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속초항이 개발되면서 속초 수산업도 크게 부흥했다. 이에 전국에서 사업가들이 몰려들었다. 1935년 부산일보, 1938년 동아일보, 1940년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당시 속초 수산업을 이끈 인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중 일부 지역 출신도 있지만, 다수는 전국에서 찾아들어온 사업가들이다. 그들은 속초에서 수산업만이 아니라 물류유통과 중매업, 상업 등 다양하게 사업영역을 넘나들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935년 6월 14일자 부산일보 6면 양양소개판에는 양양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로 모두 21여명을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서 조선인은 장원식 양양면장, 장세환 강현면장, 박상희 도천면장, 김원섭 죽왕면장, 장명식 현남면장을 제외하고 경제인 4명이 전부이다. 문암진어업조합장 주헌(朱獻)씨, 대포항 영복상회 대표 정주벽(鄭珠碧)씨, 속초 비선주조조합(秘仙酒造組合) 대표 김우규(金雨圭)씨, 대포어업조합장 고동환(高東煥)씨를 양양을 대표하는 조선인 경제계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부산일보는 1907년 일본인이 창간한 일본어판 전국 신문으로 해방과 함께 폐간되었다. 철저히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기사가 다뤄지다 보니 양양 소개판에도 일본인들만 다수 소개되었다.
1938년 5월 10일자 동아일보 6면에는 ‘약진 양양의 전모’라는 제목으로 양양소개 특집 기사가 실렸다. 총 24명의 행정가와 경제계, 종교계 인사를 소개했다. 모두 조선인이며, 양양 출신 출향인도 몇 명 포함해 소개했다.
수산업계 인물로는 양양 수산업계 패왕이라며 영복상회 정주벽 대표와 속초번영회장 강래병(姜來秉)씨, 면협의원 출신 허준(許俊)씨, 수산업 사업가로 박복수(朴福壽), 서철(徐哲), 박기돈(朴基敦)씨, 문암진어업조합장 출신 주헌씨가 나온다.
1940년 5월 4일자 조선일보 석간 3면에는 ‘항도(港都) 속초의 약진보(躍進譜)’라고 속초 소개 특집판이 실렸다. 속초판에는 일본인 속초주재소장의 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인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속초항 2기 축항 촉진과 시가지 계획이 급선무라는 내용으로 약유비(鰯油肥)제조업자조합장 정주벽씨의 담화가 실렸다. 수산업계 지역 인물로는 속초번영회장 강래병씨, 어업조합장 출신 고재동(高裁東)씨, 수산업계 사업가로 강삼성(廉三星), 정윤화(鄭允和), 이학규(李鶴奎), 김준기(金晙基), 이흥수(李興守), 강구정(姜具楨)씨가 소개되었다.
3개의 신문에 모두 이름을 올린 이는 정주벽씨이다. 정주벽씨는 일제강점기에도 수산업계 사업가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한국전쟁 후 군정시절 속초읍 민정관을 지냈으며, 이후 속초어업조합장을 지낸 만큼 속초수산업계의 대표 인물로 손꼽을 수 있다. 1938년 동아일보에는 정주벽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수산업계 패왕(覇王) 영복상회주 정주벽(鄭珠碧)
양양 수산계에 거성(巨星)으로 수산왕의 칭호를 들으며 군망(群望)을 일신(一身)에 모으고 있는 기린아는 대포 정주벽(37세)씨이다. 씨는 명석한 통찰력, 웅대한 포옹력, 민활한 사교성 등 거인적 존재로서 대포공립심상소학교장, 학부위원, 수산조합의원, 어업조합간사, 약유비제조조합장 등등의 요직을 중임하고 어업부로 거망기지(擧網基地) 6개소, 비료공장 2개소를 위시하여 발동선 5척, 건착망(巾着網)까지 겸비하고 년생산 10만원을 돌파하며 작년부터 다시 신흥 속초항으로 진출하여 상당한 시설을 하고 있어 금후 가일층 급속도로 신장될 것을 기대하며 씨는 어떠한 일에나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성격의 소유자로 또한 무엇이든지 남보다 우월권을 가지고 있고 동해수라도 하룻밤에 마셔삼킬 만한 포부와 계획으로 장래 동해안 수산업계를 리드할 일군으로 군림할 것을 믿으며 씨에 대한 각 방면의 신망이 날로 높아간다고 한다.
