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함께 북한 치하에 있었던 속초는 한국전쟁으로 수복되기 이전까지 5년의 기간은 향토사의 또 다른 공백기이다.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기록물은 물론이고 구술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50년 10월 속초지역이 수복되었지만, 다시 1.4후퇴를 겪고 난 다음해 봄이 되어서야 남쪽으로 떠났던 피난민들도 다시 돌아오고 이북에서 남하한 월남 피난민들이 속초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복지역 속초를 비롯한 양양군 일대는 1951년 8월 공식으로 미군정이 실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에도 지속되다가 1954년 11월이 되어서야 만 3년의 군정을 마치고 행정권이 대한민국으로 이양되었다. 이때 속초를 비롯한 양양지역은 38이북 수복지역 중에서는 유일하게 민간인의 거주가 합법적으로 허용된 곳이었다.
실향민 상당수 군부대와 연관돼 정착
속초에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전쟁이 한참 벌어지던 미군정 시절이다. 당시 미군정 시절에는 지역 연고가 없는 피난민들이 무조건 들어와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유독 속초에 많은 실향민들이 정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고향땅과 가깝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지리적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시 속초에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게 된 데는 속초가 교착상태에 빠진 동부전선의 배후 군사 거점으로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속초에서 원산 일대에는 미 8군 제10군단을 비롯해 한국군 1군단, HID 동해사령부와 또 다른 첩보부대 등이 주둔해 있었다. 수만명에 달하는 군인들이 교착된 동부전선에 머물게 되면서 속초지역은 군수보급의 거점지가 되어 수많은 노무자들이 필요했다. 1999년 속초에 정착한 월남인들의 정착과정을 연구 조사한 김귀옥 박사는 속초에 정착한 월남민 중 상당수가 군부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속초에는 제100여단 군노무단 부대가 창설되어 운영되다가 정전협정이 조인된 이후인 1953년 9월 해산되었다. 이 노무단 말고도 속초의 미 10군단은 속초 해안에 4곳의 부두를 만들어 미군 군수물자를 하역하고 운송했으며, 그 일을 ‘상호운수주식회사’가 담당했다. 이 회사에는 평균 500~600명의 노무자가 고용되었으며, 이들 노무자의 70~80%는 월남인이었다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한국전쟁 기밀해제문서 중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속초에서 활동했던 미군 군수부대의 활동 보고문서가 있다. 1951년 11월 군수사령부 예하부대를 설립하는 안이 계획되어 다음 달인 12월에 인가를 받고 속초리에 군수부대가 들어섰다. 미군 제2군수사령부 예하부대로 속초리에 들어선 8206부대(POD 8206th AU, Sokcho-Ri Area Command)이다. 지금의 농협속초시지부에 본부건물을 둔 미군 8206부대는 일본에서 LST 선박으로 수송해온 군수물자를 하역해서 일선 군부대로 운송하는 일을 맡아 수행했다. 이 부대는 미군 10군단과 한국군 1군단 지역의 군수지원을 맡았다.
속초 군수지원사령부 설치 이전에는 주문진에 군수보급 거점을 두고 있었는데, 대형선박을 정박하고 하역작업이 용이한 해변이 있고, 주전선과 거리도 가까운 속초를 군수지원기지로 변경하였다. 일본에서 부산항을 거쳐서 최전방으로 육로 보급을 하지 않고, 일본에서 바로 속초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해 최전방으로 바로 보급을 하게 되어 더욱 효율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해변이 좁아서 LST선이 한 척밖에 정박할 수 없다는 게 당면 문제라고 했다.
당시 문서를 보면 속초에서 인제 용대리까지의 일선부대 군수보급을 위해 미시령도로를 개설했으며, LST선박의 안정적인 정박을 위해 바다에서 석호까지 이어지는 속초항 수로를 준설하고 폭도 넓혔다.
