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늦은 여름 장마 비가 요 며칠 폭염을 물러나게 해주고 있다. 열대야에 잠을 뒤척여서인지 피로감이 쌓여 일상이 힘들었는데, 고맙고도 반가운 비님이다. 각 학교들이 방학에 들어가고 직장인들이 몰리는 휴가 시즌이 7월 말과 8월초이지만 내가 근무하는 강원도교직원수련원은 지금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여서 여름휴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하지만 나에게도 여름이면 유난히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대학교 시절, U.C. Berkeley(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갔었다. 나리타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하루가 더 걸려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의 첫 인상은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었다. 미국 서부의 끝인 태평양 연안에 자리 잡은 샌프란시스코는 여름임에도 무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기후에 해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더해져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버클리는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다양한 쇼핑몰과 식당, 카페거리, 은행, 편의점 등이 잘 정돈된 거리 구획을 따라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는 정감 있고 생기 넘치는 곳이었다. 미술가들의 작품 활동과 뮤지션들의 거리 공연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주고, 야외 카페에서 피어오르는 커피 향속에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과 대화들은 선 굵은 연필스케치에 담기는 한 폭의 그림처럼 따사로웠다. 인종차별 철폐와 반전운동, 양성평등을 기치로 한 60년대 미국 시민권운동의 메카답게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일상의 여유와 자유로움을 누리는 이 도시는 과거 인종으로 인한 갈등이 심했던 곳이기도 하다.
1800년대 초,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영토 확장으로 눈을 돌렸을 때 서부개척의 길에 오른 수많은 이방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같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1800년대 중반 금광 발견으로 인한 서부로의 ‘골드 러쉬(Gold Rush)’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인구가 늘어나고 새로운 마을들이 생겨나면서 철도, 항만, 도로 등의 SOC사업이 확대되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멜팅팟(Melting Pot; 인종의 도가니)’으로도 불리는 미국이 노동력을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유입한 것이 이 시기였다. 동부를 중심으로 모여든 북유럽인과 남·동유럽인들과는 달리 서부인 캘리포니아로의 노동력 유입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중국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영국과의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등 국내의 어려운 정치적·경제적 혼란기는 많은 중국인들의 생활 터전을 잃게 하였고, 태평양 너머 먼 이주를 결심하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값싼 노동력은 미국이 세계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있어 초석이 되었지만,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사회적 갈등을 낳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언어, 문화, 생활습관이 다른 이민족들이 미국 사회를 어지럽히고 심지어 범죄와 폭력을 일삼는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여론이 확산되어나갔다. 대부분이 과장되고 거짓인 소문은 미 의회에서 중국인들의 이민을 막고 추방시키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통과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다인종국가인 미국에서 조차 이러한 갈등은 지속되었다.
이미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부작용이 적지 않다. 외국인 불법 고용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혼란, 유학생 불법 모집 및 체류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향후 다양한 형태로 외국인들의 유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민족에 대한 거부감이나 문화적 충돌 등과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학교 교육현장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 등을 통해 이문화와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한다. ‘한국어 배우기, 한국 문화 배우기’ 등 외국인만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만으로는 효율적인 동화(同化)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우리도 그들의 다양성과 다른 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양용석
강원도교직원수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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