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자주성 보장의 근간을 흔드는 중앙정부의 정책결정과 행정 집행으로 인해 교육자치의 본질과 존엄성이 훼손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작은 학교 통폐합’, ‘누리과정 사태’ 등으로 인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 이로 인한 혼란은 교육자치제의 정체성과 근간을 흔드는 정부의 정책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지방자치와 더불어 그 궤를 함께 해 온 교육자치는 교육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앙집권적이며 일률적인 교육행정을 지양하고, 지방분권의 원칙아래 교육정책의 의결기관과 집행기관을 두어 민주적 통제와 전문적 지도를 통한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제도이다. 의결기관으로 지방의회의 교육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집행기관으로 교육감제를 두고 있는 교육자치제의 뿌리는 1940년대 후반, 일제 식민지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미군정하에서 당시 지방분권적 교육자치의 전통에 익숙해 있던 미국인들에 의해 처음 한국사회에 도입된 교육자치제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2년 여간 일시 폐지되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미약하게나마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교육자치제 운영 기본 원리를 지방분권, 민중통제, 자주성 존중, 전문적 관리에 두고 있기에 지방자치의회가 구성된 1991년 이후를 현재 교육자치제 모습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교육감에 의해 지역적 환경에 적합한 주요교육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는 의미와 지방의회에서 교육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정책들을 의결한다는 의미에서의 민중통제는 대의민주주의 정신과 더불어 자주성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교육행정에 있어 단위 학교별 학교운영위원회 및 학부모운영위원회 등의 역할 및 참여 확대 또한 교육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자치제의 본질적 의미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교육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정치권력에서 전제군주와 같은 지배자의 의사를 곧 국가전체의 의사로 간주되는 것을 ‘지배자원리’라고 부른다면, 이와 대조되는 상황, 즉, 단체성원의 다수의사에 따라 형성되는 민주적 의사형성원리를 ‘다수결원리’라 부르며 이는 국가를 포함한 그 어떤 단체에서도 지켜나가야 하고 존중되어야할 기본적인 원칙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과정이 그 어떤 지배자나 권력자 개인, 혹은 특정단체의 정치권력보다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 이유는 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성’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은 학교 통폐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중앙집권화 된 교육정책은 지역공동체를 황폐화시키고 붕괴시킬 수 있는 개연성과 부정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려와 위기감이 커져가는 이유이다.
강원도교육청의 발표에 따르면 교육부의 작은 학교 통폐합 권고안을 그대로 적용했을 경우 강원도내 초등학교 220곳, 중학교 65곳, 고등학교 21곳 등 총 306개교가 통폐합 대상이 된다. 이는 강원도 전체 학교의 45.5%에 달하는 수치이며, 고성지역의 초등학교는 80%가 넘게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농어촌에 집중되어 있는 작은 학교의 통폐합이 가져올 수 있는 파급력은 농어촌의 공동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강조하는 현 정부정책기조와도 상반되는 정책이기도 하다.
교육자치제는 우리 교육, 더 나아가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서라도 그 정체성과 근간이 보존되어야하며, 그 어떤 정치권력도 이를 폄하하거나 훼손시켜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이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이러한 가치를 수행하는 교육감제가 전문성을 지닌 독립기구로서 참교육을 이루어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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