1953년 2월~4월 미군 8206부대가 보고한 문서에는 속초지역 군수사령부가 지원하는 주둔부대 목록이 나온다. 모두 13개 부대에 장교(OFFICER) 51명, 사병(EM) 989명으로 모두 1,040명이다. 1953년 4월 한 달 간 속초항에는 화물선(cargo ships) 19척이 입항했고, 21척이 출항했다. 같은 기간 주문진항은 화물선(cargo ships) 6척이 입항하고 6척이 출항했다. 속초항은 주문진항의 3배 이상의 수송선이 입항했다. 1953년 4월에도 수차례 공격을 받았는데, 민간인 노동자 막사에 폭탄이 터져서 한명의 한국군과 13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55년 속초 어업인구, 농업인구 능가
당시 속초지역은 타지역 주민은 진입할 수 없도록 통제된 군정지역이지만, 군의 군수조달과 군작전과 연계된 군후생사업에 많은 민간인들이 고용되었다. 군후생사업은 수산물을 어획해 군에 납품을 하거나, 함남 원산 앞 섬을 점령한 부대에 군수물자를 보급하거나 첩보활동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이북에서 어업에 종사했거나 함경도 해안 지형에 익숙한 실향민들로서는 남들보다 유리한 일이었다. 당시 속초지역은 수복지구이면서 동시에 전선의 배후지라 신원감시도 매우 까다로웠지만, 혈혈단신 내려와 남한지역에 연고가 없고 토지와 재산도 없는 이북 실향민들에게는 좋은 정착지가 아닐 수 없었다.
군후생사업으로 수산물을 어획해 군에 납품하면 남은 절반은 자기 몫으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었고, 쌀이나 구호품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본인이 자리가 잡히면 친척들과 지인들을 속초로 불러들여 속초의 실향민 정착촌은 출신 마을 단위로 형성돼 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속초항을 중심으로 시작된 수산업은 날로 활기를 더해 1955년 속초의 어업인구가 23.9%로 농업인구 20.7%를 능가했다. 당시 속초읍지 기록에 의하면 어민가족은 1,146호 5,666명이며, 농민은 895호 4,901명이다. 당시 수산업에 대해 군정 홍보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어민은 바다가 생명이다. 바닷가 어촌에는 피난길에서 돌아와 허물어진 집을 수리하고 부서진 뱃조각을 다시 모아 수리도 하고 새로 건조도 하여 어로작업을 추진하였다. 원양출어는 하지 못하고 연근해(沿近海) 출어는 한정된 선박과 어로자재로서 충용하여 예상외의 성과를 올리었다. 특히 피난민들은 농토가 없기 때문에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 농업인구가 많던 양양군이 어업인구가 훨씬 더 많아졌다. 거의가 소형어선이었으므로 전복 사고도 빈발하였다. 여인들이 근해에서 다량의 미역을 채취 건조하여 남한 일대에 내보내서 팔기도 하였다. 양양의 여러 어항과 속초, 아야진, 문암 등 대소 어항마다 풍어를 이루었고 특히 명태가 많이 잡혔다.”
- <약진도상의 수복지구>(양양군, 수복지구건설위원회, 1953.7), 양양문화원 발간 <한국전쟁시기 양양군의 군정 통치에 대한 고찰>에서 재인용.
양양군의 민사현황 자료에 의하면, 1951년 12월 10일 제1군단 관할 ‘수산물통제에관한잠정규정’에 의하여 수산관리소를 설치하였다가 1953년 5월 31일 해체하고, 각 어촌부락에 어업조합원이 모여 조합총대위원을 선출했다. 이때 군정지역에서 처음으로 어업조합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54년 7월 8일자 동해일보를 보면 어업조합을 중심으로 어민들에게 구호어구가 분배되기도 했다. 당시 아야진어업조합에서 2주일간의 어민실태조사를 거쳐 어민들에게 로프와 와이어, 범선 범포, 명태 그물과 실, 못 등을 분배했다고 보도됐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52년 미군 소령 Edgar Tainton이 찍은 속초리(Sokcho-Ri). 지금의 수복탑 남쪽 해안변으로 추정된다. 사진출처 : https://www.flickr.com/
1952년 8월 미군이 양양지역에서 찍은 사진. 건너편 방파제로 보아 속초항으로 보인다. 사진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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