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의 도시 속초에서 수산업협동조합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속초 수산업협동조합은 속초 수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처음에는 어업조합으로 태동해 지역 수산업 진흥을 이끌어왔다. 한때 수협은 수산물의 위탁판매뿐만 아니라 금융업무, 어업지도까지 관할하면서 속초에서 가장 큰 경제단체로서 역할을 했다.
속초 수산업협동조합은 언제 처음 태동했을까? 1991년 발간된 속초시지에 따르면 속초시수산업협동조합이 1920년 3월 26일 도천면어업조합으로 발족해, 1953년 6월 7일 속초어업조합으로 이름이 바뀌고, 1962년 4월 1일자로 속초어업협동조합으로 발족하고 그해 6월 21일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1965년 12월 7일 양양어업협동조합이 설립되어 분할되었으며, 1977년 속초시수산업협동조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포수협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1년 4월 17일 대포수산업협동조합이 태동하면서 속초수협에서 분리되었다. 지금 속초에는 두 개의 수산업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문헌자료와 신문기사 등을 통해 파악된 속초수산업협동조합의 태동 시기는 위 기록과 조금 다르다.
1923년 11월 17일자 조선총독부 관보에는 도천면어업조합(道川面漁業調合)이 1923년 11월 10일로 허가되었으며, 구역은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사무소는 도천면 대포리로 공고되어 있다. 한국사데이타베이스에 있는 자료 중 ‘1939년판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에는 속초어업조합의 설립일이 1923년 9월 11일로 기록되어 있다.
1925년 5월 26일자 부산일보 3면에는 도천면어업조합이 1923년 11월 10일 설립되어 다음해 1월부터 3월까지 멸치를 전부 공동판매해 큰 어획고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1924년 6월 14일자 매일신보 4면 ‘강원도 수산일반9’에는 강원도에는 주문진, 울진, 장호, 임원, 정라진, 대진 등 12개 어업조합이 설립되어 운영되었으며, 1923년에는 도천면, 원남면, 북면, 평해면 등에 5개 어업조합이 설립되었다고 보도했다.
날짜는 차이가 있지만, 속초수산업의 태동을 알리는 협동조합이 출범한 것은 1923년이 분명하다. 이후 도천면어업조합은 1933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고시 403호에 의거해 대포어업조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1937년 2월 4일자 조선총독부 인가로 속초어업조합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2월 26일 사무소를 양양군 도천면 속초리 76번지로 이전했다. 당시 속초항 건설과 함께 도천면사무소와 어업조합이 속초리로 이전하면서 속초의 산업 중심지가 속초리로 옮겨왔다.
1938년 5월 10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약진 양양의 전모’에 속초어업조합은 조합원 7백명에 1937년 위탁판매고가 1백만원이라고 보도됐다. 같은 기사에서 수산조합지부는 조합원 85명에 생산고 65만여원이라고 보도됐다. 조선수산조합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거주 일본인과 조선인 어업자, 수산물 제조판매업자로 구성된 조합으로 부산에 본부를 두고 전국에 지부를 두고 운영되었다. 어업조합은 어민들의 협동조합 형태로, 수산조합은 수산관련 경영자의 이익단체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1937년 9월 8일 동아일보는 대포수산조합지부 관내 공장만 80여개소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주도로 만들어진 어업조합은 어민들의 권익을 보호해야함에도 그렇지 못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1931년 9월 13일자 조선일보에는 양양군 대포의 어민들이 어업조합이 제조업자의 이익만 꾀한다고 항의하는 사태를 보도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1년 9월 8일 도천면의 어민들 80여명이 대포어업조합에 쇄도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어업조합을 규탄했다. 동해안 수십만 어민의 맹렬한 반대에도 온어(정어리)의 생산 제한과 유비의 강제적 일수판매가 강행되어 어민 생활을 극도로 궁핍하게 만들었다. 어민구제책으로 나온 온유보급금(鰮油補給金)도 최초 협정액의 절반으로 결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포어업조합에서 대포 어민 두사람을 불러 보급금 전액을 다 어민에게 줄 수 없고, 현재 온유비 판매가격으로는 제조업자의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제조업자의 편을 드는 발언을 했다. 극도로 생활난에 쪼들리는 어민들은 행여나 보급금으로 도움을 받을까 기대했으나 이 말에 분개하여 어업조합을 쳐들어갔다. 어민들은 보급금을 현금 전액으로 어민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어업조합이 어민들을 위하지 않고 기만적으로 제조업자의 이익만을 꾀한다고 규탄했다.
