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국이 심히 개탄스럽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달랠 길이 없다. 청와대의 시스템 부재와 오작동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대로 표출한다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라도 외치고 싶다. 역사의 심판자의 권한만 주어진다면 광화문 광장에서 국정을 농단한 자들의 이마에 “국정농단”이라고 주홍글씨를 붙여 무릎을 꿇게 하고 싶다. 아니면 조선시대처럼 “대역죄인”이라 가슴에 흉패를 붙여서 육조거리인 광화문까지 분노한 시민들 앞에 세우고 싶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이다. 분노대로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아니다. 바로 잡자는 꾸짖음이 도리어 법치국가인 것을 부정하는 겪이 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 악법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하물며,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반드시 법질서를 준수해야 한다.
물론 지금처럼 국가적 위기 상황에 정부의 실정을 함께 모여 표출할 수 있다. 그것 역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본권리이다. 그러나 법의 질서와 법의 집행절차는 어떠한 경우라도 준수하여야 한다. 그것이 합법이기 때문이다.
교수출신 정당 전 대표가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해놓고 헌법 정신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모욕이고 헌법모독"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했기 때문에 다수의 힘을 근거로 법절차를 무시하고 끌어내려도 괜찮다고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논리이다. 마치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는 교통법을 어겼으니, 자동차도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해도 괜찮다는 논리로 비약되면 큰일이다. 그렇게 되면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무시되고, 법체계의 심각한 훼손이 초래된다.
‘하야’와 ‘퇴진’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하야와 퇴진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답답하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하야하고 퇴진하지 않는 한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대신 '탄핵‘을 해야 한다. 탄핵이 법적 용어이다. 충분한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죄과를 밝히고 그에 따라 국회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탄핵수순을 밟으면 된다.
선장의 잘못으로 대한민국 배가 위태하다. 국민이 극심한 불안 가운데 있다. 잘못한 선장은 얼마든지 책임을 묻고 능력 있는 다른 선장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거대한 배는 역사의 바다에서 순적한 항해를 계속해야만 한다. 자칫 잘못한 선장을 선상에서 선원들의 힘으로 갈아치우면 그것 역시 불법이고, 폭거이다. 위기가 기회라고, 성숙한 국민수준에 맞는 법질서 준수와 절차로 하루속히 공의와 정의가 바로 서는 대한민국이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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