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습니다.
세상을 돋보기로 사는 것은 어지러운 일입니다.
하여, 유리로 돌아가고픈
아득한 원시의 돌로 돌아가고픈
돋보기들
두꺼워져야 잘 보인다는 나라님의 호소에 따라
유리나라 백성들이 돋보기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뒤처지고 낮고 얕고 시리고 버려진 것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한다 해서
겹겹 수백 수천의 유리들이 깎이고 갈리고 밀리며
얄프랑한 안경알이 되었습니다.
맑은 돋보기가 되었습니다.
나라님은 다시 부탁했습니다.
더러 큰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말에 따라
유리들은 졸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볼록볼록 오목오목
유리들은 묵묵히 깎이고 갈리고 밀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거울만 보는 나라님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리들이 나라님의 눈이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거울만 보는 나라님의 눈은
깊은 암흑뿐인 텅 빈 동굴이었습니다.
암흑의 눈이 될 수 없는 유리들은 차라리
아득한 원시의 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암흑의 눈이 될 바에야 차라리
이끼들의 구들장이 되고 싶습니다.
제 맘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나라님에게는
처음부터 눈이 없었습니다.
(2016. 12. 9.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그 날에)
박대성 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