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과 운송업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아무리 대량 어획물이 있어도 지역에서 소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운송이 발달하지 않으면 수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속초의 수산업 발달에는 운송업이 뒷받침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기록과 신문을 보면 속초항이 본격 개항되기 이전에 대포항이 속초 수산업의 거점항이었다. 대포항이 설악권 대표어항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대포항이 정기항로 기항지였기 때문이었다. 도로나 철도가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시절에 가장 빨리 타지 또는 외국과의 교통 운송 수단이 바로 기선이었다.
과연 대포항은 언제부터 기선이 드나들기 시작했을까? 그 시점을 기록물을 통해 추적해 보았다.
정기항로 양양 기항지가 대포항
대포항이 정기항로 기항지로 개설된 것은 당시 육로 교통망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 상황에서 양양지역의 물류 유통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역사 기록과 사료를 통해서 확인하면 1909년 2월 무렵에 동해안 연안항로가 개설되어 대포항에 기선이 기항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연해항로조약(沿海航路條約) 체결로 한국의 연안 항로에 일본 선박의 항행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미 운항 중이던 인천, 목포, 부산, 원산, 연해주 기선 운항 외에 동해안 연안 지역을 기항지로 하는 항로는 개설되지 않았다.
한국사데이타베이스 ‘신편 한국사’에 따르면, 실제 동해안의 연안 지역을 경유하는 기선은 1908년 10월에 개시된 부산－원산선(울산, 영일만, 죽변만, 강릉, 양양, 고성, 장전동 기항, 월 1회 운항), 부산－웅기만선(울산, 영일만, 죽변만, 강릉, 양양, 간성, 장전동, 원산, 서호, 신포, 신창, 성진, 명천, 어대진, 독진, 청진, 이진 기항, 월 1회 운항), 서호－강릉선(양양, 간성, 수원단, 장전동, 원산 기항, 월 1회 운항) 등이다. 1908년 8월 이 항로 개설을 위해 정부는 일본인 요시다 슈타로(吉田秀太郞)의 합자회사에 총 3년간 총 5만1,057원의 보조금을 대여하고 정부소유선 융희호(691톤)도 빌려주기로 하면서 부산－웅기간에 명령항로 4개 노선을 개설토록 하였다. 정기항로 양양의 기항지가 바로 대포항이다.
신문 기록에서도 이 융희호의 운항이 확인된다. 1909년 2월 7일 대한매일신보 2면 3단에는 탁지부의 보조금으로 일본인이 원산과 부산을 운항하는 ‘융희호’가 운항을 개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다른 기록에는 1909년 2월 탁지부가 일본에 발주하여 융희호가 부산에 들어왔다고 한다. 기록을 종합해 보면 대포항에 기선이 처음 운항한 것은 1909년 2월로 추정된다.
1909년 당시 양양군은 대포항을 통해 북으로는 원산을 거쳐 함북 웅기, 러시아 연해주까지, 남으로는 부산, 일본 규슈까지 해상 항로로 연결되었다.
최초의 동해안 연안 정기기선 융희호는 1910년 6월 30일 울산 부근 연해에서 좌초되었다.
기항지 대포항은 설악의 물류 중심지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발간된 도천면 <면세일반>에 의하면, 당시 속초의 육로 교통은 해안을 따라 원산양양선 이등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북부 미시령을 넘어 조양동 부월리로 나와 동쪽 도로(원산양양선)와 만나는 인제대포 삼등도로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교통수단으로서 역할하기에는 육로교통망은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었다.
반면 해운 교통은 조선우선정기항로(朝鮮郵船定期航路) 기항지인 대포항이 있어 북으로는 함경북도 웅기(雄基), 남쪽으로는 일본 규수항 모지(門司)까지 운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운항 횟수의 기록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대포항 기항노선으로 양양지역의 수산물의 이출(移出)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었으며, 대포항 일대는 상업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면세일반>에 의하면 당시 도천면에는 일본인(내지인)이 속초리 2가구 7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포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인원이 23가구 93명에 달했다. 도천면 거주 일본인 중 상업 종사자가 14가구 56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포항은 1900년대 초반부터 기선운항으로 설악권의 물류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일본인 상권 중심지로 일제의 경제 침탈의 관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19년 4월 양양의 물치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겁에 질린 대포의 일본인들이 모두 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을 갔다는 기록도 있다.
