. 도심활성화를 위해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면서 이런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깨끗한 보도블록, 화려한 루미나리에와 함께 몇몇 가게의 성공, 주5일제 시행 등으로 속초 시내관광은 성공적인 변신을 이뤘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이 거리를 빛내주는 보물은 도시형성 초기부터 자리잡은 골목길이다. 이번 호 인문지도는 이런 골목에서 만난 이웃의 공간이 주인공이다. 개발 열기에 따른 부동산 열풍이 이런 골목을 하나씩 없애고 있기에 더욱 소중한지도 모른다. 시작은 석봉도자기미술관부터이다. 속초 수산업의 역사를 간직한 칠성조선소, 화려했던 육구시장골목을 지난다. 속초로데오거리는 골목마다 개성 강한 건물과 가게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서독약국에서 루미나리에가 있는 시장까지 걸어가다 오른쪽 골목으로 빠진다. 예전에 아리랑골목이라고 불린 그 길에는 헌책방과 향토음식 장인, 진득한 국물맛의 옹심이 가게 등 옛 정취가 아직 남아 있다.
우리가 걸었던 골목은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우리 시대 삶의 방식을 조용히 항변하는 듯하다. 잠시 옆으로 샐 줄 아는 사람이 다른 공간을 발견하는 법이다. 구석구석 골목길에 잠시 마음이 머물기 바란다. 이 골목이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칠성조선소
50년 역사의 조선소
속초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 예정
만선의 꿈을 실은 속초 어업의 산 증인 칠성조선소. 50년 역사의 조선소는 속초를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석봉도자기 옆 작은 길, 안쪽로 들어서면 청초호변으로 작은 조선소가 하나 있다. 푸른색 건물에 흰 페인트로 아무렇게나 적은 것 같은 이름은 흡사 배 이름을 적을 때 쓰는 글씨체 같다. 한눈에 봐도 옛스러운 2층 건물은 마치 영화세트장에서나 보던 일제시대 건물양식을 연상시킨다. 건물 천정에는 건축 당시 벽돌의 틈에 벽지처럼 붙여둔 60년대 신문이 빛이 바래 남아있다. 쇠로 만든 각종 도구들은 기름 때로 색이 변해 있고, 셀 수 없이 반복되어 사용된 큰 기계는 오랜 세월 동안 매끄럽게 닳아 윤이 난다. 기찻길 같은 레일이 여러개 청초호를 향해 뻗어 있고 그 위에는 배를 태우는 용도의 큰 선대가 올려져 있다. 칠성조선소의 풍경이다.
마침 조선소 앞에 배가 한척 떠 있다. 배 위의 선원과 조선소에 한 사람은 서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배의 위치를 조금씩 조정한다. 조선소에서는 배를 태우는 선대를 물 밑으로 내려 배 밑에 안착시킨다. 배가 선대의 정확한 지점에 올라타면 조선소에서는 굵은 와이어를 이용해 배를 뭍으로 천천히 끌어 올린다. 1년에 한번. 배가 정기검사를 받기 위해 조선소에 배를 올리는 날이다. 칠성조선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1960년, 칠성조선소를 시작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어온 일상이다. 칠성조선소는 어민들에게는 망가진 배를 고치고, 페인트를 새로 칠하거나 물로 나가기 전 최종 점검을 하는 곳이다.
어민들에게 바다는 천혜의 보고이며 어선(漁船)은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로지 어선에 의지해야 한다. 많은 고기를 잡고 실어 나를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망망대해에서 어민들이 일을 마치고 무사히 뭍으로 올라올 때까지 안전해야한다. 만선의 부푼 꿈을 안고 배를 제작하기부터 수십년간의 세월을 함께하고 낡고 쓸모를 다해 폐선시키기까지. 칠성조선소는 50여년간 어민과 어선들의 생로병사를 함께 한 곳이다.
