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제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영국신사처럼 반듯한 자세로 연주 봉사를 하는 밴드가 있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홀렸다는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큰 희망이 되는 경찰의 경보장치 ‘사이렌’(드럼 박종규 씨의 설명. 말을 몹시 조리 있게 해서 혹시 MC냐고 물을 뻔. 그와 베이스 기타 장현봉 씨는 싸이렌의 창립멤버다). 이 두 개의 중의를 기막히게 내포한 이름, 속초경찰서 직장인밴드 ‘싸이렌’을 지난 18일 저녁 밴드연습실에서 만났다.
싸이렌은 오는 10월, ‘2017 팬 아시아 해쉬대회’ 때 설악산 단풍축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세월이 유수같이 흐른다고 표현하지만, 이들을 만나고 나니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는 말에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진다. 짧은 지면 안에서 그들이 함께 쌓아온 10 년 세월과 음악적 교감, 다져온 실력을 다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 세월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다면, ‘그들은 대단하다!’ 혹은 ‘리더인 장현봉 경위의 묵묵한 고생담’쯤 되겠다. 3교대 24시간 경찰근무의 특성상 9명 멤버 전원이 한꺼번에 모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연습일정을 맞추기도 힘들다. 이날도 야간 근무조, 낮 근무조, 비번이어서 홍증표(기타), 김지혜(키보드), 조봉근(보컬), 이승훈(기타) 씨가 빠졌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좀 더 많이 하고 싶다는 보컬 정일이 씨와 밴드 7년 차인 기타 김도연 씨는 “함께 더 많이 연습해서 앞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길 바란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친구의 공연을 구경 갔다가 밴드를 시작하게 된 김도연 씨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엄청 재미있고 힐링도 되는데 밴드를 이끌어가느라 고생하시는 현봉 형님과 이렇게 재미있는 밴드를 시작하게 해준 고성경찰서의 친구에게 늘 감사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봉사활동도 하면서 시민들과 좀 더 가까운 경찰상을 보여주자고 시작한 밴드”라고 밝힌 창립멤버 장현봉 경위의 말처럼 그들은 그동안 제복을 입고 수많은 공연을 해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침체기를 맞은 것 같다며 올해부터 열심히 하려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속초에는 의외로 밴드가 무척 많다. 하지만 밴드들이 공연할 수 있는 상설공연장이 없다. 야외공연의 경우 야외공연용 음향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가격 상 보유하긴 힘들고, 임대료조차 너무 고가인데다 전기를 끌어 쓸 수 있는 장소도 별로 없다고. 사실 크루즈 선까지 입항하는 국제도시로서의 입체적 면모를 위해서라도 누구나 시간 날 때 가서 공연할 수 있는, 야외공연시스템이 갖춰진 최소한의 공간 하나쯤은 필요할 텐데 말이다. 그동안 공연해왔던 공간인 엑스포 상징탑 주변의 경우 관리 주체가 변경되면서 임대료가 배로 올랐고, 축제의 경우도 기획사에서 입찰을 통해 공연단을 모집하는데 예전보다 지원금이 줄어들어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축소되었다.
지난 6월 속초지역밴드 연합공연 ‘The Band Of Sokcho 2017’도 참가 밴드들과 십시일반 자금을 갹출해서 진행했다. 2년 차 보컬 임보라 씨는 작년 속초해변에서 ‘사대 악(四大惡)근절’ 홍보 때 경찰 제복을 입고 공연을 했는데, 어렵긴 하지만 시민들이 경찰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계기들을 보다 자주 만들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기타 치는 남편의 취미를 살려 부부 둘 다 싸이렌에 가입했는데, 자녀가 생기면 어릴 때부터 악기를 가르쳐 가족밴드도 만들고 싶다고 예쁘게 웃었다.
위나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속초경찰서 직장인밴드 ‘싸이렌’ 멤버들이 지난 19일 연습 도중 포즈를 취했다. 사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리더인 베이스 기타 장현봉, 기타 김도연, 드럼 박종규, 보컬 정일이·임보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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