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싣는 순서 -
①고성의 석호 생태관광벨트 조성사업과 설악권 동해안 석호의 관리 실태
②람사르 협약 등 석호 보전에 따른 주민갈등
③람사르 등록 습지인 인제 대암산용늪과 영월 한반도 습지
④석호, 그대로 보전과 관광지
주력한 일본Ⅰ
⑤석호, 그대로 보전과 관광지 주력한 일본 Ⅱ
⑥고성의 석호 생태관광벨트 사업의 나가야 할 방향
일본 홋카이도의 동부를 일컫는 도동 지방은 때 묻지 않은 원시 자연과 아름다운 석호가 연안으로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오호츠크해 연안과 맞닿은 이곳에는 바다의 작용으로 퇴적된 토사에 의해 사주가 발달되고 바다와 멀어짐에 따라 대략 3,000년 전에 얕은 기수호가 형성되면서 무려 32개의 석호가 분포돼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 석호 형성과 비슷하다.
이중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습지로 평가받은 아바시리시와 고시미즈초 지역에 형성된 ‘도후츠호(tofutsu-ko)’가 가장 대표적인 석호다.
‘도후츠’은 과거 이곳 토속부족인 ‘아이누족’의 말로 ‘호수의 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호수 둘레는 27.3km에 면적은 9㎢(고성 화진포호의 약 4배)에 달한다.
호수는 해안 초원과 습지로 둘러싸여 있고, 기수호의 특성상 생물다양성이 높아 한해 6만7,000마리의 철새들이 찾는 생명의 요람이자 철새들의 낙원이다.
도후츠호 일대는 지난 2005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으며, 습원과 호수가 일체화 된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국정공원으로도 지정됐다.
일본 환경성은 총 3억2,000만엔(한화 약 33억원)을 투입해 도후츠호 물새 습지센터를 건립, 철새보호에 힘을 쏟고 있다. 방문객들에게는 습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 등으로 알려 주고 있고, 습지 및 철새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연구실도 제공한다.
센터는 홋카이도에서 생산되는 원목만을 사용해 건립된 친환경 목조건물로, 사용되는 에너지의 약 20%를 태양열로 공급하고 있다.
■람사르 협약 등록 ‘도후츠호’
도후츠호가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지만, 호수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다.
과거부터 호수를 이용해 재첩, 빙어, 새우 등 어로활동을 하거나 굴약식장을 운영하는 일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어업자는 어종마다 잡는 시기와 어법에 관한 자주적 제한 등을 설정할 뿐이다. 호수와 인접한 농사와 골프장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인간이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활용하는 만큼 호수의 오염을 막을 수 없지만, 이것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자연현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연정화에 맞기고 있다.
다까다 히로마 도후츠호 물새 습지센터장은 “람사르 협약은 호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협약이 이뤄지는 당시부터 있는 그대로를 보전하며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호수 인근의 개발로 오염원이 유입되는 경우, 대부분 자연정화가 이뤄지도록 하지만 수질의 부영양화가 심화되면 해안사구 갯터짐으로 호수 내 물 흐름을 빨리해 수질을 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까다 센터장은 호수의 수질 개선을 위해 호수 내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준설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힘은 그 일대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시켜 철새들의 먹이활동을 막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농경지에서 유입되는 토사 때문에 석호 습지의 육역화가 급격히 진행돼 최근 한 차례 토사를 준설한 적은 있다고 했다. 도후츠호 북측 인근에 농경지와 골프장이 들어서 있는데 농경지에서는 토사가, 골프장에서는 농약이 유입되면서 인근 호수 내의 재첩이 모두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재첩으로 생계를 잇던 주민들에게 정부가 피해보상을 해 주고 그 이후 재첩채취를 금지했다. 재첩 폐사의 원인 제공처로 의심받았던 농경지와 골프장에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염된 수질은 자연정화와 갯터짐으로 자연 치유했고, 유입된 토사만 준설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다까다 센터장은 “람사르 협약은 호수를 생활터전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을 제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며 “호수가 오염되면 삶의 터전도 잃는다는 것을 잘 아는 주민들이 호수가 오염되도록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도후츠호는 지난 2002년 제정된 ‘자연재생촉진법’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주민들과 NGO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도후츠호 물새 습지센터에 근무하는 인원은 모두 3명으로 시청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호수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큰고니 등 200종의 철새들에 대해 설명해주는 해설사 역할을 한다. 석호 습지의 환경보전은 지역 주민들과 지역NGO 등으로 구성된 ‘도후츠호 환경보전추진협의회’에서 맡고 있다.
협의회는 ‘도후츠호 환경보전활용 비전’을 만들어 정기적인 호수 주변의 쓰레기 수거나 순찰 등의 환경보전 활동뿐 아니라 호수 인근의 낙농가, 밭농가, 전분공장이 협업해 호수에 환경부하가 적은 순환형 농업을 실행토록 유도하기도 한다. 또 해안 사구 주위에 다양한 꽃들이 피는 ‘원생화원’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고자, 그 주위로 말을 방목하거나, 쥐불 및 귀하식물 제거 등의 활동도 벌인다.
이처럼 주민들에 의해 관리되는 도후츠호에는 독수리와 큰고니 등 다양한 새들을 관찰하고, 자연이 만들어 낸 꽃밭인 원생화원을 보기 위해 연간 2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홋카이도 최대 석호 사로마호
도후츠호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30분 가량 올라가면 일본에서 가장 큰 석호인 사로마호를 만날 수 있다.
호수면적 151.86㎢에 둘레가 무려 87km다. 이곳으로 유입되는 크고 작은 하천만 13개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하다. 해수와 담수 중 해수비율이 월등히 높아 일반 기수형태의 석호에 비해 생물 다양성은 떨어진다. 철새도 찾지 않는 석호라 람사르 협약엔 등록되지 않았다.
석호의 수질이 해수에 가깝다 보니 일본의 ‘가리비 양식’이 사로마호에서 처음 시작됐다. 현재도 가리비 산지로 손꼽힐 정도로 가리비 등 해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발달돼 있다.
또 오호츠크해를 가르는 길이 25km, 폭 200~700m의 사구에는 자연 상태의 꽃밭을 즐길 수 있는 일본에서 가장 큰 원생 식물원이 자리하고 있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놀이동산과 7만헥타의 정원에 200종류 120만개의 화려한 튤립이 심어져 있는 ‘가미유베츠 튤립 공원’도 만날 수 있다.
인근 주민들은 자연 그대로의 석호를 보전하며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그 활용가치를 높이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단순 수질 보전에만 나서는 국내 동해안 석호와 비교된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보다 가치 있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용수 기자 ellan9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일본 도후츠호 물새 습지센터에서는 철새의 다양한 정보 뿐 아니라 철새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관광객들이 일본 도후츠호를 찾아 습지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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