1960년 시작한 칠성조선소는 한국전쟁 후 최칠봉씨가 배목수를 하며 시작한 조선소를 아들 최승호씨가 이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 60년대는 수산업이 호황기였다. 속초에 어선의 수가 증가하면서 조선소는 속초의 대표 산업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목선과 배목수 일이 많았지만 80년대가 지나면서 목선이 사양화되었고 어선들도 하나둘 FRP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획량 감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속초에 조선소는 하나둘 줄기 시작하였다. 칠성조선소도 세월을 이길 수 없었다. 오는 9월을 끝으로 영업을 중단하기로 하고 그의 아들 최윤성씨가 새로운 공간으로 준비 중이다.
속초의 어촌과 조선소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칠성조선소는 앞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우리만의 것이 우리 지역의 정체성이고 경쟁력의 원천이다. 오래된 건물과 장소를 없애고 새로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오래된 것을 되살리는 일이다. 게다가 청년 예술가 부부라니 기대와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좋겠다.
최윤복 문화활동가


■육구시장 ‘형제기름집’·‘세리헤어 미용카페’
익숙했던 공간의 낯선 반가움
이 가을, 고소한 냄새가 난다. 청학로 사거리에서 바다 쪽으로 몇 걸음, 육구식당 앞이다. 관광객들은 짐작조차 못할 테지만 이곳이 ‘속초리 6구’였음을 기억하는 간판이다. 2년밖에 되지 않은 식당이지만 ‘육구’라는 이름을 사용한 지는 오래되었다. 20년 동안 육구슈퍼를 하다 2년 전에 식당으로 업종 변경을 하면서도 그 이름을 놓지 않았다.
식당 왼편 골목을 보면 고소한 냄새의 진원지를 발견할 수 있다. ‘형제참기름집’. 큰 길 뒤편에서 조용히 시간을 견딘 방앗간은, 오래되어서 오히려 낯설고 반갑다. 형제참기름집도 영랑동의 문화방앗간만큼 오래되었다. 손님들은 힘들게 키운 참깨가 참기름이 될 때까지 오래 기다린다. 곧 추석이고 자식들에게 참기름을 들려 보낼 생각만으로 기분이 고소해진다. 참깨 씨앗부터 참기름까지, 직접 키우고 짠 것이니 안심하고 자식과 손자에게 먹일 수 있다. 이런 부모 마음이 50년 동안 방앗간을 지켜준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방앗간을 지나 골목 깊숙이 들어가면 곳곳에 오래된 집들이 있다. 골목의 끝집은 흙벽이다. 흙벽집이 아직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돌아서면 뜻밖에도 ‘세리헤어 미용카페’가 있다. 간판이 없다면 도저히 미용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관이다. 실내 인테리어도 엔틱풍의 카페처럼 보인다. 미용실은 반듯하고 반짝거리고 환해야 할 것 같은데, 휘어진 기둥 울퉁불퉁한 벽 한옥의 천장이 보인다. 이 공간 제일 안쪽에 시치미 뚝 떼고 미용실임을 알리는 거울과 의자가 있다. 이질적이어야 할 두 공간은 희한하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리 원장(그는 이름을 묻는 질문에 세리라는 애칭으로 불러달라고 했다.)에 따르면, 독특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전과 막걸리를 팔기 위해 개조를 했다. 건물의 정면은 독수리였는데 부리는 사라지고 지금은 눈 모양의 창문만 남아 있다. 너와지붕 역시 관리가 어려웠던지 다음 세입자가 양철지붕으로 바꾸었다. 나무 모양 그대로의 기둥은 인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전과 막걸리를 팔던 가게는 오래 가지 못했다. 구제제품을 팔기도 했고 인테리어 소품을 팔기도 했다. 5년 전 컵케이크를 만들어 팔던 곳에 세리 원장이 미용실을 차렸다. 나머지 공간은 그대로 두고 방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파내고 미용실을 앉혔다. 파낼 때 구들이 나왔었다고 한다. 공사는 통나무집을 만드는 동생이 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조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곳곳에 배치된 원목 소품들이 이질적 공간의 통일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골 외에도 지나가던 관광객이 호기심에 흑은 카페인 줄 착각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근처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을 때는 홍콩, 스페인, 프랑스, 호주 등 외국인 손님도 있었다.