부산일보에는 정주벽씨는 대포항의 조선인측을 대표하는 인물로 영복상회를 경영하고 일반어업 외에도 회조업(回漕業, 선박운송업)을 경영하며, 속초에서 합자회사 삼익상회를 조직해 사장을 맡아 일반잡화와 기타 품목을 취급한다고 소개했다. 속초 수산업계의 대표 소리를 듣던 1938년 정주벽씨의 나이는 37세에 불과했다. 정주벽씨는 이후에도 속초 수산업계의 대표인물로 활동했다. 정주벽씨는 1951년 3월 27일 한국전쟁 중 양양군이 2차 수복된 후 속초읍의 민정관을 5개월 정도 맡았다. 정주벽씨는 이후 속초어업조합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1983년 7월 83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신문에 소개된 수산업계 주요 인물들
당시 속초번영회장을 맡아 속초항 개발에 힘을 쏟은 강래병씨도 주목받은 수산업계 인물이었다. 1938년 동아일보에서는 속초번영회장 강래병씨는 소년시절 빈한한 생활로 다년간 객지를 방황하다가 10여 년 전 작은 어항인 속초항에 들어와 수산업에 전력을 다해 지금은 거망기지와 비료공장 각각 2개소와 양조장, 회조점을 겸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940년 조선일보에서는 강래병씨를 속초개척사의 은인으로 농촌출생으로 나이 53세로 18년 전 속초항에 들어와 수년간 양조업을 경영하다가 수산업계로 전환했다고 소개했다. 1932년 개항 당시 초대구장을 맡았으며, 번영회장과 어업조합 통상회원 등을 역임하면서 10년간 지역을 위해 봉사했다. 대규모로 어업을 확충하고 중매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1938년 동아일보에서는 양양 수산계의 장성으로 허준(許俊)씨를 소개했다. 허씨는 평양 출생으로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다가 1918년 양양에 들어와 수산업에 종사했다. 거망기지(擧網基地) 3개소에 비료공장 1개소 말고도 수산업계의 최고 위력의 허가까지 소유했다. 수산조합 간사, 강원도 수산회의원을 지냈고, 현재는 면협의원, 학교평의원, 어업조합 총대 등의 요직을 겸임하고 반양식주택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지면에서는 상업가이면서 수산업계도 겸업하는 박기돈(朴基敦)씨를 소개했다. 박씨는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상업계로 투신해 강릉, 양양, 삼척에 일류 백화점을 두고, 다시 수산계에 진출해 고성, 장전에서 일방 비료공장을 경영하고 속초 대포에서 거망어업(정치망 일종)을 해 매년 어획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년 수산왕 박복수(朴福壽)씨는 38세의 나이로 양양군 손양면 오산 출생으로 본시 어업계에 종사하여 성공을 이루었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속초항 도항장 건너편에 일류 빌딩을 신축하고 금년 청어도 최고 어획을 기록했다.
1940년 조선일보에는 지역 교육계 은인인 수산원로 고재동(高裁東)씨를 소개했다. 속초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로 군중의 신망이 두터운 고씨는 영랑소학교 설립 당시 3천원의 거액을 희사했다고 소개했다. 경북 출생으로 신의주 영림원에서 다년간 근무하다가 대포항으로 이주하면서 수산업을 경영했다. 1929년 이래 강원도 수산회 평의원을 시작으로 어업조합장, 면협의원, 번영회장 등 공직을 지냈다.
같은 조선일보에 소개된 강구정(姜具楨)씨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38세의 청년 실업가로 함북 청진 출신으로 무역업을 하다가 평양에서 인쇄업을 했고, 언론계에서도 활동했다. 1936년 속초항으로 들어와 합자회사 속초양행을 차려 무역업을 시작했으며, 자매회사로 환동(丸同)해륙운수조합을 조직해 대표를 맡았다. 속초어업조합 통상의원과 지정 중매인으로 활약하며, 일방협동상회이라는 잡화 식료품점을 함께 경영하여 삼정물산의 소주특약점으로 일수판매권을 가지고 있었다.
삼성상사 염삼성(廉三星)씨는 10년전 속초항에 들어와 부친과 함께 양계장과 과수재배를 시작하다가 무역업과 지정중매업까지 확장했다. 이흥수(李興守)씨는 온유비제조업을 시작으로 낙망업까지 확장했다. 김준기(金晙基)씨는 1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속초항으로 들어와 화신연쇄점을 차린 후에 수산업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이학규(李鶴奎)씨는 대포항에서 일찍이 낙망업을 해왔으며, 중매업까지도 나섰다. 이씨는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초반까지 대포노동조합과 어민조합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일제의 탄압으로 투옥되기도 했는데, 이후 수산업계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신문에 이름이 나온 수산업계 인물들 중에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한 행적도 확인된다. 1937년 8월 11일자 조선일보는 속초유지 정주벽씨 외 185명이 거금의 국방헌금을 했다고 보도했다. 고재동씨도 1941년 강원도평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35년 부산일보 양양 소개판에 실린 속초항과 대포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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