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에 실린 칼럼 한편을 읽으면서, 속초에서 문화예술의 한 축에서 20여년 넘게 일해 온 사람으로서 부러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웃도시인 강릉이 인문도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는 내용이었다. 강릉시는 ‘2017 인문도시 지원 사업’에 선정됨으로써 2007년 평생학습도시, 2016년 책의 도시에 이어 ‘인문도시’라는 명칭을 국가로부터 공인받게 됐다고 한다. 이번 인문도시 선정으로 강릉시에서는 앞으로 3년 동안 국비를 포함, 5억4,000만원의 예산으로 인문강좌, 인문체험, 인문축제 등이 다양하게 펼쳐진다고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만 해도 100여개가 되는데, 이번의 인문도시 선정으로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문 프로그램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릉시의 그랜드 슬램 달성은 지자체의 치밀한 준비와 전문가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이룬 성과라고 한다. 강릉시는 예향 강릉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인문도시 조례 제정,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문도시추진위원회 발족, 평생학습과 산하 인문 도시계 신설 등을 추진하고, 지역대학과 문화관련 단체와의 지속적인 협력과 소통으로 이루어낸 결과라고 한다.
강릉시는 인구도 21만 명이 넘고, 지역 인프라도 많고, 역사도 훨씬 오래된 도시인데 비해, 우리 속초는 역사도 짧고, 인구도 고작 8만 명이며, 지역의 인적 물적 인프라도 훨씬 부족한 동네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힘 빠진 소리를 하시는 지역의 인사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지만, 그래도 이제는 생각 좀 다시 해 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되묻고 싶다.
다른 사례를 또 하나 살펴보자. 강원도 내 각 지자체가 주관하는 문화재단은 춘천, 원주, 강릉, 홍천, 영월, 인제, 정선 등 모두 7개의 문화재단이 설립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속초에는 문화재단이 없다. 이것도 우리 속초의 시세, 인프라, 재정이 열악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갈 문제인가?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속초문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문화의 비빔밥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한 속초시민 모두가 책 읽는 시민, 공부하는 시민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이는 몇몇 사람의 뜻과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제는 속초시 전체가 나서야 할 때다. 우선 속초의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자신만의 밥그릇을 고집하면, 그 작은 밥그릇마저 둘러엎는 잘못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협력하여 강릉시처럼 각종 공모사업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따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문화예술의 밥그릇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속초 문화예술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컨트롤 타워가 문화재단의 설립이다. 두 번째로 속초시청의 행·재정적 뒷받침에 대한 의지가 절대 필요하다. 강릉시의 사례처럼 속초시의 문화 발전에 관한 조례를 재정비하고, 시민들의 평생학습에 대한 마인드 제고 및 체제 정비가 절실하다.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속초시의회의 문화예술 지원에 관한 적극적 지지이다. 그 것은 조례 제정이든, 예산 편성이든 시의회의 협조가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세 박자가 같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속초는 영원히 다른 도시의 뒷북만을 치는 작은 도시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천혜자원 설악산과 호수와 바다를 우려먹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아니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문화계 쪽에서는 작은 변화의 조짐들이 일어나고 있다. 속초문예대학에서 인문학적 시민강좌를 고민하고, 동네 서점들도 작지만 알찬 인문학적 행사들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설악신문> 기획시리즈로 ‘인문지도로 만나는 속초의 재발견’이란 기사에서도 속초문화의 변화 조짐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아직은 점조직에 불과하다. 이 점과 점을 모아 선으로, 선과 선을 이어 입체도형을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 입체도형의 꼭짓점에 속초시 문화재단이라는 컨트롤 타워를 올려놓을 방법을 속초시, 속초시의회, 문화관련 단체들이 머리를 맞댈 시기가 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해야 할 때이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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