세리 헤어 외에도 이 거리에는 옛 건물의 정취를 살린 가게들이 있다. 로데오 1주차장과 가까워 여행자들의 왕래가 잦다. 이들은 이 거리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세리 원장은 적당한 이름을 붙이고 이 거리만의 색체를 입히면 여행자들에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며 아쉬워한다. 최근 두 배로 오른 가게세보다 거리에 대한 상상과 걱정이 더 많다.
이무용 작가
육구시장 형제기름집. 믿고 먹는 오랜 단골이 방앗간을 지켜주고 있다.
세리 미용실의 인테리어는 공간을 사용했던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질적 통일감을 전해준다.


■대경중고서점·다산 초밥젓갈 전문점
시장 골목길에는 보물이 있다
속초 중앙시장(현 속초 관광 수산 시장)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골목과 골목이 이어지는 곳에 ‘대경중고서점(이하 헌책방)’과 ‘다산초밥젓갈전문점’(이하 다산)이 마주보고 있다. 5~6평 남짓한 헌책방에는 소설과 시집, 경제, 사회 서적들이 빼곡하다. 현재 주인이 이 일을 시작한 지는 25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때마침 헌책을 팔러 온 주민과 주인이 흥정을 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몇 푼의 돈을 쥐게 되면 그걸로 떡볶이도 사 먹고 순대도 사 먹었다. 낯선 그리움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헌책방 맞은편 ‘다산’의 사장 서영기씨에게 헌책방의 내력을 들었다. 그는 현재의 가게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그의 삶 전체가 시장의 과거, 현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헌책방은 과거 만화방이었다. 아바이마을의 학생들이 갯배를 타기 위한 지름길이 이 길목이었기에 학생을 위한 상권이 자연스레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 만화방이 헌책방으로 바뀌어서 적어도 35년 이상 유지되었다고 생각하니 이 골목이야말로 속초의 삶이요,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영기씨는 시장의 터줏대감이자 향토 음식의 장인이었다. 다산은 생선초밥과 젓갈, 오징어순대 등을 파는 곳이다. 생선초밥은 5시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젓갈에도 고집이 묻어났다. 저염식을 강조하지만 적어도 35% 이상의 염도는 필수여야 한다는 것. 또한 오징어 젓갈은 몸통 이외의 부위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수필가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과 소설가 김용익의 <꽃신> 속 장인이 떠올랐다.
그에 의하면 속초 음식은 함경도를 비롯한 전국 음식이 혼합되어 있다. 원주민에 비해 실향민의 비율이 높았는데, 그 중 함경도 실향민이 많아서 전국적으로 함경도 음식의 성지라고 불릴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보여주는 명태순대는 함경도의 전통음식이고, 오징어순대는 속초에 정착한 함경도 실향민이 만든 속초 음식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막걸리 한 잔을 꼭 마셔야만 할 것 같았으나 그러지 못해 정말 아쉬웠다.
취재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지나버렸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3천원 백반집이 있다. 반찬들은 깔밋했고, 흰밥과 잡곡밥을 구분해서 지어 놓은 주인장의 배려에 한없이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서도 서로 돈을 먼저 내려고 옥신각신 하던 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정겨운 힘싸움을 이긴 손님이 주인에게 돈을 건네주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사 드려야지요.” 속초 시장 옛골목길에는 정이 있고, 추억이 있고, 자부심이 있었다. 누구든 속초 시장에 오면 샛길로 들어오길 바란다. 책도 한 두 권정도 사고, 젓갈도 사서 책은 가슴에 담고 젓갈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선물해 보자. 그 따스함이 돌고 돈다면 우리네 사는 세상이 적어도 몇 도는 더 따뜻해질 것이다.                                                                                박경원 인문학 강사
대경중고서점은 과거 만화방이었다. 이 일대가 아바이마을 학생들이 갯배로 가는 가장 빠른 골목길이었기에 중고생을 위한 상권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 소란했던 추억이 그리움처럼 남아 있다.
다산식당 액자에는 ‘요리는 최고가 없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음식 가지고 사기치지 마라. 장난치지 마라. 까불지 마라.’라고 적혀 있다. 음식에 대한 주인의 철학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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