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청년의 물음에 주저했다.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문득 ‘스무 살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을까’ 하고 오래 동안 기억을 꺼내려 애써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고향 속초를 떠나 낯선 도시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떠밀리듯 우왕좌왕했던 1985년 서울에서의 대학생활 시작은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바쁘게 흘렀던 것 같다. 처음 한 학기는 강의실과 동아리방을 오가며 새로운 친구들과 선배들을 사귀고, 그들의 이야기들과 고민들을 대하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소위 ‘데모’라 불리던 학생운동집회와 대학생군사훈련의 경험도 새로웠다. 대학캠퍼스에서는 당시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집회가 수시로 있었지만, 한 쪽에서는 교련복과 예비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는 모습들이 함께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풍경들이 간간이 떠오른다. 2학년 까지 필수 과목인 교련을 이수해야 군대를 연기할 수 있고 군 단축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한참 무더위가 시작되는 5월 말 즈음에 ‘문무대’에 들어갔던 것 같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군부대에서 일주일 정도 합숙을 하며 군사훈련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학년 남학생들은 모두 참여해야만 했다. 이를 거부하면 학기 중에 곧장 군 입대 영장이 나와 강제징집이 되었기에 자율적 선택이 불가능했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이 대학생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려는 의도로 운영되던 대표적 정책이었기에 학교에서 단체 버스로 출발하기 전 문무대 입교 반대 시위를 하고 나서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문무대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말고사를 보고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학교 정문이 굳게 닫히고 군인들이 무장을 한 채 서서 학생들의 출입을 막았다. 데모할 때 도구로 사용되던 학교 앞 인도의 보도블록들이 파헤쳐지고 그 위에 검붉은 아스콘이 새로 깔리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여름방학동안 학교에 남아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려는 계획이 갑작스레 무전여행으로 바뀌었다. 간단한 짐을 싸서 혼자 대구를 거쳐 부산, 그곳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었다. 난생처음 간 제주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갑판위에서 밤새도록 바라보던 밤바다와 만월 달빛 아래에서 허옇게 일던 물보라와 파도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학년이 끝날 즈음에 적성과 진로에 대해 생각과 고민이 더 많아졌다. 진로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친구들, 선배들 자신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너무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나에게 격려보다는 많은 걱정들을 해 주었다.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게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pg 123, 데미안)의 구절들이 애잔하고도 묵직하게 가슴에 와 닿는 그런 시절이었다.
또 한 차례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는 대학 졸업을 1년 정도 앞둔 시기였다. 졸업 후 취업을 하느냐, 대학원을 진학하느냐를 두고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였다. 주변 친한 친구들이나 같은 하숙집 선·후배들은 거의 취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는 것이 부모님에게 너무 큰 경제적 부담을 주어서였다. 중간에 한 학기 휴학을 하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과 연구소 조교를 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30대 초반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되지… 그러면 즐겁게… 잘 할 수 있을 테고… 주위 사람들 이목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지 말고… 단,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입히는 일은 하지 말고… 그게 행복한 삶이지….” 지금까지 살아보니 그랬다. 내가 그 청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양용석
강원도교직원수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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