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 속초를 역사와 문화의 관점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걸어볼 수는 없는 걸까? 지난 몇 년간 속초의 변화는 압축성장의 대한민국을 반영하는 듯 보인다. 지지와 비판보다 중요한 것은 속초다운 가치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앞으로 5회에 걸쳐 익숙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속초를 만나려고 한다. 재건축될지 모르는 골목길, 낯선 문화공간, 익숙한 근대유물과의 만남은 우리가 잃어버릴지 모르는 가치의 발견일 것이다.
<편집자 주>
인문지도의 첫번째 대상지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일대다. 터미널은 여행지의 첫 인상을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은 속초라는 공간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동해바다와 가깝고 수복탑이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바다를 갈 수 있는 터미널.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캐리어를 끌며 서성이는 젊은 관광객의 모습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세련된 외관의 게스트하우스가 터미널 일대에 조성되었다. 지난해 발간되어 큰 화제를 모은 소설 <속초에서의 겨울>(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주 공간도 게스트하우스이다.
하지만 터미널은 단순히 머무르다 가는 공간만은 아니다. 터미널이 건립된 해가 1967년. 이곳은 속초2구라는 과거 행정명처럼 속초 중심지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오랫동안 속초시민의 발이 되어준 곳이다. 바다 혹은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곧장 나아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동명동성당이나 감리교회를 오르기 위해 골목길 따라 추억을 걷다보면 어느새 동해와 설악의 아름다운 풍경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속초문화회관 뒤편으로 영랑호까지 걸어가는 길은 어떤가. 어디선가 풍물가락이 흘러나오고 도자기의 은은한 색채가 노을처럼 마음을 적실지도 모른다.
당신이 낯선 도시를 유영하는 여행자이든 속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시민이든 중요치 않다. 여행의 설레임을 전달하는 터미널 일대의 길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느릿느릿 거닐다보면 아름다운 자연과 속초살이의 내밀한 풍경까지 만날 수 있는 길이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일대임을 알 수 있다. 지역 작가와 문화활동가, 인문학강사가 이곳을 거닐다 발견한 공간은 여기까지이다. 그 이야기를 각자의 목소리로 전한다. 하지만 당신이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은 더 많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제 당신의 몫이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동명동성당’·‘속초리 성지’, ‘그리운 보리밥’
과거와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길
리처드 쉔크만 감독의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 2007)>에서는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무게도 크기도 없는 것, 1초 전의 자신이 지금의 내가 됐다가 1초 후의 내가 되는 주관적 감각일 뿐이다. 호피 인디언은 시간을 앞뒤로 이어진 풍경이라고 여겼다. 우린 그 풍경 속을 조금씩 조금씩 옮겨 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주관적 감각’ 속에서 ‘존재’를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오직 그 기억으로 인해 ‘개인’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기억에 의해 유지 지속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시간’ 그리고 ‘기억’은 그런 것이다.
우리 고장에는 호피 인디언들이 생각했던 시간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과거와 현재가 미래로 연이어질 장소가 있다. ‘동명동 성당’과 ‘속초리 성지’이다.
동명동성당은 동명동주민자치센터 옆 골목길로 올라가기를 권한다. 땀 흘려 오르다보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 근사하기 때문이다. 1952년 10월 5일 양양 본당에서 분리, 시공하여 이듬해 8월 15일에 완공되었으니 약 60여년의 시간 속에 존재한 장소이다. 최근 동명동 성당이 속초의 근대 건축물로도 일컬어질 수 있는 이유이다. 휴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에 맺어졌으니 그 무시무시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지어진 건물이라는 의미성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건물의 외곽은 회칠이 되어있다. 서양 건물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석재의 가운데 부분은 거칠게 처리되어 유럽풍의 외관을 보여준다. 낯설고 생소하기도 하지만 동명동 언덕에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당을 감상한 후 그 옆 동명동 감리교회 쪽으로 옮겨보자. 그곳은 장골이라고 불린 곳이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둘레에 성터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조선 보물·고적 조사 자료>에 수록된 ‘속초리성지(束草里城地)’가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인데 이 성터는 2012년 7월 재해방지공사를 하던 중 발견되었다. 여기에서는 명문기와와 연화문, 어골문, 사격자문, 연화문+어골문, 사격자문+어골문의 복합문양의 기와 등이 발견되었고, 흙으로 판축(판자와 판자 사이에 흙을 넣고 공이로 다지는 건축 방법)한 흔적과 석렬이 발견되었다. 지금도 성을 쌓기 위해 쓰였던 많은 할석들이 마을 주위에 산재해 있으며, 우물터도 한 곳이 있다고 한다.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이 수습되어 청동기시대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런 의미 있는 장소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거닐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는 ‘동명동성당’ 주변의 잔디밭과 ‘속초리 성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속초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공기를 한꺼번에 느껴보자.
