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설악권 지역에서 시민을 위한 헌법 특강이 열렸다.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을 위해서 헌법을 강의하는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인데도 의외로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고 열기도 뜨거웠다. 민주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만든 사회 계약을 법적인 문서로 확약한 것이 헌법이다. 그런데도 헌법전을 한 번이라도 읽은 시민들은 많지 않았다. 국가, 정치인, 법 전문가들은 헌법을 국민들에게 알리기보다는 소수가 전유하고 독점해 왔다. 정부수립 이후 헌법은 늘 그런 모양이었다. 헌법은 특권화 되었다. 헌법 생활 자체가 분권화되거나 민주화되지 못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민의 국정참여와 관심은 높아졌다. 하지만 정치권은 국민의 이런 욕구와 실천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헌법 생활에 눈뜨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통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 국가의 헌법 정신을 실천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결정을 쟁취했다. 대한민국은 어떤 면에서 촛불시민혁명 이전과 그 이후로 바뀐 것이다. 정치인, 학자, 법조인들의 나라에서 국민이 주인인 민주 국가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다운 나라로 바뀐 것이다.
최근 국회 주도의 개헌 설명회에 국민들은 관심이 거의 없다. 국민이 주도해 논의하고 토론해서 만들어야 할 헌법적 내용을 정치권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헌법적인 권리,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권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는 상황 자체가 반민주적이며 반입헌주의이다. 또 그런 상황 자체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권을 모르는 국민은 늘 속기 마련이다. 인권을 교육받지 않은 시민은 늘 양보해야 한다는 기만에 노출되어 왔다.
개헌의 쓸모는 헌법이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법이고 최고법이라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회의장 등을 국민이 선출할 수 있고, 국민이 법률을 제안하거나 특정 공직자를 소환하는 등의 국민 주권을 행사하는데 있다. 그 주권 행사가 실질적인 토론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수렴되는 참여가 보장될 때 헌법은 쓸모를 찾을 수 있다.
개헌의 쓸모는 생활에 있다. 세입자나 일용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영세한 자영인이, 아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청소년이, 성 소수자가, 장애인이, 실업자가, 저소득자가, 의무병사가 노동, 의료, 치안, 교통, 사법, 예술, 문화, 교육, 복지 서비스 등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시킬 때 있다.
개헌의 쓸모는 분권화에 있다. 국가 중심적인 법체계를 지방자치 규범의 자율성을 높여 국가 집중적인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한 예로 속초·고성·양양 3개 도시 연합의 시민인권헌장을 주민투표로 확정하여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더 낫게 하는 최고 자치 규범을 헌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지방 헌법이 가능할 때 다양한 민주적인 질서와 시민들의 권리를 촉진시킨다.
시민들이 헌법을 읽고 토론하는 것, 그 자체가 헌법이 쓸모 있게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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