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22일은 국제 생물 다양성의 날(International Day for Biological Diversity)이다. 이 날은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과 그에 얽힌 여러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유엔이 제정한 기념일이다. 유엔은 이날 오전 10시에 “나무를 심자”고 호소하고 있으며, 이에 호응하여 각국에서는 일제히 나무를 심는 ‘그린 웨이브’라는 나무 심기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엔에서는 왜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언어를 공부하고 있는 나는 이를 언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모두들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이후부터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집단 인구 이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있어 왔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와 언어들의 접촉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다양한 문화와 언어들은 수백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온 것들이니 그 뿌리가 공고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하나의 언어를 하나의 국가와 대응시켜 생각하는 근대 유럽의 사고방식이 전 세계로 파급되어 한 국가 내의 서로 다른 언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은연중에 정책을 통해 타 언어를 소멸시키려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서 한 국가 내의 다양한 언어가 서로의 범주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즉, 언어의 근대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하게 된 것인데, 이는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근대화 즉 표준화와 획일화는 개인의 의식을 지배하며 언어국가주의나 언어제국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각 국가들은 단일한 언어를 중심으로 교육, 문화 활동을 전개하도록 국가가 관리하고 있으며, 자국의 언어를 타국에 전파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국가 혹은 민족 이데올로기가 언어에 적용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한 국가의 내부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표준어와 방언의 구별로 인한 차별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순수 우리말 사용하기 운동이나 표준어 사용하기 운동은 모두 배제의 논리가 적용된 사례라 하겠다. 이는 근대 국가 시기에 국민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여야만 했던 한국의 정치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한국어는 언어적 다양성이 억압당하고 배제되는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지역어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곳 중 하나가 제주도이다.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어 제주도 방언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십 수 년 안에 제주도 방언은 사라질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 속초 방언도 곧 그런 운명이 될 것 같다. 언어는 생명력을 갖고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그런데 이 변화와 발전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다양성이 저해된 상태에서는 곧 그 언어의 생명도 유지 지속되기 힘들게 된다.
이는 지구환경의 ‘생물 다양성’ 측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생물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인류에게 커다란 자산이다. 생물종이 하나 둘 소멸되어 간다면 그 안에 담긴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져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지켜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종들의 생명과 가치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마치 표준어와 방언의 가치의 경중에 차이가 없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박경원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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