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 아침은 오는가?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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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7년03월06일 14시19분 ]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은 역사 시대를 ‘고대-중세-근대’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시기를 ‘새로운 시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데 거기에는 이전의 영광이 다시 찾아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그리스, 로마 시대는 말 그대로 ‘황금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황금기’에서 중세로 넘어서면서 ‘암흑기’가 도래하게 되었으며 이는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부단히 노력한 끝에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영광을 되찾게 된 시기가 바로 자신들이 살던 때인 르네상스 시대. 즉, ‘근대’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들의 시대인식에 비추어 우리가 사는 시대를 되짚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들 생각대로라면 역사는 발전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암흑의 시대’는 곧 ‘빛의 시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역사의 어느 시대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가 현 시대를 빛이 회복된 시기인 ‘근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우리는 너무 힘겹다. ‘경쟁’과 ‘경쟁’과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죽도록 노력해서 겨우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지금’은 바로 ‘중세’인 것이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앞으로 다가올 온라인 네트워크 시대의 주인공이라며 N세대라는 찬란한 이름으로 불리던 청년들이 지금은 N포세대로 명명되고 있다. 그 N포 세대 사이에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헬조선’이라는 말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헬조선’은 말 그대로 ‘지옥(hell) 같은 한국도 아닌 조선’이란 뜻이다. 유사어로 ‘불지옥반도’, ‘개한민국’, ‘망한민국’이라는 말도 쓰인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춘 세대이면서도 건국 이래 최악의 고용절벽에 맞닥뜨려 있는 N포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반영하는 새로운 문화 코드가 바로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혹,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지금의 우리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면 아마도 암흑기인 ‘중세’의 어딘가라고 확신했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끌어안고 있던 아주 익숙한 문제들, 온갖 부조리의 결정체가 바로 ‘헬조선’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그저 우리 사회에 지금까지 만연해 있던 크고 작은 문제 덩어리들을 총칭하기 위해 탄생한 신조어가 아닐까? 그렇다면, ‘헬조선’ 현상의 표면에 드러난 모습이 아닌 이면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면 긍정적 가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N포 세대가 ‘헬조선’을 이야기하며 자주 즐겨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노오력’이다. ‘노력’을 길게 늘인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인데, “우리가 노력은 엄청 많이, 엄청 오래 해봤거든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여전히 개인적 노력만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고루함에 대한 거부, 과도한 스펙 경쟁만으로는 결코 암담한 고용절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 그로 인한 체념과 좌절이 동시에 배어 있는 표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더 이상 N포 세대는 ‘내’가 부족해서 ‘헬조선’에 빠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거꾸로 ‘헬조선’이 ‘나’를 이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는 ‘헬조선’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이며,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N포 세대 사이에 집단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 의해 망쳐져 버려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힘겨운 시대를 현 세대는 살아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역사의 발전, 그리고 어둠 후의 ‘빛의 시대’를 말하기는 하였지만 ‘빛의 시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개인’이 아닌 ‘우리’가 함께 견디고 버티어 이 위기를 극복해 내기 위해 힘을 합하고 머리를 맞대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삶, 나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6일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 씨의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끊임없는 노력이 결국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너의 삶, 너의 일, 너의 운명, 너의 불행이라고 여기지 말자.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일이다.
다행히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으며 새벽별도 희미해지고 있는 것을 보니, 곧 태양이 떠오를 것 같다. 이제 곧 아침이다.
박경원
행복한 인문학 연구소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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