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다. 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귄 사람을 일컬어 ‘벗’이라 하고,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을 가리켜 ‘친구’라고 하거늘, 그들을 한 자리에서 동시에 만날 기회가 임박했다. 수십 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내 동기들이 모두 모여 옛 추억을 되새기고 자신이 이룬 성취를 과시하며 그간의 우정을 확인하는 잔치가 마련되었으니, 이름하여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행사! 이 모임을 주선하고 있는 동창회 총무로서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76년에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한 제22회 동기들이 오는 3월 12일 한 자리에 모인다. 까까머리 앳된 소년들이 이제 중후한 중년이 되어, 지나 온 40년을 회고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동기들은 유독 추억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졸업 20주년 기념행사도 우리 지역에선 22회가 처음으로 개최했다. 20주년 때엔 동기들 모두의 학창 시절 성적이 공개되는 바람에 큰 화제가 되었었다. 학급 전원의 성적을 등사판으로 밀어 각자의 집으로 발송했기에, 부모님들이 내 아들의 성적을 다른 이들과 비교해 볼 수 있었는데, 까마득히 잊힌 이 ‘전학년 성적표’가 느닷없이 행사장 출입구 벽면에 떡 하니 붙어 있었으니, 누구라 당혹해하지 않을 것인가. 학창시절 성적이 들통 난 동기들이 이 성적표를 게시한 나에게 야유를 퍼부어 대었으나, 그 성적표를 20년 동안이나 보관해 온 나를 아무도 질책하지 못했다.
졸업 30주년 행사도 모두의 관심을 모았으니, 석별을 못내 아쉬워하며 40주년에 꼭 다시 만나자고 즉흥시를 만들어 낭송하던 주광하는 스스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수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 졸업40주년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감회가 깊을 것이다. 수의사 윤길중과 호텔리어 서성만은 학창시절 통기타와 탬버린으로 투캅스처럼 놀더니 지금은 색소폰 밴드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다닌다. 이들이 이번 행사 메인무대를 장식할 것이다. 소풍 때마다 요들송으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산림학박사 김종찬은 간이식 투병을 거쳐 제2의 인생을 산다. 자신의 체험을 살아있는 전설처럼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40년 만에 우리 모두 졸업앨범도 다시 받게 될 것이다. 태풍 루사에 쓸려나갈 때 졸업앨범까지 함께 떠내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창고에 있는 추억의 사진들을 찾아내 새로이 기념앨범을 만들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번 행사의 한 메뉴이다. 이미 작고한 동기가 20명이나 되는데, 이들에 대한 추모와 더불어, 남아 있는 친구들의 만수무강을 비는 자리도 함께 만들어 질 것이다.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동기들이 모여들고 있다.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정영호도 비행기표 예매를 끝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나가 있는 김귀복이도 이 자리 참석을 위해 휴가를 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지금도 달리기를 계속하는 철인3종경기의 신화 최인수 교수도 이 모임을 위해 대전에서 한걸음에 달려온다. 화물차로 전국을 누비는 창영이는 그날 도착지를 속초로 해서 교통비도 벌면서 올 예정이라 한다. 사업가로 성공한 이헌재는 푸짐한 선물을 들고 이 자리에 등장할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40년간, 우리라고 마냥 화목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툼도 있었고 경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최후까지 동행할 벗이고, 추억과 미래를 함께 할 친구는 오직 우리 동기들뿐이다. 그걸 잘 알기에, 이번 졸업 40주년을 맞아 혹여 어색했던 이들끼리는 화해할 기회도 마련될 것이다. 깊은 우정은 더욱 다지고, 사소한 오해는 관대하게 용서하는, 그야말로 ‘대화합의 장’이 되리라 믿는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서로의 성취를 축하하는 자리로 만들자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표이다. “그 친구가 잘하는 그것을 충분히 칭찬해주자!” 이게 졸업4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의 모토이다.
친구가 곧 인생이다. 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늘려주고, 슬픔을 반으로 줄여준다. 이번 행사에서 우리는, 학창시절 배운 이 격언이 절대불변의 진실임을 기어코 확인하게 될 것이다. 홍창해
속초고22회동창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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