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순(59, 사진). 속초시사회복지협의회에 등록된 아름다운 복지인 제17호. 속초관광수산시장 ‘한마음식당’ 대표인 그녀를 지난 5일 저녁에 만났다.
동그란 얼굴에 느긋한 웃음이 걸리니 영락없는 ‘심우도’ 속 동자의 모습이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둑에 나앉아 감자나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기는 심정이 됐다. 이야기 줄기마다 다른 사람의 미담이 알 굵은 덩이뿌리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봉사가 혼자 해온 일이 아니라는 나름의 설명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매년 칠석(음력 7월 7일)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비빔밥 이삼백인 분을 무료로 대접해오고 있다. 올해 칠석은 지난달 28일이었다. 그날 한마음식당에서는 비빔밥 삼백 그릇이 나갔다. 왜 하필 칠석이냐고 묻자 18년 전 남편이 처음 아프기 시작한 날이라고 한다. 제발 남편이 아프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날이라고 했다.
우연순 씨는 결혼하고 10여 년 동안 집에서 주부로만 지냈다. 조용하던 그녀의 삶은 중장비 일을 하던 동갑내기 마흔 한 살 젊은 남편에게 갑작스럽게 뇌경색이 찾아오면서 크게 뒤집혔다. 남편이 경희대 한방병원에 입원하면서 갑작스레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 빚을 갚으려 막막한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 보광사 석문 스님이 말없이 1,000만 원을 보태주었다. 그 돈을 갚을 여력이 생긴 13년 세월 동안 스님은 그 돈에 대해 그녀에게 일언반구 없었다. 대신, “이문을 많이 남기려 하지 말고 베풀며 덕을 쌓는 장사를 해라”며, 뭐든지 한마음으로 한결같이 그 길을 가라는 뜻으로 ‘한마음’이라는 상호를 지어주었다. 그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늘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담아 왔다고 우연순 씨는 새삼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새벽 6시부터 영업준비를 하는 탓에 가게에서 숙식하는 힘든 일상이니 절에는 자주 갈 수 없고, 스님께서는 베풀라 하시니 생활 속, 주변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매년 어버이날에도 주변 상인들 600여 명에게 국수 공양을 한다. 한마음식당에서 끓인 국수를 기쁨봉사단원들이 와서 쟁반을 이고 다니며 자리를 비우기 힘든 상인들에게 국수 그릇을 돌린다. 기쁨봉사단은 우연순씨가 회원으로 있는 봉사단체다. 또 매주 금요일마다 기쁨봉사단 봉사왕이라는 신동일씨가 2인분의 독거노인 도시락을 가져간 지 8년쯤 된다고 한다. 대포동에 있는 여성 지적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인 ‘선영그룹홈’에도 한 달에 한 번 한 가지씩 물품을 제공하는데, 그 물품들을 대포까지 가져다주는 이가 또 따로 있다 한다. 백중날에도 몇몇 그룹에 불특정하게 대중 공양을 베풀고 있는데 가격을 깎아주거나 무료로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도움 받은 것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그리고 제발 남편이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10년 넘게 이렇게 꾸준히 봉사를 해왔다고 한다. 체력이 따라주는 날까지는 식당을 계속하면서 건강하게 봉사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며 우연순 씨가 활짝 웃는다.
주방에서는 그녀가 직접 만든 된장을 넣은 토종찌개가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었다. 그 질박한 냄새가 잡화점 골목을 빠져나와 닭전 골목까지 구수하게 적시고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였다.
위나정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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