일제강점기 협동조합 조직 말고 속초의 수산업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단체는 대포어민조합, 대포노동조합이다.
1928년 1월 11일 조합원 32명이 대포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이어서 1월 19일 조합원 34명이 대포어민조합을 설립했다. 조선총독부에서 정책적으로 설립토록 한 어업조합과는 달리, 지역의 어민들이 중심이 된 어민노동조합이다. 이 두 조합을 주도한 이학규는 이보다 앞선 1926년 박정양과 함께 대포노동회를 조직했으나 강령이 불온하다고 양양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받고 원산으로 호송되어 예심에 회부되었으나 무죄방면되었다.
1928년 5월 1일 대포노동조합과 어민조합은 합동으로 세계 노동자의 날 ‘메이데이’ 기념식을 거행해 신문에 보도되었다.
대포(大浦) 양양군 대포노동조합에서는 어민조합과 합동하여 동회관 내에서 지난 5월 1일에 메이데이 기념식을 거행하였다는데, 조합원, 각 단체대표, 유지 제씨 70여명이 회합한 중 노조집행위원장 이학규씨의 개식사 및 메이데이의 유래와 의의의 설명이 有한 후 각 단체 대표로 농조 최욱, 김병한, 최영규, 청맹 최용대, 소년연맹 조상? 설학수, 오상근, 자유 등단에 박혁양 제씨의 연설이 끝나고 만세 3창과 주악으로 폐회하고 여흥까지 마치었는데, 시위 행렬은 당국의 금지로 못하였다더라.
<조선일보 1928년 5월 6일자 석간 4면>
동아일보 1929년 1월 28일자 3면에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노동자 파업인 원산총파업을 주도한 원산노련에 격려전보와 격려문을 보낸 단체 명단 속에 강원도대포어업노동조합이 나온다. 다음달 2월 11일자 동아일보 3면에도 전국 각지에서 원산노련에 보낸 격려금(동정금)과 격문 명단을 실었는데, 대포어민조합(大浦漁民組合)이 5원, 대포노동조합(大浦勞動組合)이 4원50전을 격려문과 함께 보냈다.
1929년 대포어민조합은 도천면 일대 어민들의 정어리 가격 인상 요구 파업을 주도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다. 1929년 5월 21일에는 양양군 도천면 일대 정어리 공장 어민 4백여명이 파업에 돌입해 결국 공장주들과 타협을 이끌어 냈다. 이어서 5월 30일에는 도천면 내물치리 3개의 정어리 공장 소속 28척 선원 140여명이 파업을 단행했으나 경찰에서 파업을 선동했다고 어민조합원 이보경씨를 구금하고 탄압에 나섰다. 어민들은 다음달 7일 구금한 어민을 석방하라고 2차 파업을 진행했다. 다음은 1929년 6월 1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대포어민조합의 2차파업 소식이다.
구금석방 요구 시위총파업 / 양양군대포어민조합을 중심으로 하야 일대파업 / 백오십여명 어민 결속
양양군 대포어민조합을 중심으로 각 어민이 일시 총파업을 단행하였다 함은 기보하였거니와 지난 7일에 또다시 어선 28척 선원 150명이 재차 파업을 단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제 1차 파업을 선동하였다는 혐의로 어민조합원 이보경(李甫京)씨를 경찰이 구금하고 방금 취조중임으로 이를 석방하라는 시위파업이라더라(양양)
<조선일보 1929년 6월 19일 5면 1단>
대포어민조합과 노동조합의 주동자 이학규는 조합 운영 과정에서 조합원들을 불온한 발언으로 선동했다고 체포되어 1933년 2월 25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 탄압 이후 대포어민조합의 활동은 거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자주적인 어민들의 결사조차도 용납되지 않았던 암울한 식민지시대. 슬픈 속초의 과거사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양양군 대포어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어민들 총파업 소식을 전하는 1929년 6월 19일 조선일보 석간 5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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