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싣는 순서 -
①설악권의 글로컬 브랜드 추진 현주소
②강원도의 글로컬 브랜드화 가능성 진단
③이탈리아 브라의 슬로푸드 브랜드
성공사례
④스위스 루가노의 관광차별화 전략
⑤독일 프라이부르크의 그린시티 파워
경쟁력
⑥설악권의 글로컬 브랜드 진단 및 전망
미식(美食)의 나라, 이탈리아는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만큼은 가장 공정한 거래로 이뤄져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이 자리매김하면서 이를 글로컬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미국산 중심의 패스트푸드에 저항하며 시작한 이탈리아의 슬로푸드는 100년 전통의 커피전문점을 비롯해 파스타 전문기업, 카페 등 각종 먹거리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관광 활성화의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거두고 있다.
슬로푸드의 탄생지인 이탈리아 토리노 브라에 위치한 국제슬로푸드협회는 “슬로푸드의 가치와 이념은 ‘맛있고, 깨끗하며, 공정거래’로 집약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아야 하고 재료가 깨끗해야 하며 생산자에게 적절한 노동의 가치가 지불돼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슬로푸드, 파스타·커피·와인
1949년 문을 연 토리노의 파스타 공장인 ‘파스티피치오 볼로냐’는 할아버지 때부터 3대가 운영하는 전형적인 가족기업이다. 손녀인 크리스티나 무짜렐리(50)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이곳은 토리노가 속한 피에몬테주 전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밀을 공급 받아 만든 파스타 면을 이탈리아 전역으로 판매하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할아버지의 경영정신을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아 면을 생산하는 공정 하나하나를 일일이 점검하며 슬로푸드를 실천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의 파스타 생산업체로 선정된 이곳은 20명의 직원이 95가지 종류의 다양한 파스타를 하루 1200kg을 생산해 런던과 파리, 브뤼쉘 등 유럽 각지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특히 유명 외국인 쉐프들이 찾아 다양한 형태의 면을 뽑아 달라고 맞춤형으로 주문할 정도로 글로컬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1948년 문을 연 다모소 가족의 커피전문점은 공정거래로 이뤄진 좋은 생두만을 엄선해 다양한 커피를 내놓고 있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파올로와 엔조 다모소 형제는 “커피는 낭만이다”라고 말한다. 슬로푸드의 철학대로 가장 좋은 생두를 제노바와 쓰리에스터 등에서 공급 받아 ‘맛있고 건강에 좋은 커피’를 만든다. 이곳 역시 국내는 물론 스웨덴까지 수출하고 있다.
1941년부터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 포도주의 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와이너리는 전통과 현대시설을 접목한 글로벌 포도주 농장으로 유명하다. 3대째 주인장인 루까발디아노(34)는 단번에 좋은 포도주가 나올 수 없듯이 원 재료인 좋은 포도 키우기에 많은 투자와 시간을 쏟는다. 과거 여왕의 포도밭이었던 덕분에 ‘여왕의 포도주’로도 유명한 이곳은 120명이 한꺼번에 시음할 수 있는 지하 와인창고를 갖추고 있다. 오래된 와인생산 기계를 취미로 모으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난감을 모으면서 작은 박물관까지 마련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포도주의 글로벌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토리노와 파리, 비엔나 등과 협약을 맺고 좋은 원료로 생산한 고품질의 포도주를 공급하고 있다. 여왕의 포도주는 1년에 4,000병 밖에 생산하지 않아 런던 중심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한 잔에 100달러를 호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두 살배기 아들에게 와인농장을 물려줄 계획이라는 루까발디아노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아 와인농사가 즐겁다”고 환하게 웃었다.
건강한 맛의 글로벌 제조창고
맛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탈리아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미식과학대가 운영되고 있다. 1930년대 농장이던 곳에 2004년 설립된 이 대학은 3년, 5년, 마스터 과정으로 나뉜다. 세계 각국에서 온 500여명이 다니고 있으며, 우리나라 학생도 1명이 재학 중이다. 음식연구를 통해 기업과 협업체제까지 갖추고 있어 건강한 맛의 글로벌 제조창고로도 불린다. 이 대학의 구내식당에서는 매주 미슐랭이 선정한 유명 쉐프들이 한 요리를 점심메뉴로 내놓는다. 미식과학대 학생들에게 맛을 평가받기 위해서다. 20만권에 달하는 도서는 모두 요리에 관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이다. 이곳 역시 슬로푸드를 기본으로 맛있고 깨끗하며 적절한 대가를 지불한 재료를 사용해 최상의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상아탑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대학홍보를 맡고 있는 파올로는 “미식과학대는 글로벌 시대에 과연 인간에게 가장 건강한 요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역과의 연계성을 높여 최상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개발해 내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그 해답은 역시 슬로푸드”라고 강조했다. 미식과학대는 올해 한국의 사찰음식을 선보여 학생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슬로푸드를 실천하고 있는 한살림과도 교류하며 세계 곳곳에 숨겨진 슬로푸드를 찾아 나서고 있다.
슬로푸드운동 생명존중문화로
슬로푸드를 국제적인 캠페인으로 승화시킨 곳이 바로 이탈리아 브라다. 이곳에는 전 세계의 슬로푸드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국제슬로푸드협회가 운영되고 있다.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파올로 디 크로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고, 어떤 경유를 통해 생산됐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며 “슬로푸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의 대표인 맥도널드가 이탈리아에 상륙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국제슬로푸드운동은 브라를 중심으로 먹거리까지 대자본에 잠식당하고 건강까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시민사회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생명과 노동력 존중운동으로 승화되고 있다. 이곳의 슬로푸드 운동으로 현재 세계 150개국에서 슬로푸드협회가 운영되고 있다. 파올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슬로푸드음식으로 김치, 미역, 콩, 떡과 사찰음식 등을 꼽으며 아시아의 슬로푸드 중심에 한국이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을 찾아보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슬로푸드재료가 널려 있다며 음식재료를 보는 관점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의 슬로푸드음식 종류는 5,000여종으로 국제슬로푸드협회는 더 많은 홍보활동을 통해 건강한 재료와 음식을 찾아내기 위해 거미줄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으며, 슬로푸드 축제를 통해 그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국제슬로푸드운동이 생명존중과 공정거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슬로푸드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채워주는 팔찌. 작은 사진은 국제슬로푸드운동을 이끌고 있는 파올로 디 크로체.
파스타로 슬로푸드 실천하는 파스티피치오 볼로냐.
커피전문점 다모소.
포도주 농장 와이너리.
세계에서 유일한 이탈리아 미식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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