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환경생태 관찰활동을 하는 ‘또바기’가 속초·고성·양양지역 해안사구의 식생조사에 나섰다. 본지는 지난 13일 진행한 고성 가진리 해안사구를 시작으로 ‘또바기’의 해안사구 ‘탐사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가진 해안사구.
고성 가진리 해안사구는 길이 601m, 폭 41m의 조금은 소박한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생명은 어찌도 그리 다양한지요. 중간에 메마른 기수천을 기준으로 좌우가 확연히 다른 식생을 보입니다. 마치 모래 위 작은 나라처럼, 각자의 환경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식물들의 모습은 경이롭고 늘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낯선 듯 익숙한 서양갯냉이,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인 갯방풍나물, 사계절 푸른 사철쑥과 아름다운 갯메꽃, 앙증맞은 좀보리사초와 듬직한 통보리사초, 사랑스러운 갯완두, 강한 바람에도 꿋꿋이 피어나는 해란초, 쌉싸름한 매력의 갯씀바귀, 터줏대감 같은 갯그령 외에 수송나물, 해당화, 큰잔디, 갈대, 억새, 매자기, 콩다닥냉이, 좀미나리아재비, 돼지풀, 까마중, 달맞이꽃, 여뀌까지 모래 위의 작은 영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기수천 구역은 물기가 전혀 없었음에도 다양한 사구식물과 육상식물들이 육지의 작은 숲을 연상케 하는 군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색깔이나 크기 면에서 놀랍도록 건강해 보여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자꾸만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쟁이들이더라구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니 그들의 삶이 보이고 들렸습니다.
기수천 부근의 육상식물과 사구식물.
갯메꽃의 뿌리.
사구식물은 얄궂은 바람과 모래의 이동에 맞서기 위해 지표면 아래로 깊고 길게 뿌리를 내립니다. 이 뿌리는 쉽게 뽑히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합니다. 또 개별적으로 뿌리를 내리지만 때로는 그 뿌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모래를 더 단단하게 붙잡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개체들의 독립적인 생존을 넘어선 협력과 지지 시스템을 형성하는 걸로 보입니다. 모래를 헤치고 파보니 어떤 뿌리는 아래로 아래로 깊게, 또 어떤 뿌리는 옆으로 넓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얗고 여린 손으로 꽉 붙잡고서 서로가 서로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사구식물의 깊이와 안정성, 얽힘과 연결성, 유연성과 적응력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를 발현하고 ‘영원 회귀(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삶)’ 속에서도 자신을 긍정하며 지속될 수 있게 본인의 삶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현상은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영위하는 다양한 ‘관점’의 충돌과 조화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호해야 할’ 자연은, 사구식물의 관점에서는 ‘극복하고 생성해야 할’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힘에의 의지’를 발현하며 살아갑니다. 사구식물이 그저 ‘모래를 고정시키는’ 유용한 존재로 보이거나, ‘보존해야 할’ 약한 생명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구식물에게 삶은 그 자체로 ‘생성(Becoming)’이자 ‘극복(Overcoming)’의 과정이었습니다.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줄기를 더 강하게 뻗으며, 바람에 맞서 흔들리는 것을 통해 그들 자신의 생명력(Life-force)을 증명할 뿐입니다. 진정한 강인함과 삶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의 정신….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며 마치 ‘당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데 집중하길 바란다.’고 속삭이는 듯 했습니다.
또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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