그렇게 한참을 거닐다 보면 슬슬 출출할지 모른다. 감리교회 옆길로 천천히 걸어 내려오다 보면 버섯을 닮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그리운 보리밥’이다. 주인장 이진여씨는 시인이자 시낭송가이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본관 2층은 시낭송이나 강연회를 하는 문화공간으로 무상 대관해준다. 본관 옆 발효실도 간단한 문화행사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속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며 보리밥을 한 술 뜨자. 주인 내외가 정성껏 준비한 보리밥과 오늘 둘러 본 장소와 풍경으로 인해 마음이 푼푼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경원 인문학 강사
근대건물의 가치가 있는 동명동 성당. 이곳은 속초의 풍광을 만날 수 있는 자연전망대이다.
그리운 보리밥에서는 아주 가끔 뜻하지 않는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홍시도예’·‘런갯마당’
홍시 먹고 RUN! RUN!
속초문화원 뒤편, 영랑호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면 ‘홍시도예’(대표 손가혜)를 만난다. 홍시 빛깔 같은 가마에서 도자기가 홍시처럼 잘 익으라고 지은 이름이다. 손가혜 대표의 작품을 살 수도 있지만 주로 도자기 공예를 체험하는 공간이다. 어린이집부터 가족단위의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홍시도예를 찾고 있다.
애고 어른이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만지는 세상에서 흙을 만지는 기회는 소중하다. 부드러운 감촉은 촉각을 만족시킨다. 흙은 물을 만나 비누거품보다 매끌매끌해진다. 반죽을 만지면서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어른들은 온갖 스트레스를 내려놓는다.
1시간 30분 정도면 누구나 컵이나 밥그릇, 접시 같은 간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약 한 달 후 건조, 초벌구이,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 등의 과정을 거쳐 도자기로 탄생한 자신의 작품을 집에서 받게 된다. 촉각의 즐거움과 자기만의 작품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촉각을 만족시키는 홍시도예 건너편에는 청각의 즐거움을 위해 25년 동안 달려온 전통문화공연단체 ‘RUN 갯마당’(대표 최종현)이 있다. 영랑호, 울산바위에 얽힌 설화를 음악으로 녹여내는 등 속초만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경기민요를 스윙재즈와 결합한다든가 북청사자놀음을 기악합주 형태로 편곡하는 등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강원도 전통문화관광상품 상설공연, 하우스콘서트 등 연간 100여 회의 크고 작은 공연을 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거의 매일 엑스포공원 분수광장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전통음악의 매력에 빠져 직접 배우고 싶다면 동호회 ‘흥사랑’을 찾거나 ‘문화사랑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공연문화의 험지이고 전통음악의 매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전통문화공연을 지키고 있는 런갯마당은 속초 시민들에게 행운이다. 행운은 누려야 마땅하다.
이무용 작가
주택가에 위치한 ‘홍시도예’는 여행객에게 뜻밖의 선물이다.
속초를 넘어 강원도를 대표하는 국악단체 ‘런갯마당’.
■카페 ‘지느러미’·서점&게스트하우스 ‘완벽한 날들’
문화로 쉬고, 예술로 통하는 복합문화공간
커피를 파는 카페, 술을 파는 바(bar), 책을 파는 서점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단순한 영업공간을 넘어 예술과 인문이 결합된 문화공간을 표방하며 이곳들은 지역주민들뿐 아니라 많은 여행객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카페 ‘지느러미’와 서점 ‘완벽한 날’들은 그런 의미에서 닮았다.
카페 지느러미는 1년 전인 2016년 7월 문을 열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식당을 리모델링한 카페 지느러미는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 소품까지 평범한 것이 없다. 알루미늄과 나무로만 전체가 구성된 이 곳은 공간 예술가 ‘리오’가 기획하고 진행했다. 20여년 전 속초에서 작품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차철호 대표와 함께 이번 지느러미를 기획했다. 건물 내·외부 건축뿐 아니라 대부분의 집기들까지도 기성품을 쓰지 않고 직접 제작했다. 차 대표는 손님들이 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곧 그의 공간 작품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음악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차철호 대표는 지역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에도 관심이 많다. 공연이 필요한 밴드나 공연팀들에게 카페 공간을 제공하고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한다. 이제껏 김마스타, 갯마당 등 전문 공연팀을 비롯해서 여러 직장인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진행했다고 한다.
지느러미가 예술을 결합한 카페라면 완벽한 날들은 여행객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인문 가교 역할을 하는 서점이다. 올 1월 문을 연 완벽한 날들은 서점과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다. 완벽한 날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을 넘어 여행객들에게 책을 통한 쉼과 로컬 여행을 제안한다. 또한 독서 모임, 강연, 공연, 북콘서트 등 지역주민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한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이해 그림책 원화 전시회 및 저자 초청 강연회도 준비하고 있다.
속초를 만나기 전, 속초를 떠나기 전 이용하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은 여행객들에게 속초의 인상을 주는 중요한 장소다. 또한 지역주민들에게는 속초를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두 복합문화공간이 여행객들과 지역주민들에게 문화를 통한 다양한 만남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최윤복 문화활동가
카페 ‘지느러미’는 밴드나 공연팀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영업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12시(둘째 넷째 수요일 휴무).
서점&게스트하우스 ‘완벽한 날들’.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매주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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