양양의 문호 역할을 했던 기항지 대포항은 1920년대 양양을 소개하는 신문과 잡지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1923년 12월 발간된 개벽 제42호에는 ‘郡內 大浦港은 定期航路가 有하야 사時 船舶의 出入이 頻繁하다(군내 대포항은 정기항로가 있어 언제든지 선박의 출입이 빈번하다)’고 했으며, 1927년 9월 3일자 동아일보에는 ‘정기항로의 대포항(大浦港)이 읍북 3리 되는 지점에 있어 출입운수의 편의를 준다’고 했다. 1934년 11월 27일자 동아일보에는 해당 부산-원산 항로를 왕복 10일에서 왕복 5일로 단축한다고 했으며, 다음해인 1935년 4월 10일자 동아일보에는 부산-원산 항로에 급행연락선 2척을 투입해 운항시간을 왕복 3일로 단축해 한 달에 10회 운항한다고 보도했다. 이 항로의 중간 기항지로 양양이 거명되었다.
1926년 도천면 <면세일반>에 의하면 당시 수산물 이출(移出)이 생어와 염침어, 어비 등이 주를 이루는데, 주로 원산과 포항, 부산으로 이출(移出)된다고 했다.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산에서 부산까지 정기항로의 기항지 대포항을 통해 수산물과 가공제품이 활발히 반출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외부로부터 상품이 반입되어 ‘대포항은 정기항로의 기항지임으로 백물이 폭주(輻輳)한다’는 평을 받았다.
대포항을 기항지로 하는 동해안의 정기항로는 속초지역의 인적, 물적 대외교류에 큰 역할을 해왔다. 동해북부선 철도가 1937년 12월 1일 양양읍까지 개통되기 전까지 이 정기항로는 속초를 비롯한 양양지역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동해안 기선, 부산에서 원산까지 열흘
1926년 7월과 8월 동아일보에는 10회 연재 기사로 부산에서 원산까지 운항하는 동해안 기선을 타고 해양생활을 실제 체험하는 기사가 게시되었다. 당시 동해안 기선 운항의 모습을 이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부산에서 출발해 구룡포, 강구, 삼척, 주문진, 장전에서 기항을 하고, 원산까지 장장 열흘이 넘는 동해안선 기선 여행을 체험했다. 부산에서 주문진까지는 100여명의 승객이 탄 웅기호를 타고 왔으며, 하루를 강릉에서 머물고는 다시 주문진항에서 신의주환(780톤)을 타고 원산까지 갔다. 날이 좋으면 빨리 운항하지만 안개가 많이 낄 때는 좌초를 피하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닻을 내리고 정박하다보니 바다 위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안개로 운항이 며칠 지체되면서 식료품이 떨어져 중간 기항지인 구룡포항에 내려 생선과 야채를 사오기도 했다. 육로로는 3,4시간 걸릴 거리를 사나흘 걸린다고도 했다.
작은 항포구 기항지는 종선을 이용해 화물과 승객을 실어 날랐다. 주문진항에서는 종선이 바다에 정박한 기선까지 찾아와서는 여러 가지 화물을 내린 후에 사람들을 태우고 항구로 들어갔다.
이 연재 기사에는 대포항 기항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나 해상에서 바라본 낙산사와 관음굴, 의상암 이야기가 나온다.
“같이 탄 훈도의 인도를 받아 망원경을 들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바닷물을 둘러막은 청암절벽 밑에 많은 어선을 능히 수용할 만한 큰 굴이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관음굴인가 봅니다. 얼마를 더 가지 못하여 바다 가운데 따로 선 바위 한 개를 마주보고 초가인 듯한 대문 한 채가 망원경에 나타나 보이니 이것이 낙산사 문이라하며, 보이는 바위는 신라 때 의상이란 화상이 공부를 하다가 바다에 빠지든 ‘의상암’이라 하나이다.”
<1926년 8월 4일자 동아일보 5면 ‘항만일별 동해안 해양생활 8’>
엄경선 전문기자(설악닷컴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1934년 11월 27일 동아일보 3면 1단에 실린 동해안 기선 신항로 소식. 부산에서 원산까지 왕복 5일로 단축하는 항로 소개 기사 속에 중간 기항지로 양양이 거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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