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 이야기이다. 좀 별난 친구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도 유난히 덩치가 커 눈에 잘 띄었다. 6,70년대 중앙시장에서 가게를 한 부모님 덕택에 당시 우리 또래들에서는 흔치 않은 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동명동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유치원은 어린 아이 걸음으로는 한참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다. 중앙동 어시장 앞을 지나 우렁골 옆 철둑길을 통과하는 것이 그나마 지름길이었다. 동네아이들 서너 명과 무리지어 가다보면 가끔 철둑길에 사는 아이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장난이나 시비를 걸어도 슬금슬금 피하기 일쑤였다. 그 무리 중에 등치가 산만하고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부모님 끼리 잘 아시는 사이라고 해서 서로 얼굴을 익혔는데, 나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다. 덩치도 그렇고 생김새도 나보다 한 3~4년은 위 인줄만 알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시절 6학년들조차 우리 학년 아이들을 잘 괴롭히지 못했다. 이 친구 때문이었다. 태권도, 축구 등, 아무튼 운동과 힘에서는 우리 또래들 중 당할 아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싸움을 즐기는 친구들이 있었다. 가끔 패를 나누어 영랑호 근처에서 집단으로 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친구가 심판을 보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주먹이나 발 등의 신체를 이용한 싸움은 허락되지만, 칼이나 체인 등과 같은 흉기를 이용하면 당장 이 친구에게 제지를 당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식 아침, 전날 갑작스럽게 내린 눈 때문에 학교로 가는 길들이 온통 하얗게 파 묻혔다. 지금 교육청 자리에 위치한 속초고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는데 교실 건물 앞까지 눈이 다 치워져 있었다. 학교아저씨가 치웠나 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새벽 어느 한 친구가 일찍 나와 혼자 눈을 다 치워 논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진학한 그 친구는 서울에서도 가끔 기행을 일삼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놀러온 적이 있다. 학교 주변 주택가를 지나다가 갑자기 어느 집 대문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얼른 인터폰에 대고 하는 말이 ‘대문 전등 꺼주세요~’ 등치에 걸맞게 쩌렁 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그래놓으니 아마 주인도 나만큼 엄청 놀라고 어이가 없었을 거다.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십여 집이 똑 같은 일을 당했다.
갑작스레 속초로 내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체고, 경복고 등 쟁쟁한 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 즈음 갑자기 속초로 귀향을 한 것이다. 서울에서 같이 교편을 잡고 있는 아내에게 ‘속초에서 살고 싶다… 내려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등의 협박과 회유로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 친구의 주변은 항상 분주스럽고 에너지가 넘쳐난다. 각종 행사나 모임, 경조사에도 거의 빠지지 않는다. 아는 사람도 참 많다.
몇 해 전, 강릉에서 수능 감독이 있다고 내가 일하는 교직원수련원에 찾아왔다.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며 자기가 쓴 글이 어떠냐며 몇 번이나 묻고 고치고 하였다. 언론사에다 보낼 내용이라고 했다. 내일 수능 감독 끝나고 서울 가서 ‘일인 시위’를 할 예정이란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사업 중에 지도자 공개채용 절차와 운영에 비리가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 자신이 그 잘못을 바로 잡아야한다나…. 아무튼 당시 친구의 일인 시위는 15일 동안 계속되었고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경기연맹은 마침내 회장의 홈페이지를 통한 공식적인 사과와 담당자 처벌, 재발 방지 약속으로 이 친구에게 백기를 들었다.
올해 9월 브라질 리우 올림픽 장애인 육상대표팀 총감독을 맡았다. 신문, 방송 등에 소개되는 그 친구의 얼굴은 나를 비롯한 지인들에게는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아마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의 첫인상에서 ‘산적, 소도둑…’ 같은 단어를 떠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큰 등치에 머리숱도 적어져 이마가 훤하고, 수염도 기르고…. 하지만 나름 귀엽다. 같이 지내다보면 외모와는 다르게 ‘순수함, 논리적, 정의로움, 의리, 인정…’ 이런 단어들이 앞선다. 게다가 웃을 때 양쪽 볼에 보조개도 정겹게 패인다.
이 친구가 교단에 있어 좋다. 선생님의 평소 생각과 행동에서 아이들은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설악고등학교 체육교사 ‘주대하’이다.
양용석
강원도교직원수련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