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속초에서 가장 높게 보이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설악산 대청봉(1708m)이다. 달마봉, 울산바위, 미시령 휴게소, 외옹치, 속초등대, 청대산 소나무 3개, 꽥산(옛 속초관광호텔), 동명동 성당, 속초감리교회, 청학동~금호동 노가리촌 산동네, 사이렌 산동네, 교동성당, 설악고등학교, 물탱크, KBS속초방송국 등이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그 후 아남플라자, 동진리조텔, 호텔과 콘도, 아파트, 엑스포 상징탑이 고층 경쟁을 벌여왔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부동산개발 광풍이 숙지기는커녕 이젠 영랑해변과 산동네로 번지고 있다. 속초시에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사업 이외에도 아파트나 대형건축물개발 소문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우리 지역민들은 멀리 설악산과 청대산, 망망대해 바다를 보며 심신을 달래곤 했다. 주말이면 수도권 시민들이 속초시를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 이들에게 세컨하우스 개념의 고급 주택들을 내주고 외곽으로 쫓기듯 이주하는 토착 서민들의 상실감을 누가 보듬어줄 것인가.
조망 좋은 곳 개발업자들 몰려
서울∼양양 동서고속도로 동홍천∼양양 구간이 다음 달에 개통되면 차량으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통행시간이 3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크게 줄어든다. 예정대로 오는 2024년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까지 개통되면 서울 용산역에서 속초까지 KTX로 통행시간이 1시간 15분이다. 수도권과 일일 생활권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호재 때문에 부동산이 과열되고 덩달아 기존 아파트 값도 천정부지이다.
개발 광풍의 빛은 당연히 그림자를 낳기 마련이다. 사업자 입장에서 호텔이나 아파트 건립의 성패는 입지이다. 지대가 높아 조망이 좋은 곳에 개발업자들이 몰린다. 바다나 호수, 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고층 건립이 시쳇말로 돈이 되는 것이다. 스카이라인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른 환경파괴, 조망권 침해 논란 등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네 지역민들 몫이다.
용역을 통해 재정비된 ‘2035년 속초시 도시기본계획’과 ‘2035년 속초시 도시관리계획’이 내년과 후년에 나올 수 있다고 속초시가 말하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아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 행진하는 아파트와 호텔들을 보며 이제 최고고도지구를 전면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속초시는 지난 2015년 10월 도시관리계획 변경 고시를 통해 시내 번영로 지구(35m), 교동가로 지구(18m), 속초초교 지구(35m), 대포초교 지구(12m)를 이미 최고고도지구에서 해제했다. 이미 입지한 건축물에 의해 주요 조망점의 방향과 시각이 가로막혀 규제완화를 통한 상권 활성화를 위해 최고고도지구에서 폐지했다고 밝혔다. 이제 시내권에서 최고고도지구로 묶여 있는 곳은 장사, 영랑해변, 영랑호와 청초호 수변지역, 청호동 해안가, 새마을과 외옹치 해변 근처와 7번국도 일부지역 등이다. 최고고도지구 중에 보존가치가 없는 곳은 이미 이때 풀렸고, 그 외 지역은 경관 등 중요한 포인트 지점만 남아 있다. 이런 최소한의 고도제한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변과 호수 변에 무분별하게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민원을 야기하고 있다.
오히려 경관보전을 위해 보다 더 촘촘하고 치밀하게 고도제한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 관광도시 속초를 온통 고층아파트와 건물로 뒤덮고 나면 과연 속초라는 도시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무조건 고도제한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지금 상태에서도 고층건물을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풀자고 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개발도 좋지만 미래를 위해 제발 좀 남겨놓자.
공동주택 높이 규제한 서울시 사례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행하는 <이슈와 논점>에 따르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2월1일 일부 동을 50층으로 건축하려는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계획을 35층 ‘높이 제한’을 이유로 보류했다. 서울시 공동주택의 높이 규제는‘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기본계획은 건축물의 밀도와 높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용도지역·지구의 지정 또는 변경에 관한 계획과 지구단위계획 등 도시관리계획 및 경관계획 등 다른 법정계획에도 영향을 미치는 구속적 계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35층 기준은 장기간 전문가 논의와 시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회적 합의사항이며, 용도지역에 따라 허용되는 개발밀도와 최고높이가 비례하도록 높이기준을 설정했기 때문에 근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중심지체계에 따라 입지, 밀도, 용도에 맞춰 최고높이를 차등 관리하는 예측 가능한 원칙을 마련해 시행하기 때문에 높이 관련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높이규제는 사유재산권 침해란 주장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높이를 제한한다 할지라도 재건축 사업성의 주요 요소인 용적률이 동일하기 때문에 재산권 침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칙과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개별 개발 사업에 대한 심의가 진행될 경우 도시계획위원회 결정에 있어 일관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개발계획결정 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및 비효율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높이규제에 있어서도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장 없는데 아파트만 늘면 인구 늘까
아무리 고속철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놓인다 해도 이 많은 물량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규모 있는 공장이나 회사도 없는데 아파트만 짓는다고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속초시 인구 변동현황을 분석해보면 2015년 10월부터 신규 대형아파트 분양권 취득을 위해 일시적으로 인구가 늘었다가 결국 분양권 당첨자 발표 이후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청호동 I아파트 분양 때 842명 증가, 그 후 1,200명 감소, C건설 분양 시 149명 증가, A아파트 분양 시 496명 증가, K건설 분양 때 482명 증가, H건설 분양 시 430명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속초시 인구는 8만1,793명으로 2015년 동기 대비 199명이 줄었다. 올해 2월 S건설 분양 시 521명이 증가했지만 당첨자 발표 후 3월 인구수가 570명 준 8만1,748명이었다.
김예성 도시계획학 박사는 “도시경관의 정체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개별건축물 차원이 아닌 도시전체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최고높이에 대한 일관된 기준과 원칙은 필요하다. 특히 주거지역 내 고층 건축물의 건축은 조망과 경관 훼손뿐 아니라 일조권 피해, 미시기후 변화, 위압감 조성 등 주변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높이규제를 마련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도시개발과 도시경관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체계적인 높이관리는 필요하다. 높이관리는 단순히 경직된 규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수영 전문기자<속초예총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속초시에 개발 광풍이 불면서 고층 아파트와 호텔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지대가 높아 조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개발업자들이 몰리고 있다. 속초시 전경.
H건설이 아파트 건립을 위해 작업 중인 우렁골 산동네 항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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