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범 작가는 달변이다. 미술은 물론 문화 전반에 대한 감수성과 속초·고성 지역에 대한 이방인의 시선이 겹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지난해 마을미술 프로젝트 최초로 컨테이너 공간을 창출한 아이디어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황금사과’라는 그룹으로 데뷔했다. 광고대행사를 거치고 중국 북경에서 6년 동안 문화기획을 했다. 고성에 정착한 후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오랫동안 놓았던 붓을 다시 들었다. 지난해와 올해 속초의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대학로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고성과 속초에서 마을미술과 개인작업을 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기범 작가에게 2017 마을미술 프로젝트와 개인전 이야기를 들었다.
관광객·속초 연결 문화콘텐츠 기대
-마을미술은 예술의 공공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담아야 하는 작업이다. 개인작업을 하는 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지.
△속초민예총 정은희 국장을 통해 제안을 받고 참여하게 되었다. 나름 이 지역에 와서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나만의 관점에서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적인 배경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공간 자체가 작품이자 상징이 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발생했지만, 고비마다 마을주민(아바이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정의 협조로 넘어가게 되었다. 마을미술의 가치는 이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속초시가 마을미술사업에 선정되었다. 지난해와 올해 작업의 콘셉과 의미는.
△지난해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바탕으로 아바이마을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분단으로 만들어진 동네가 개발이라는 현실적인 필요로 다시 남북으로 나뉘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커뮤니티 공간(아트플랫폼 갯배)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올해는 커뮤니티의 개념을 확장해 아바이마을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기록을 조형화하고 아바이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플랫폼 갯배’와 주변공간은 아바이마을의 서사를 전달하고 주민과 미술, 관광객과 속초를 연결하는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지난해 아트플랫폼 갯배 개관전에서는 주로 동해바다를 표현했는데, 올해는 산이 추가되어 주제가 넓어진 느낌이다.
△주제는 산과 바다로 확장(?) 되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관점은 같다. 영상작업을 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서 포착되는 이미지를 제가 바라보는 순수 회화적 시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찰나와 찰나가 연결되는 프레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든 대상을 각자의 시선으로 보고 재단하고 단정짓는 행위에 대한 반발,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오래전에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론으로 공간과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반응을 보고자 했다면, 지금은 회화 고유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속초매력 극대화할 문화인프라 중요
- 작가이지만 문화기획자의 느낌도 강하다. 이 지역에 정착한지 5년이 되었는데, 고성과 속초는 어떤 곳인가. 문화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속초와 고성은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네이다. 세계 어느 도시에도 없는 매력적인 지역이다. 요즘 고속도로 개통과 고속철도 확정 등의 이슈로 난개발이 우려된다. 일례로 반드시 보존해야할 수협 냉동창고와 같은 경우도 개발 논리에 밀려 주차장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잘 생각해야 한다.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화공간으로의 확충이 시급한 과제이다. 관광을 위한 직접인프라도 필요하지만 속초의 매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가 더 중요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은 “장소는 안전을 의미하고 공간은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장소에 고착되어 있으면서 공간을 열망한다”고 말했다.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장소가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속초라는 공간이 문화적인 가치를 품고 속초를 사랑하고 다녀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도록 만드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8월 말이면 마을미술 협약이 끝나면서 본격적인 설치에 들어가게 된다. 공공미술과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개인작업도 꾸준히 병행할 계획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기범 작가는 최근 서울 대학로 혜화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찰나의 풍경-space, place, moment’을 열었다. 그는 회화 고유의 관점에서 찰나와 찰나가 연결되는 프레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든 대상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2017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아바이마을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기록을 조형화하고 아바이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사진은 올해 설악대교에 설치할 이기범 작가의 ‘시그널’ 작품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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