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의 백미는 기항지 여행이다. 오후 늦게 출항, 이튿날 기항지에 도착한 후 여행을 한다. 기항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스를 전일과 반일로 나눠 여행상품을 선택하거나 자유여행을 하면 된다. 현재 속초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부산에서 출발하여 속초를 온 후 일본과 러시아로 떠나게 된다. 이번 여행은 일본 마이즈루와 사카이미나토, 부산이었지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일본 가나자와 등의 코스도 인기가 많다.
크루즈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90년대까지 속초의 관광은 설악산과 동해바다 이미지가 강했다. 2000년대 들어 아바이마을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이 새롭게 각광받고 먹거리 여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크루즈는 여기에 항구도시 속초의 이미지를 세계에 전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유명 크루즈 여행지의 성공사례는 많다. 입국심사나 상륙허가, 항만사용료 인하 등 각종 면세와 규제해제가 첫 번째이다. 대형 크루즈 접안시설의 조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도시 고유의 이야기 속에 특별한 체험을 전달하는 관광지가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다. 특히, 크루즈 기항지 관광의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재방문을 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크루즈 관광의 직간접적 효과가 크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도시 역사를 감성공간으로 ‘마이즈루’
첫 번째 기항지인 마이즈루는 크루즈로 ‘상전벽해’가 일어났다는 도시이다. 해상 자위대와 화물선만이 드나들던 인구 8만의 항구에 크루즈가 들어오면서 관광의 메카로 바뀌었다. 이 도시의 주요 관광상품은 과거의 재구성과 상품화, 아름다운 자연과 즐길거리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항구도시마다 있다는 붉은 벽돌의 아카렌가는 도시의 서사를 품고 있는 역사 공간이 어떻게 관광콘텐츠로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일본은 100여년 전 아시아대공영을 꿈꾸며 대륙으로의 진출을 준비했는데, 그 전초기지가 마이즈루였다. 아카렌가는 전쟁을 위한 포탄과 물자들을 채운 창고였다. 그곳에 전시홀과 기념품 가게, 미술관, 마이즈루시 역사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창고 자체의 조형미도 좋지만, 100년 전 시간여행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접근한 점이 돋보인다. 자연스럽게 속초의 구 속초수협을 떠올릴 수 있다. 도시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을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바꾸며 특별한 체험을 전달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곳에는 마이즈루의 대표 음식인 카레와 니쿠자가(감자소고기조림)를 파는 카페도 있다. 해군카레라고 불리는 카레라이스는 아카렌카와 함께 디자인하여 음식과 역사를 함께 소비하도록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항지의 대표 상품 쇼핑도 인기이다. 마이즈루의 토레토레 수산센터는 재래시장과 마트의 장점을 모아놓은 공간이다. 크루즈 관광객의 선호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스시나 해산물 구이, 사시미 횟감을 즉석에서 구입하여 푸드코너를 연상케하는 식사용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다. 아카렌가를 디자인한 카레라이스, 소량으로 다양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만든 재래시장의 먹거리 운영이 돋보였다.
이밖에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고로스카이타워와 교토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성하마을 요시하라, 한국과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우키시마마루 추모비 등도 만날 수 있다.
만화 활용한 도심활성화 ‘사카이미나토’
사카이미나토는 일본 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만화를 통해 일본의 가장 유명한 마을로 변신한 곳이다. 그의 만화 ‘게게로의 기타로’에 나오는 캐릭터를 활용해 조각상을 만들고 상품을 만들어서 ‘미즈키 시게루 로드’를 만들었다. 약 800m에 이르는 길에 요괴들의 동상 153개를 세우고, 거리의 가게들도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을 만들었다. 기타로빵, 눈알만주는 상품이자 콘텐츠였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 끝에는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이 있다. 그의 삶과 관련된 전시물과 만화 캐릭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만화를 활용한 도심활성화는 여러 지자체가 벤치마킹을 했다. 콘셉트가 있는 생활공간, 예술적인 감각의 마을디자인은 전주 한옥마을 등을 떠올리게 한다. 속초의 아바이마을과 갯배, 구 속초수협과 청초호변, 관광수산시장으로 이어지는 ‘속초형 길’을 자연스레 상상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자연스러움과 감각적인 디자인이 어우러지는 공간의 조성이 필요함을 느꼈다.
사카이미나토와 인접한 곳이 속초의 자매결연도시 요나고시이다. 요나고시에는 설악산과 높이가 거의 비슷한 다이센산이 있다. 산맥이 험준한 설악산과 달리 홀로 우뚝 선 산으로 호키지방의 후지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요나고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요나고시의 특산물과 온천족욕을 만나볼 수 있는 가이케 온천관광센터였다. 그곳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가이케 온천 해수욕장에는 산인지방의 토끼 전설을 그려놓은 야광 바닥 벽화를 만날 수 있다. 해안가 도로 바닥에 그려놓은 야광벽화는 낮에는 희미하게 보이며 궁금증을 유발하고, 밤에는 화려한 야광벽화로 바뀌어 관광객의 사랑을 받았다.
크루지 기항지인 ‘마이즈루’와 ‘사카이미나토’는 지역 고유의 색깔있는 관광상품으로 관광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바다와 산, 온천과 호수가 있는 속초의 ‘특별한 체험’은 무엇일까. 속초처럼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크루즈 관광의 모항지로 각광받고 있는 부산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마이즈루의 아카렌카(붉은벽돌) 파크 해설을 듣고 있는 교류 추진단 일행. 백년전 군수품 창고였던 아카렌카는 근대 유물의 보존을 통한 콘텐츠 활용의 성공사례이다. 12동의 아카렌카는 자체의 조형미를 강조하면서 역사박물관, 전시실, 식당, 기념품 등의 문화센터로 조성했다.
마이즈루는 역사의 기억을 상품화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해군 카레라이스와 아카렌카를 활용한 ‘카레’ 상품이 대형마트의 중요 매대에 상설판매되고 있다.
사카이미나토시의 구멍가게의 향수와 세련된 디자인의 조화는 다양한 계층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의 전설을 그려놓은 요나고시 가이케 온천 해수욕장의 야광 바닥벽화는 낮과 밤의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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